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회고록 1권 표지 ⓒ교보문고
■  [대통령 박근혜]의 통한(痛恨)

<어둠을 지나 미래로, 박근혜 회고록> 1, 2를 단숨에 읽었다.

인간적으로는,
일국의 대통령이기 전에 한 [인격 박근혜]가 겪었던 온갖 풍상(風霜)이 아프게 와 닿는다.

정치적으로는,
자신의 정부를 포함한 모든 자유·보수·우파 쇠망(衰亡)의 최대 원인은 [내부 분열] 이라고 한 [대통령 박근혜]의 통한(痛恨)이 절절하다.

20대 총선 공천에서 저자는, [친박·비박] 운운에 자제를 당부했다.

그러나 집권 여당은 분열했다.
일부는 원칙보다 타협을 선호했다.
좌파의 국가보안법 폐지에 동조할 정도로.
★투항적 보수 ★기회주의 중간파 의 출현이었다.

다른 일부는 [진박(眞朴) 감별사] 임을 자처했다.
"내 이름을 빌려 호가호위하는 일도 꽤 있었다"라고 한 부분.
그들은 누구에게 전화해
"이건 대통령의 뜻이다. 그 지역에 출마하지 말라"라고 공갈쳤다.
★자폐적 보수 ★퇴영적 보수 의 출현이었다.
<무슨무슨 연석회의> [통일전선] 이 내거는 상투적 수작

1900년대 초부터 국제공산주의는 [통일전선] 전술을 폈다.
공산당이 이끄는 수직적 연합에,
적잖은 중간파 들이 멋도 모르고 가담했다.
동유럽이 그렇게 넘어갔다.

같은 시기 남한에서도 중간파 들이,
이승만 박사의 대한민국 건국노선에 기를 쓰고 반대했다.
그들은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란 굿판에 우~ 몰려갔다.
김일성·박헌영 의 6.25 남침 속내를 덮어준 꼴이었다.
■  [세월호 7시간] 과  [탄핵 정변] 

이 점은 2014년 [세월호 7시간]
그리고 2016년 [탄핵 정변] 때도,고대로 되풀이되었다.

[잃어버린 7시간] 을 두고 일부 매체들은 
★ 박근혜 대통령이 어디서 누구와 만났다느니
★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느니
★ 최서원 태블릿 PC가 어쨌다느니

온갖 [가짜 뉴스] 를 홍수처럼 퍼부었다.

언론이 미치자, 군중이 홱 돌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 차례씩 사과했다.

좌파는 그럴수록 더욱 [거국중립 내각] 에서 [오로지 탄핵] 으로 치달았다.
★청와대 비서들이 도망가고,
헌재(憲裁)가 반란군에 성문을 활짝 열었다.

[탄핵 정변] 은 이렇듯
좌파가 완성한 것이, 아니었다.

★극좌가 지핀 불씨에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일부가 기름을 들어부은 것이었다.
★여기다 [가짜 뉴스] 가 바람을 불어댔다.★평양성 문은 당군(唐軍)이 연 것이, 아니었다.
고구려 연개소문 아들 남건(男建) 부하가 열어준 것이었다.

■ 그래도 다시 나라 걱정

기막힌 세월을 뒤로 한 채 저자는 이제,
서정주의 시(詩) <국화 옆에서> 같은 모습으로 고즈넉이 앉았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그러면서 다시 나라를 걱정하는 마무리 한 마디.

”그분(윤석열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내세운 국민통합의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었고, 보수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는 생각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명에는 회복돼야 한다.
회복될 것이다.
4.10 총선에서 자유 진영이 이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