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은 인간의 계획을 싫어하시는 모양이다. 올 가을 나는 계획이 참 많았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지난 9일 별세한 장영희 교수는 생후 1개월 만에 소아마비 판정을 받아 평생을 목발을 의지해야 했고 3번의 암 판정을 받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따뜻한 글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남겼다. 위 글은 장 교수가 2001년 유방암 판정을 받은 후 두 번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회복됐다가 2004년 척추에서 암이 재발한 이후 썼던 글이다.
11일 조선일보는 그동안 조선일보 칼럼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영미시 산책’, ‘아침 논단’ 등을 연재했던 장영희 교수에 대해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장 교수는 두 번째 암 재발 후에도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 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힘든 투병 생활 중에도 강연과 집필 활동을 끊지 않았고 삶의 긍정적 메시지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던졌다. 다음은 지난해 12월 그가 조선일보에 투고한 ‘2008 겨울, 희망편지-비켜라, 암! 내가 간다“의 마지막 구절이다.
“끝이 안 보이는 항암 치료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지만 독자에게 한 내 말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희망을 연구하고 실험하리라. 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내년 봄 연구년이 끝날 무렵에 멋진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다면 난 지금 세상에서 가장 보람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또 조선일보는 장 교수에 대해 "장애우의 정당한 권익을 찾기 위해 실천에 나선 행동가”였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장 교수는 2001년 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 시절 7층짜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꼭대기 층에 살던 그는 3주 동안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장 교수는 이 아파트를 관리하던 보스턴 굴지의 부동산 회사를 상대로 싸워 사과와 함께 보상을 받아냈다. 당시 유력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는 장 교수의 스토리를 머리기사로 소개했다. NBC TV와 지역 방송들도 앞 다퉈 소개해 미국 장애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장영희 교수는 유작이 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샘터)에서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적을 원한다. 암에 걸리면 죽을 확률이 더 크고, 확률에 위배되는 것은 ‘기적’이기 때문” 이라고 적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10일 빈소를 찾은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투병 사실을 듣고, 장 교수에게 강의 수를 줄이라고 권유했는데 듣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장영희 교수의 유족으로는 어머니 이길자 여사와 오빠 장병우 전 LG오티스 대표, 언니 장영자씨, 여동생 영주, 영림, 순복 씨 등이 있다. 장 교수의 아버지 故 장왕록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1994년 심장마비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