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장기전이라는 걸 이번 작품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배웠어요."

'오징어 게임' 이후 전 세계가 정호연을 주목했다. 할리우드의 러브콜도 이어졌고, 세계적인 감독들과 작업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하지만 정호연은 오히려 한 걸음 늦게 걸었다. 작품을 쏟아내기보다 시간을 들여 자신을 다잡았고, 그렇게 도착한 작품이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였다.

지난 15일 개봉한 '호프'는 개봉 2주 만에 누적 관객 24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정호연은 극 중 호포항 순경 '성애'를 맡아 황정민, 조인성과 함께 극의 중심을 이끌었다. 강단 있는 경찰이지만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인물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정호연은 "'호프'는 배우 정호연에게도 하나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고 말했다.

◆ "첫 등장에 환호성… '배우를 계속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당시, 정호연이 처음 스크린에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당시 그는 "감정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배우 때문에 심장이 뛰고, 환호하고, 울었던 경험이 저도 많잖아요. 이번에는 제 연기를 보고 그런 반응을 보여주셨다는 게 정말 큰 의미였어요. 몇 분이라도 제 연기에 심장이 뛰고 호응해 주셨다는 것만으로 '이 일을 계속해도 되겠구나' 하는 응원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언론시사회 이후에는 기사와 리뷰도 하나하나 찾아봤다.

"정말 많이 검색했어요. (웃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죠."

◆ "'성애는 선의를 담당하는 사람'… 그 한마디가 캐릭터의 시작이었다"


정호연이 처음 받은 성애에 대한 설명은 의외로 단순했다.

"감독님께서 '성애는 인간의 여러 모습 가운데 선의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그 말은 캐릭터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힌트가 됐다.

그래서 성애의 분노 역시 악을 향한 적대감보다 사람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애플TV+ 시리즈 '디스클레이머'에서도 정의감이 강한 인물을 연기했는데요. 정의와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분노도 더 쉽게 커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성애가 화를 낼 때도 결국은 선의에서 출발한 감정이라고 믿고 연기했습니다."

나홍진 감독 역시 촬영 내내 같은 방향을 이야기했다.

"'사랑스러운 인물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감정을 무겁게 끌고 가기보다 직관적이고 본능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 6개월 준비한 총기 액션… "근육도 4kg 늘렸다"

성애는 '호프'에서 가장 거친 액션을 소화하는 인물이다.

정호연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약 6개월 동안 총기 훈련과 웨이트 트레이닝, 드리프트 연습을 병행했다.

근육량도 4kg가량 늘렸다.

특히 첫 등장 총기 액션은 가장 공들인 장면이다.

"첫 등장과 마지막 퇴장이 배우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저도 그 장면을 가장 많이 준비했어요."

나 감독의 촬영 방식도 인상 깊었다.

"감독님은 정말 계산적으로 촬영하세요. 그런데 현장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또 유연하게 받아들이세요."

대표적인 장면이 조인성을 향해 "오빠 멋있다", "오빠 사랑했었어"라고 외치는 순간이다.

"그건 현장에서 감독님이 즉석에서 주신 대사예요. 리액션 장면은 배우마다 다른 대사를 계속 던져주시면서 여러 버전을 찍었고, 그중 하나가 영화에 들어갔습니다."

정호연은 "감독님 현장에서는 NG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틀렸다'가 아니라 가능한 걸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방식이었어요."

◆ "잘하려고 하지 말라"… 황정민과 나홍진이 남긴 한마디

이번 작품에서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을 묻자 정호연은 망설임 없이 황정민을 이야기했다.

"'호프'를 보면서 황정민 선배님의 연기는 정말 기승전결이 살아 있다는 걸 느꼈어요. 주연 배우가 작품을 끌고 가는 힘이 무엇인지 현장에서 많이 배웠죠."

칸 상영이 끝난 뒤 그는 황정민과 나 감독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나요?'"

돌아온 답은 같았다.

"'잘하려고 하지 마.'"

정호연은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내공은 시간을 통해 몸에 쌓이는 거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지금 당장 뭔가를 증명하려고 하기보다 여러 작품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오징어 게임' 이후 생체리듬 찾는 데 주력"

전 세계적인 성공 이후 그는 오히려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오징어 게임' 이후에는 너무 큰 관심을 받아서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두렵고 불안했어요."

