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31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에 이 신문 허문명 논설위원이 쓴 '좌파 문화권력 5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자살 테러리스트가 저지른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 암살 동영상을 보면서 느낀 것은 ‘믿음’의 무서움이었다. 신념이란 타인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도 해하는 강력한 힘이다.

    지난 5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한 것도 이념이라는 ‘신념’이었다. 대통령도, 여당 국회의원들도, 현 정권과 관련된 지식인들도 내놓고 ‘좌파’라 말한 적은 없지만, 그들은 일관되게 좌파 이념과 이상을 추구했고 그것들을 실현하기 위한 좌파 정책들을 골라 시행했다.

    자유보다 평등을, 시장보다 정부를, 사유재산권 옹호보다 제약을 앞세웠으며 ‘코드’라는 말이 가리키듯 자신들과 신념이 다른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배척했다. 그들이 일하는 기준은 능력이 아니라 ‘생각이 같은지’ 여부였다.

    왜곡된 신념이 강하면 자기 생각이 현실에서 틀렸음이 입증돼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국민이 노망난 것 아니냐’는 말이 대표적이다. ‘틀린 것은 현실사회주의이지 이론사회주의가 아니다’는 억지 주장처럼, 틀린 것은 ‘이념’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딱한 항변이다.

    1980년대 운동권을 풍미한 좌파 이론 중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란 게 있었다. 그는 하부구조(경제)에 의한 상부구조(문화)의 변화가 아니라 상부구조를 통해 하부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헤게모니 이론을 폈다. 사회를 변혁하려면 문화를 장악해야 한다면서 도덕적 헤게모니를 쥔 리더십을 강조한 것이다. 100여 년 전 그의 생각이 한국의 노무현 정부를 통해 부활했다.

    노 정부는 문화를 ‘한 사회의 물질적 지적 정서적 특징의 총합’(‘창의한국’ 로드맵·문화관광부·2004년)으로 끌어올린 뒤 예술을 집권층의 생각을 강요하고 전파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행정, 돈, 사람, 이론을 싹쓸이하면서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바꾸고 100년도 더 된 과거사를 끄집어내 바꿔 보겠다는 발상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기자실 대못질이라는 언론 탄압의 뿌리에도 ‘미디어는 정신을 지배하는 도구’라는 좌파적 생각이 녹아 있다.

    연간 예산 1100억 원을 주무르는 막강한 문화 돈줄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일관되게 추구한 것도 기존 가치체계 뒤집기였다. 한 위원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반(反)개혁 세력이라고 몰아붙이며 돌진한 그들은 예술을 통한 국민정신 재무장을 신념으로 가진 점령군이었다”고 회고한다. 조희문 인하대 교수는 “사회 전반에 퍼진 이념적 갈등과 대립, 적대와 편 가르기는 문화 예술계가 진원이었다”고도 했다. 좌파 문화권력 집단은 애초에 내세웠던 도덕적 순결성마저 잃고 문화 예술의 타락을 부채질했다.

    사회주의 예술이 증명하듯 정부 지원은 으레 예술작품의 질을 떨어뜨린다. 대표적인 것이 문학이었다. ‘지원 규모가 과거에 비해 수십 배 커졌지만 정작 생산물은 줄었으며 베스트셀러는 외국 번역 작품이 더 많아질 정도로 문학의 힘이 약해졌다.’(이문열)

    오죽했으면 정부 지원에 의지하는 예술가들의 지원금 유용 과정을 그린 소설(‘바디페인팅’)까지 나왔으랴. 

    새 정부는 경제 살리기도 좋지만 진정한 문화혁명을 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국민의 정신과 마음을 지배해 온 좌파적 이념을 털어내고 이념 선동의 도구였던 문화를 시장과 민간에 돌려주는 일에 나서야 한다. 프랑스 개혁의 상징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내건 화두도 ‘정신혁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