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적의 계략을 간파하는 것만큼 지휘관으로서 중요한 일은 없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이번 대선 결과는 이회창 씨의 완주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관심의 초점은, BBK가 이명박 후보와 무관한 것으로 나타날 경우에도 — 무관한 것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 이회창 씨가 완주할 것인가이다. 이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지만, 나는 완주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회창 씨가 출마한 것은 보수 진영의 집권이 무산될 가능성을 걱정해서가 아니다. 이 정도의 애당심을 갖고 있다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을 깨면서까지 정계에 복귀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평상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출마 자체가 이명박 후보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보수 진영을 혼란의 늪으로 빠트리게 된다는 점을 모를 리 없다.

    한마디로 이회창 씨의 출마는 권력욕의 산물이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 숱한 비난을 무릅쓰고 무소속 출마의 길을 강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회창 씨는 ‘이명박 후보가 BBK로 낙마할 것’이라는 그릇된 정보를 들었을 수도 있고, 주변 참모들 또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이회창 씨의 출마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높다. 혹은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을 의심할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든 이회창 씨가 중도하차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회창 씨는 그것이 비록 착각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집권 가능성을 믿고 있으며, 당선이 난망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도 중도하차의 계기를 포착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내년 4월의 제18대 총선에 대비하여 새로운 정치 세력을 규합하고 싶은 욕구를 뿌리칠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회창 씨가 ‘국가 정체성’ 수호를 출마의 명분으로 삼은 것도 ‘강한 보수 세력’을 묶어두기 위한 복선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회창 씨가 이명박 후보에 대하여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도 하나로 합칠 생각이 없음을 말해 준다. 이회창 씨는 BBK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노선의 불만 외에도 또 다른 이유를 들어 독자 출마를 고수할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두 개의 적을 한꺼번에 물리쳐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회창 씨를 ‘우군’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지금부터는 이회창 씨가 과거 한나라당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뇌리에서 지워야 한다. 한나라당의 소망대로 이회창 씨를 중도하차 시키기 위해서는 어설픈 대응으로는 안 되고, 힘으로 눌려 이기는 수밖에 없다.

    이회창 씨 진영은 정동영 후보에 대한 공격보다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공격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한나라당을 이간질시키고 있다. 이를 방치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의 힘을 키워줄 뿐이다. 어차피 이회창 씨와는 제로섬 게임이다. 이회창 씨의 표를 한 자리 숫자 이하로 묶어두어야만 승리를 내다볼 수 있다. ‘정권 교체’와 ‘선진 일류 국가 건설’이라는 대의(大義) 아래 이회창 씨를 확실히 심판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지금 사방에 적을 안고 싸워야 하는 형국이다.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내부가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대동단결해야 한다. 그리고 정권 연장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한나라당의 깃발 아래 모이게 해야 한다. 나아가 이회창 씨에 대한 지지는 바로 적전 분열이자 이적 행위임을 설득시켜야 한다.

    여권의 단결 여부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씨 진영 사이의 역관계에서 정해질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회창 씨 진영을 확실히 무력화 시킨다면 여권은 더욱 지리멸렬해져 이번 대선을 포기할 것이다. 반대로 한나라당과 이회창 씨 사이에 힘의 균형이 유지된다면 여권은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대동단결은 물론, 이명박 후보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에 나설 것이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