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훈 노선만 대놓고 [국민 눈높이와 민심 중시]를 외치고 았다. 그렇다면, 이른바 민심은 항상 옳은가? 옳았던가?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링컨 대통령 당시 [국민 눈높이와 민심]은 [노예제 존속]이었다. 당시 미국 민주당 행태는 [머릿수 힘]만 믿고 떼거지로 밀어붙이는 [이재명 아버지 민주당]과 유사했다. 민심에 무조건 추종하지 않고, 민심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정치인에게 역사는 [위대한(The Great)]이란 수식어를 붙여준다.ⓒ
■ 한동훈, 과녁 잘못 택했다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이래 2000년대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유민주주의 정치 ☆자유시장 경제 ☆강력한 자유 수호의 안보태세를 유지해 왔다.
이는 이념적으론 [중도 우(右)]의 위상이다. 나치 독일 같은 극우 전체주의 도, 스탈린 소련 같은 극좌 전체주의 도 아니란 뜻이다.
이런 점에서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고 중도로 오라는 한동훈 후보자의 요구는 대한민국 자유·보수·우파를 향해서 할 말이 아니다. [공산 전체주의와 그 추종세력](2023 윤석열 대통령 8.15 경축사)을 향해서 해야한다.
그런데도 한동훈 후보자는 그런 화살을 극좌 아닌 자유·보수·우파를 향해 쏘았다.
그는 4.10 총선에 나타난 [수도권·중도·청년]의 투표성향을 [민심] [국민 눈높이]라 정의했다. 그리고 국민의힘 등 비(非) 좌파는 마땅히 그것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과연 현실 적합성이 있는 주장일까?
■ 달라진 유럽
이 판단은 우선 세계적 추세와 딱히 맞지 않는다. 18~19~20세기 초 자유주의가 초래한 [시장의 실패]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중국·동유럽에서 [사회주의적 국가개입]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국가의 실패]라는 역효과를 내고 지금 이 시각에도 퇴색 중이다. 그 결과, 공산주의는 망했다. 사회민주주의 좌파도, 북유럽 복지국가도, 다 시들해졌다.
■ 중도좌파도 아니라는게 역사적 추세
유럽 각국 사회민주당 우파는 토니 블레어[제3의 길] 이후, 지금도 계속 우경화하고 있다. 중도좌파 자리마저 떠나 더 를 향해 가는 추세다.
영국 노동당은 "우리는 중도로 변화한 노동당"이란 호소로  이번 총선의 승기를 잡았다. 중도좌파의 자리마저 떠나 우경에 우경을 거듭한 변화였다.
근래엔 [극우] 란 소리까지 듣는 [더한 우파]가 집권 직전에 도달했다.프랑스의 르펭,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을 비롯해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이탈리아에서도 우익 또는 극우가 급속하게 불어났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도 그 일종일 것이다.
이 현상은 반드시 건강한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명백하다. 그것은 결국 [좌익의 실패]를 반증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갈수록 늘어나는 유권자들이 [극좌 + 중도좌파 + 중도우파]까지 제치고 [강성 우파]를 찍어준다는 것이다.
이게 세계적인 [민심]이라면, 한동훈 후보의 “중도로 가자” 란 그 추세와는 정반대의 방향 아닌가?
■ 정치공학꾼들에 둘러쌓인 한동훈
국내정치적 기준에서 봐도 [한동훈 중도론] 은 효과가 [별로]일 듯싶다. 이른바 [중도확장론] 자체는 정치공학상 상정(想定)할 수는 있다. 그러나 [중도확장] 을 위해서는 자유·보수·우파가 [중도]로 좌클릭해야 한다는 가설은, 과연 적실할까?
[한동훈 국민의힘]이 제아무리 열렬히 [중도확장] [중도확장] 하며 [짝사랑 연가] 를 열창한다 해서 저쪽 표가 다만 얼마라도 이쪽으로 넘어올까? 도태우·장예찬을 제물로 바치고 몇 표나 대신 얻었을까?
■ 모두, 찬 물 먹고 정신차리자

결론 : 이쪽의 [영향력 + 투쟁력 + 단결]만이 승리를 보장한다. 
약하게 숙이고 나간다 해서 저쪽이 문재인 처럼 “고맙다. 미안하다” 라며 감격하지 않는다. 
찬물 먹고 정신 차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