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송파구 투표지 부족 사태로 인한 파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4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는 모습. ⓒ서성진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3 지방선거를 5개월 앞두고 개표관람인의 동영상 촬영을 금지하도록 편람을 개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개표 사무가 방해되고 선관위 직원들의 사생활이 침해당한다는 것인데, 법조계와 야당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보다 직원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은 중앙선관위로부터 '공직 선거사무개선 연구보고서'를 제출받았다.  6·3 지방선거를 불과 9개월 앞둔 지난해 9월 만들어진 보고서다. 선관위 직원 11명으로 구성된 '공직선거 절차 사무 개선 TF'를 꾸려 만들어 사실상 실무자들의 의견이 반영됐다. 
선관위는 이 보고서에서 편람 개정을 통해 개표 관람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개표관람인은 정당 추천인 등으로 구성된 개표참관인과 별개의 개념으로, 국민이 자유롭게 선관위로부터 개표관람증을 받아 구획된 장소에서 개표 상황을 관람할 수 있다. 선거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감시의 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그런데 보고서는 개표관람인이 사실상 개표 상황에 대해 동영상 촬영을 전면 금지하는 관람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공직선거절차사무편람 개정안에는 '동영상 촬영 및 소란 언동 등 개표 방해 시 퇴거 조치 될 수 있다'는 문구가 개표관람증 뒷면에 표기되도록 했다. 
TF팀은 개정안의 필요성에 대해 "21대 대선 개표 시 부정선거 주장 단체의 회원들이 개표 관람증을 교부받아 관람석에서 유튜브 방송을 하거나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등 개표소의 질서를 저해하고 개표 사무를 방해하는 사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편람 개정 후 문제를 해소하고자 '개표 관람 시 할 수 없는 사례'를 만들어 개표관람인에게 안내해야 한다고 했다.
예시로 만들어진 안내문에는 "개표소 내에서도 개표 상황을 개표참관인에 의한 촬영 외에는 허용되지 않는다"며 "타인을 촬영하는 것은 초상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 침해할 수 있으며 개인정보 보호법에 위반될 수 있음"이라고 경고성 문구가 달렸다. 
▲ 지난해 9월 나온 공직선거절차사무개선 연구보고서. 해당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동영상 촬영을 금지하는 편람 개정이 이뤄졌다.
안내에는 선관위가 녹화한 개표소 CCTV 영상도 개표 사무 관계자 개인정보와 투표지가 포함돼 있어 비공개 대상이라는 점도 거론해 동영상 촬영 금지의 명분으로 꼽았다. 개표소 CCTV 영상 비공개 방침은 중앙선관위 사무처 행정심판위원회가 2022년 결정했다. 공개 방침이던 개표소 CCTV를 개인 사생활을 침해한다며 공개를 막았다. 
2015년 선관위 사무처 행정심판위원회가 "개표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는 공무에 해당한다"며 "개인 사생활의 비밀 등의 이익보다 개표 과정의 투명성 확보의 공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개표 과정을 공개했다. 선관위 산하 기관이 사생활을 내세워 이러한 논리를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선관위는 자신들이 판단을 뒤집은 사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들은 개표소 CCTV 비공개와 사실상 같은 논리로 개표관람인의 동영상 촬영이 중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개표 영상과 개표 사무 관계자 명단, 배치도 등을 결합하면 개인을 특정하는 것이 가능 ▲개인신상이 특정될 경우 부정선거 의혹 제기로 인한 인신공격과 사생활 침해 우려 ▲개표 사무 관계자들은 개표 영상이 선거관리위원회가 아닌 제3자에 의해 촬영되거나 공개된다는 점에 동의한 바 없음이라고 했다. 
이후 선관위 편람 개정에 나섰다. 김민전 의원실이 확보한 지난해 12월 공직선거 절차사무편람 개정안에는 보고서가 제안한 관람인 영상 촬영 금지가 그대로 반영됐다. 개정안은 지난 1월 공직선거 절차사무편람으로 최종 확정됐다. 선관위가 보고서에 담긴 매뉴얼을 실행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법조계는 선관위가 행정 편의주의적인 행태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에서 개표라는 주요 공무를 하는 것이 초상권과 사생활 침해로 곧바로 이어진다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만약 동영상을 유튜브나 SNS에 올려 특정인의 얼굴을 확대하거나 신상정보를 노출하고 비난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충분히 차후에 법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며 "하지만 개표소라는 공적 장소에서 선거의 핵심 공적 업무인 개표를 수행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 사생활과 초상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는 행정 편의주의적인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에서는 선관위가 선거라는 국가의 중대사의 무게감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전 의원은 "선관위 직원들로 구성된 TF가 개표 현장에 대한 국민의 감시를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실제 제도화한 것은 문제"라며 "개표 과정의 공개성을 높일 방안을 고민해야 할 기관이 사생활 침해를 앞세워 촬영 제한부터 추진한 것은 선관위 개혁이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