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3일 사설 '대운하, 이렇게 서둘 일인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성공의 기억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실패를 낳기 십상이다. 청계천 복원 성공이 한반도 대운하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인 주변은 대운하를 서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한반도대운하 태스크포스(TF)’팀을 따로 만들었다. 이 조직의 상임고문이 이 당선인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이다. 이 의원은 “대운하는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는 문제가 아니다. 이 당선인의 의지가 확고하고, 이미 국민이 이 공약을 선택한 만큼 바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대운하 추진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더 이상 토를 달지 말라는 뜻으로 들린다.

    대운하는 이 당선인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화려하게 성공시키고 싶은 유혹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되돌릴 수 없도록 일단 삽부터 떠놓고 보자는 조급한 마음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대운하는 고도의 정치적 사안이기도 하다. 환경단체들은 물론 대통합민주신당이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도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섣불리 밀어붙이면 자칫 국민 분열을 부를 수 있는 민감한 뇌관이다.

    인수위 주변에선 대운하의 찬성·반대가 엇비슷한 일부 여론조사에 반색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전인수는 금물이다. 더 많은 조사에서 ‘경제를 살려라’ ‘일자리를 만들라’는 항목에는 무려 80~90%의 찬성이 나오고 있다. ‘당선=대운하 공약 지지’라는 주장 역시 논리적 비약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똑같은 논리로 행정도시·혁신도시·기업도시를 무리하게 시도하다 부동산값 폭등과 지지도 폭락을 자초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이 당선인은 당선 일성으로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공약에도 우선순위와 완급이 있기 마련이다. 왜 정권 초반에 논쟁의 소지가 다분한 대운하부터 손을 대, 스스로 정치적 동력을 상실하려는지 안타깝다. 정말 대운하를 성공시키고 싶으면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게 급선무다. 신중하게 접근할수록 공감대는 넓어진다. 아무리 핵심 공약이라 해도 대운하를 이처럼 서둘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