그래서 조급하게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를 멀리하고, 운동을 하고, 잠을 잘 자는 것부터 시작했다.

"제 생체리듬을 다시 찾으려고 했어요."

그 시간 동안 선배들의 조언도 큰 힘이 됐다.

"'지금은 혼자 끌고 가는 작품보다 좋은 선배들과 함께하는 작품을 해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 조언 덕분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디스클레이머', 이병헌 감독의 '닭강정', 그리고 '호프'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저는 크게 아쉽다는 생각은 없어요. 배우는 장기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미 너무 감사한 기회들을 많이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영화는 결국 공동체를 만드는 일"

정호연은 영화 촬영의 가장 큰 매력으로 '공동체'를 꼽았다.

"'호프'는 120명이 넘는 스태프들과 7~8개월을 함께했어요. 부모님이나 친구보다 더 자주 만나고 매일 밥을 먹으며 지냈죠."

그 시간은 마치 영화 속 호포항 사람들처럼 하나의 마을을 만들어 살아가는 경험이었다.

"다음 작품에 가면 또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요. 그 현장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경험은 배우만이 할 수 있는 정말 특별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자신의 연기에 후회가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잠시 생각하던 정호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배우라면 누구나 '이렇게 할 걸' 하는 아쉬움은 남아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감독님과 선배님들을 끝까지 믿고 달려왔어요. 그래서 후회는 없습니다. 오히려 큰 자부심이 남는 작품입니다."

'오징어 게임'이 배우 정호연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었다면, '호프'는 그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잘하려 하지 말라"는 한마디를 품은 그는 이번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단단하게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다음은 정호연과의 일문일답 전문.

Q. 칸국제영화제 월드프리미어 당시 자신의 첫 등장 장면에서 관객들의 환호가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감정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지금 다시 돌아보면 어떤 순간으로 기억되나요?

- 그 당시에는 오전부터 인터뷰와 레드카펫 등 여러 일정이 이어진 상태에서 영화를 봤기 때문에 제 감정을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저 역시 영화를 보면서 어떤 캐릭터나 장면 때문에 심장이 뛰고, 웃거나 울거나 환호했던 경험이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제 연기를 보고 관객들이 그런 반응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이 정말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비록 몇 분의 관객이라도 제 연기에 심장이 뛰고 호응해 주셨다는 것만으로도 '이 일을 계속해도 되겠구나'라는 응원을 받은 순간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Q. 언론시사회 이후 기자들의 반응도 많이 찾아보셨나요?

- 정말 많이 찾아봤습니다. 기사와 리뷰를 계속 검색하면서 읽었는데, 좋은 평가를 많이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제대로 본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크리처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황정민 선배님과 저 모두 너무 긴장되고 박진감이 넘쳐서 동시에 입을 벌린 채 소리를 내며 서로 손을 붙잡고 쳐다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저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작품이 완성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성애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영화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는 순간입니다. 그 장면은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 영화에서 다양한 액션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준비 기간만 약 6개월 정도였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유산소 운동으로 체력을 키웠고, 총기 훈련도 받았습니다. 또 수동 운전면허를 취득한 뒤에는 레이싱 전문가에게 드리프트를 배우며 자동차 액션도 준비했습니다.

배우에게는 첫 등장과 마지막 퇴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저 역시 그 장면을 가장 공들여 준비했습니다.

특히 차에서 내린 뒤 다시 차에 올라타기 전까지 이어지는 총기 액션은 제 기억으로는 18컷 정도였는데, 감독님은 그보다 더 많은 컷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워낙 다양한 테이크를 촬영해서 제 기억도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액션 자체는 한 번도 끊지 않고 마스터 숏으로 촬영했고, 홍경표 촬영감독님과 나홍진 감독님이 현장에서 여러 앵글을 함께 고민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주셨습니다. 그런 과정 덕분에 좋은 장면이 완성된 것 같습니다.

Q. 욕설 연기는 황정민 배우의 작품을 참고했다고 들었습니다. 액션 연기를 준비하면서 참고한 작품도 있었나요?

- 액션 자체를 위해 특정 여성 액션 캐릭터를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미지의 생명체와 마주하는 인물들의 리액션을 연구하기 위해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를 다시 봤고, 자동차 액션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감독님이 추천해주신 영화 '블리트(Bullitt)'를 참고했습니다.

