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비판을 할 때는 적절한 예화와 논리를 끌어다 붙여야 한다고 본다. 김씨는 마치 조광조 일파가 이론만 암송하고 실무능력은 전혀 없어 순전히 자신들의 책임 때문에 실패한 것처럼 적고 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보수사회의 이념과 노선이 오히려 조광조 선생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조광조 선생이 국가로부터 과도한 경제적 대우를 받던 이들의 이권을 빼앗아 합당한 곳에 쓰려했듯 우리 보수사회는 정권을 잡으면 작은 정부 만들기, 세금 줄이기에 나설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것이 기득권층의 반발에 부딛쳐 실패로 돌아가면 김씨는 그때가서 조광조의 예화를 빌어 우리 보수사회를 공격할 것인가. 지나치게 개혁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겠지만 어차피 기득권층 입장에서는 아무리 작은 개혁도 지나치다고 할 것이 뻔하다.

    조광조 선생의 개혁을 참여정부의 개혁과 동일시하고, 마치 조광조 선생의 개혁실패가 마치 조광조 선생의 과욕과 무능에만 이유가 있는 것으로 몰아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바른 일을 하더라도 정치적 음모에 빠져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조광조 선생의 개혁실패는 비록 급진적이고 과격했던 그들의 노선에도 문제가 있었으나 본질적으로는 이권을 지키기 위해 조광조 일파를 탄핵해 제거한 당시의 훈구대신들에게 책임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광조 일파가 온건한 방법을 택했든 과격한 방법을 택했든 이권을 빼앗기는 것에 대한 반발은 어차피 있을 일이었다.

    참여정부의 개혁실패가 우리 국익을 저해하는 면이 있었다면 조광조 선생 일파의 개혁은 조선의 국익을 저해하는 면보다는 조선의 국익을 키우는 면이 더 컸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기에 후대에도 조광조 노선이 계속 이어져 간 것이다.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조광조 개혁과 노무현 개혁을 같은 축에 놓고 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그리고 김씨의 칼럼에서는 조광조 선생이 능력은 없으면서 마치 말만 잘하는 것처럼 적고 있다. 중종이 조광조 선생의 계속 이어지는 개혁 주장을 지겨워하고 조광조 일파의 개혁을 전부 못 마땅하게 생각해 조광조 일파를 버린 것으로 적고 있다.

    중종의 조광조 선생 제거 숨겨진 내막

    중종의 조광조 선생 제거는 김씨의 칼럼에서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내용이다. 중종은 도학적 정치이념을 내세워 왕까지 압박하려 드는 조광조 일파를 부담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미 기성귀족이 되어 있는 반정공신들을 이권만 챙기는 소인배로 지목하고 힘을 줄이려는 조광조 일파를 계속 신임할 수 없었다. 아마 중종은 또 다른 반정이 두려웠고 한편으로 조광조 일파의 힘이 너무 커지는 것이 우려되었을 것이다.

    중종이 조광조 일파를 결국 제거하게 된 것은 이런 복잡한 파워게임의 내막이 있다. 김씨 칼럼 내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처럼 단순히 조광조 일파의 개혁 주장 전체가 조선 민족 전체의 이익을 저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조광조 일파의 개혁 내용이 이상적이고 이론적이기만 하고 비현실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이순신 장군의 사례도 조광조 선생의 사례와 유사한 경우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서라면 조선의 경직된 질서를 과감히 무시하는 개혁을 했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고 명나라 장군의 명령을 거부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명도 듣지 않았다. 이런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승리의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과 양반들의 경계와 증오를 받으며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전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조광조 선생이 조선의 경직된 질서 속에서 실패했다면 이순신 장군도 실패한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누구도 이순신 장군을 실패자라고 비웃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조광조 선생과 그의 개혁을 김씨의 칼럼 내용처럼 ‘빵점’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김씨가 조광조 선생을 실무에 있어 빵점이었다고 비판해 버린 까닭에 마치 조광조 선생의 개혁주장 자체가 모두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어차피 나 역시 역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므로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적어도 내가 볼 때 김씨의 칼럼에서 나오는 ‘조광조 개혁’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적절하지 않은 사례 제시라는 생각이다. 참여정부 비판을 위해서라면 합당한 사안을 사례로 제시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조광조 개혁의 실패처럼 참여정부가 이론만 내세워 북한정책을 펴다 실패했음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본래의 핵심 주장에 대한 나의 시각은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밝히도록 하겠다. 그것까지 일일이 쓰자면 너무 글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시민기자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