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훈의 출마선언은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과 확연히 달랐다. 국민 눈높이와 민심에 부응 못했다고 강조했다. 국힘 지지층을 저평가하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 국힘 당원들 반응이 궁금하다.ⓒ정상윤 기자
■ 국힘 당원들 정신 차려라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다른 어느 때의 자유·보수·우파 여당의 전당대회보다 몇 배나 더 중요하고 아슬아슬하다.
2027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대한민국 수호진영은 반(反)대한민국 세력 과 또 한 차례 사느냐 죽느냐의 결전을 벌인다. 
이때 국민의힘은 어떤 모습일까? 이번 전당대회는 그것을 결정짓는 대회다.
■ 한동훈이냐 아니냐?
현재 링 위에 올라간 선수는, 윤상현 나경원 한동훈 원희룡(출마 선언 시간순) 넷이다. 
그러나 결국은, “한동훈이냐 아니냐?”의 택일로 갈 것이다.
이는 곧 이번 전당대회의 논제는,  윤석열 리더십과 [한 덩어리]로 갈 것인가, [수평적으로] 갈 것인가? ※ 윤석열[정통 자유주의]로 갈 것인가, 그와는 [다르게] 갈 것인가의 대결이란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드럽게 지낼 것인가, 껄끄럽게 지낼 것인가?”의 충돌이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연설은 공통된 성향을 보였다. [껄끄럽게 지내다간 다 죽는다(원희룡)]는 시국관이었다. 각자 다른 점도 물론 있었지만.
■ 한동훈은 튀었다
그러나 한동훈 연설은 현저하게 달랐다. 튀었다. 
좋게좋게 말하려 애는 썼지만, 한동훈 연설은 윤상현 나경원 원희룡 연설과 사뭇 달랐다. 
이 차이를 분명하게 꿰뚫어 봐야 비로소 제대로 알고서 하는 선택이 된다.
■ 한동훈 다른 점 먼저 파악해야
대중민주주의에선 냉엄한 분별력보다는 선동과 여론조작에 휘둘려서 선택하는 [중우(衆愚)] 현상이 고질화해 있다. 1960년대의 마오쩌둥 홍위병 현상이 따로 없다.
이렇기에 먼저 한동훈의 다른 점이 뭔지 분명히 알고서 그다음 태도를 결정하는 게 맞는 순서다. 예스(yes)든 노(no)든.
■ [국민 눈높이 부응]은 중우정치 
1. 한동훈은 우선 서두(序頭)에서부터 다른 셋과 다르다. 보수가 지난 4.10 총선에서 진 것은 “(대통령 팀)이 [민심] [국민 눈높이] 에 부응하지 않은 탓”이라고, 윤석열을 나무란다.
“우리는 국민의 요구(정권심판론)에 묵묵부답,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만을 보였습니다”
그런가? 물론 범사(凡事)에 자성하고 자괴해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 이재명] 쪽 아닌 국민의힘 쪽에 표를 준 [민심]은 여러 종류의 [민심]들 중 하나로 존중조차 받지 못한 채, 마치 [폐족(廢族)]처럼 묻혀야 하는가? 
졌지만 정당한 [민심], 계속 견지할 [민심]이 아니란 뜻?
한동훈은 말한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라는 명령에 리는 응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선택한 [가짜 민심] 을 버리고 그것에 등 돌린 [진짜 민심] 을 받아들이라는 말? 
설마 그런 뜻일 리야? 그러나 논리 자체는 그런 짜임새 아닌가?
■ 차별화는 결국 윤석열 때리기

2. [국민 눈높이] 에 맞추기 위해, [진짜 민심] 에 맞추기 위해, 당·정 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정립하고 실용적으로 쇄신하겠다고 한동훈은 또 말했다.
누구라도 마이크를 쥐면 “내가 당 대표 되면 대통령과 용산 참모들의 분신처럼 놀아주겠습니다.” 라고 말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마찬가지로 “나는 여당 대표라도 반드시 대통령과 각을 세우겠습니다” 라고도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저 [적당히] 해두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동훈은 그런 말을 굳이 했다. 왜?
그만큼 그의 [윤석열과 차별화하기] 의지는 강했다는 뜻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