Q. 성애와 본인이 닮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 닮은 점은 쉽게 지치지 않고 끝까지 앞으로 나아가려는 끈기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다른 점은 평소에는 그렇게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쉽게 흥분하는 성격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Q. 성애는 재난 같은 상황에서도 어딘가 밝고 에너지가 느껴지는 인물입니다. 감정선은 어떻게 설정하셨나요?

- 감독님께서는 성애라는 인물의 중심에는 '인간에 대한 선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애가 분노하는 순간들도 결국은 선의에서 비롯된 감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리딩 때 감독님께서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사랑스러운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분노를 무겁고 심각하게 표현하기보다는 훨씬 직관적이고 본능적으로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촬영 중에도 감독님께서는 "성애가 화면에 등장하면 영화가 청량해지고 사랑스러워진다"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힌트 삼아 감정을 과하게 무겁게 만들기보다 자연스럽고 사랑스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Q. 영화를 보고 '내가 뭘 본 거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배우님은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관객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어떤 감정이었나요?

- 가장 먼저 들었던 감정은 의외로 제가 많이 웃었다는 점이예요. 개인적으로 나홍진 감독님과 유머 코드가 잘 맞는다는 생각을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여러 번 했는데요. 엄청난 비극이 이어지는 상황인데도 '내가 여기서 웃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시나리오를 다 읽고 감독님과 처음 미팅했을 때도 "이렇게 비극적인 이야기인데 제가 웃어도 되는 걸까요?"라고 여쭤봤습니다. 그때 감독님께서는 "느낀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이 굉장히 삶과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실제 우리의 삶도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고, 가장 힘든 순간에도 예상치 못한 유머가 생겨나곤 하잖아요. '호프' 역시 그런 삶의 아이러니를 담아낸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감독님께서 모든 인물에게 관객이 보지 못하는 백스토리를 따로 설정해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애라는 인물은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하셨나요?

- 리딩 과정에서 감독님께서 가장 먼저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성애는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해결하는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이며, 심지어 마을 사람들의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공동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가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힌트가 됐습니다.

또 촬영하면서 농담처럼 나눴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성애가 총도 잘 쏘고 운전도 워낙 잘하니까 "사건이 없는 날에는 공터에서 깡통을 세워놓고 총기 연습이나 드리프트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며 스태프들과 웃으며 이야기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Q. 작은 항구 마을에서 오래 살아온 인물이라는 설정도 캐릭터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줬나요?

- 직접적으로 성애의 성격을 그렇게 설정하라고 말씀을 들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감독님께서는 허구의 마을이지만 실제 우리나라 어딘가에 있을 법한 공동체였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의 이름을 모두 알고, 집안 사정까지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런 공동체 안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진다면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고 반응할지를 계속 상상하면서 캐릭터에 접근했습니다.

Q. 영화 속에서 성애는 '아직 포기하면 안 된다' 같은 중요한 의미를 담은 대사를 많이 합니다. 그런 대사를 연기하는 데 부담은 없었나요?

- 오히려 의미를 전달하려는 의식을 너무 많이 하면 관객에게 부담스럽게 다가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는 계산보다는 그 순간, 그 상황에 가장 충실하게 대사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관객들이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나홍진 감독님의 영화는 관객들이 감독님의 의도와 관계없이 다양한 의미를 발견하고 해석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 자체가 감독님만의 특별한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Q.
세 명의 주연 배우 가운데 성애는 비교적 늦게 등장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 전혀 없었습니다.

영화는 감독님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께서 각 캐릭터를 가장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신 것이기 때문에 배우가 그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아봐도 저는 감독님이 만들어주신 상황을 얼마나 잘 따라가고 구현하느냐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Q.
감독님께서 첫 미팅에서 배우님을 만나자마자 '성애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대화를 나누셨나요?

- 사실 그날은 너무 긴장해서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에 대화 내용이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합니다. 최대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감독님의 눈빛이 워낙 강렬해서 제 속마음까지 다 들여다보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어떤 모습을 연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집은 어디인지 같은 아주 평범한 대화였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감독님께서 짜장면을 사주셨던 일입니다. "우리 호연 배우한테 짜장면 한 그릇은 사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식사를 함께했고, 식사를 마친 뒤 시나리오를 건네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작품 미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정도의 가벼운 자리였기 때문에 저 역시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간 것이 아니라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Q.
그때는 캐스팅이 확정된 상태는 아니었던 건가요?

