•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오랫동안 갇혀 있던 '박정희 프레임'에서 마침내 해방된 기분입니다."

    1960∼1970년대 당시 서독으로 간 광부들의 모임인 재독 한인 글뤽아우프회의 고창원(59) 회장과 파독 간호사들로 이뤄진 한독간호협회 윤행자(70) 회장이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전국체전과 여수엑스포에 즈음해 각각 방한하는 등 꽤 자주 고국을 찾는 편이지만 이번 방문은 더욱 뜻깊다.

    1963년 12월 광부 파독이 처음 시작된 지 올해로 꼭 50년을 맞은 데다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에 특별초청돼 들어온 길이기 때문이다.

    24일 서울 태평로에서 만난 고 회장과 윤 회장은 "파독 광부, 간호사에 대한 고국의 관심과 인식이 최근 들어 많이 좋아진 것 같아 깜짝 놀랐다"고 밝은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그림자에 가려진 것 같았는데 이제 다시 햇빛 비치는 곳으로 나가는 기분입니다. 공무원이든 일반 사람이든 만나는 사람들이 전보다 더 친절해졌고 우리 이야기를 들어보려고들 합니다."(고창원)

    이러한 인식 전환은 파독 반세기라는 시기적 요인도 있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 승리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이들은 짐작한다.

    그간 이념 논쟁 속에 산업화 전사로서 이들의 성과가 가려지고 잊혀오다가 비로소 이념의 굴레를 벗고 조금씩 재조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 회장은 "과거에는 산업화 인사들을 조명하면 민주화 인사가 가려진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며 "두 세력 모두 서로 성과를 인정해가며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1969년, 고 회장은 파독 막바지인 1977년에 서독행 비행기에 올랐다. 동생들의 학비 마련을 위해 이국 취업을 택한 이들은 낯선 땅에서 혹독하게 고생하면서도 특유의 성실함을 인정받아 현지에 정착했고 자녀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냈다.

    독일에 정착한 광부, 간호사의 자녀 가운데는 의사, 법조인, 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

    1970년대 후반부터 여러 차례 주독일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한 권영민 전 주독일 대사는 인터뷰 자리에 함께해 "광부, 간호사들은 자녀 교육에 무척 엄격했다"며 "2세들이 앞으로 독일 사회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맞은 파독 50주년을 의미 있게 기념하기 위해 두 회장은 한국과 독일 양국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세계 각국으로 흩어진 파독 광부들의 모임인 파독산업전사 세계총연합회 총회를 5월 3일 독일에서 열고 이튿날 에센에서 양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파독 5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

    이에 앞서 4월부터는 에센의 파독광부기념회관에서 파독 역사를 보여주는 소중한 사진과 문서 자료 등을 망라해 전시회도 마련한다.

    광부 파독이 시작된 지 2년 후부터 파견된 간호사들도 기념행사에 동참한다.

    "지난 50년을 기념하는 것은 과거 역사를 더듬어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유럽 이민 1세대로서 유럽 한인 차세대를 위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심어주는 것이죠."(윤행자)

    예전보다 인식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정부 차원의 배려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아쉬움을 표한다.

    현지 노동절에 치러지는 5월 행사와 별도로 7월에 대규모의 기념행사를 마련하고 싶고 광부, 간호사들의 모습을 담은 조형물도 건립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자금이 확보되지 않아 불투명하다.

    고 회장은 "회원들이 대부분 고령이라 10년 후 60주년만 되도 얼마나 남아 계실지 알 수 없으니 이번 50주년이 아마 마지막 큰 행사가 될 것"이라며 "잊힌 역사로만 치부하지 말고 더 관심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고 회장과 윤 회장은 내달 5일까지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파독 광부, 간호사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이고 각계에 지원을 호소하는 데 시간을 쏟을 예정이다.

    "어려운 시절 애환을 같이한 박정희 대통령에 일종의 동료의식"을 느낀다고 말하는 이들은 대를 이은 박 당선인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첫 여성 대통령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섬세함과 어머니 같은 자상함으로 소신껏 국정을 이끌어가길 바랍니다."(윤행자)

    "박정희 대통령의 장점은 이어가면서 동시에 단점은 더 좋은 방향으로 고쳐간다면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고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