- 네.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주신 것은 제안의 의미였습니다.

감독님도 저를 만나기 전부터 '성애는 정호연이다'라고 확신하고 계셨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신 뒤 그 자리에서 결심하시고 시나리오를 건네주셨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Q.
'오징어 게임'을 시작으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 김지운 감독, 그리고 나홍진 감독까지 거장들과 계속 작업하고 있습니다. 감독들이 배우님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저도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황동혁 감독님, 나홍진 감독님, 김지운 감독님 세 분 모두 저를 보며 똑같이 "야생마 같다"는 표현을 하셨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그게 제 장점인가 보다 생각했지만, 배우로서는 그런 에너지뿐 아니라 훨씬 더 섬세하고 디테일한 연기를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습니다.

이번 '호프'를 보면서 특히 황정민 선배님의 연기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기승전결이 살아 있는 연기, 주연 배우가 작품을 이끄는 힘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칸 상영이 끝난 뒤 선배님과 감독님께 "어떻게 하면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느냐"고 여쭤봤는데, 두 분 모두 "잘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내공은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에 쌓이는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무언가를 과하게 만들어 보여주려 하기보다 다양한 작품을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지금까지 함께한 감독님들은 모두 굉장히 디테일하고 집요한 분들이었습니다. 촬영도 수많은 테이크를 거듭하시지만, 그만큼 결과물에 끝까지 책임지는 분들이라는 점을 현장에서 느꼈습니다.

신인 배우인 저에게는 정말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기회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나홍진 감독과 유머 코드가 잘 맞는다고 했는데, 그 외에도 잘 맞는 부분이 있나요?

- 술도 좋아하고 잘 먹는 편이고, 무엇보다 유머 코드가 잘 맞아요. 감독님과 대화를 하면 항상 재미있고 티키타카가 잘 되는 편입니다.

Q.
감독님이 기자간담회에서 '정호연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캐스팅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점을 좋게 보신 것 같나요?

-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몰랐어요. (웃음) 왜 갑자기 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셨을까 싶기도 하고요. 감독님께 직접 여쭤본 적은 없어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굳이 꼽자면 제 에너지나 끊이지 않는 활력을 좋게 봐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은 제가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Q. 촬영하면서 가장 난도가 높았던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난도가 높았던 건 마지막 액션 시퀀스였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준비도 정말 많이 했고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저희 현장 무술팀은 대역 배우들까지 모두 무술감독님들이셨어요. 다른 작품에서는 직접 뛰지 않는 분들인데, 이번에는 한국 액션의 최전선에 있는 분들이 모두 모여 함께 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만큼 완성도 높은 액션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Q. 마지막 액션 장면에서 조인성 배우에게 "오빠 멋있다", "오빠 사랑했었어"라고 외치는 대사는 원래 대본에 있었나요?

- 아니요. 그건 현장에서 감독님이 추가해주신 대사였어요. 액션 장면은 안전 문제 때문에 필요한 컷만 정확하게 계산해서 촬영했는데, 그 이후 리액션 장면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환호하고 말이 뒤섞이는 에너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감독님이 배우마다 새로운 대사를 즉석에서 던져주시면서 다양한 버전으로 촬영했고, 그중 일부가 영화에 사용됐습니다.

Q. 현장에서 애드리브나 즉흥적인 변화가 많은 편이었나요?

- 기본적으로는 철저하게 계산된 상태에서 촬영했습니다. 다만 감독님은 무조건 대본대로만 가는 스타일은 아니셨어요. 기본 골조는 유지하되 현장에서 살아나는 순간들이 있으면 과감하게 받아들이셨고요. 그래서 NG라는 개념보다는 여러 가능성을 포착해가는 방식으로 촬영이 진행됐던 것 같습니다. 이후 편집 과정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선택하신 것 같아요.

Q. 영화의 결말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는데,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나요?

- 따로 '왜 이렇게 끝나나요?'라고 여쭤본 적은 없습니다. 저는 감독님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결말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촬영할 때도 의미를 분석하기보다 성애라는 인물의 감정에만 충실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제 경험으로는 의미를 계산해서 연기하려 할수록 오히려 어긋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성애가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목표를 끝까지 붙잡고 있다는 점에 집중했습니다.

Q.
"이건 말도 안 돼. 있을 수가 없어"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연기할 때는 어떤 감정이었나요?

- 정말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황이잖아요. 후반 작업을 거쳐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저도 몰랐기 때문에, 제 안에서 가장 황당하고 허무하고 우스우면서도 '이게 뭐지?' 싶은 상상력을 총동원해 연기했습니다. 그게 꼭 우주선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 상상은 저만 알고 있는 것이어서 또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Q.
비극적인 결말인데도 관객들에게 영화를 추천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어떤 영화로 소개하고 싶나요?

- 처음에는 의미를 찾으려고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에너지를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통쾌한 영화로 받아들이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다시 보시면 숨겨진 의미들이 하나씩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실제로도 다시 보고 싶었나요?

- 그럼요. 두 번째 보고 나니까 또 보고 싶더라고요.

Q.
두 번째 관람에서는 어떤 점이 새롭게 보였나요?

- 처음에는 인간의 입장에서 봤다면, 두 번째는 오히려 미지의 생명체 쪽에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감독님이 예전부터 '입장 차이에서 시작된 일이 비극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씀하셨는데, 두 번째 보니 그 말이 더 와닿았습니다. 인간 사회뿐 아니라 모든 존재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극, 그리고 우리가 믿는 선의와 정의, 희망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게 보시는 게 좋습니다.

Q.
성애는 극 중에서 미지의 생명체를 단호하게 악으로 규정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신념은 어떻게 표현하려 했나요?

- 감독님께서 성애는 인간의 여러 모습 가운데 '선의'를 담당하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전 작품(디스클레이머)에서도 정의감이 강한 인물을 연기한 적이 있는데, 정의나 신념이 확고한 사람일수록 분노와 슬픔도 쉽게 표출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성애가 그런 대사를 할 때는 강한 분노를 품고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연기했습니다.
Q. 여러 번 관람했는데, 자신의 연기에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 후회는 없습니다. 물론 배우라면 누구나 '이렇게 해볼 걸, 저렇게 해볼 걸' 하는 생각은 하잖아요. 제가 만난 어떤 선배님도 '이번 작품에서 완벽했다'고 말씀하시는 분은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이 작품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감독님과 선배님들을 믿고 달려왔고, 그 선택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Q.
영화 작업을 해보니 배우로서 어떤 재미를 느꼈나요?

- 어릴 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된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또 많은 관심과 기사, 다양한 반응을 받는 것도 배우에게는 정말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피드백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입니다. 그만큼 관심을 받는다는 게 이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까요."

Q. 영화 작업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 영화 작업의 가장 큰 매력은 낯선 사람들과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이번 작품은 약 120명의 스태프들과 7~8개월 동안 함께 촬영했는데, 부모님이나 친구들보다 더 자주 만나고 매일 함께 밥을 먹으며 지냈어요. 마치 영화 속 호포 마을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처럼요.

이런 경험은 다른 직업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끝나면 또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게 되는데, 촬영하는 동안에는 마치 이 현장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배우라는 직업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특별한 경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Q. 극 중 여성 배우가 거의 혼자였는데, 현장에서 특별한 점은 없었나요?

- 저는 거의 남동생처럼 지냈어요. (웃음) 그래도 선배님들께서 체력적인 부분은 많이 배려해주셨습니다.

특히 황정민 선배님은 액션 장면을 찍을 때마다 "체력 아껴야 한다"며 먼저 챙겨주셨어요. 저희는 무장을 한 채 뛰는 장면이 많았는데, 촬영 구간이 워낙 길어서 골프카트를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걸어가려고 했는데도 선배님께서 "성애, 무기 이리 줘. 체력 아껴야지" 하시며 먼저 장비를 들어주시고, "차 타고 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 세심한 배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Q. 박정민 배우의 추천으로 캐스팅됐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 저도 촬영을 시작한 뒤에야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확히 언제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촬영 이후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박정민 선배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직접 여쭤봤는데, 선배님께서 감독님과 "신선한 배우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하더라고요. 성애는 큰 총기를 다루고 운전과 액션도 많이 해야 하는 캐릭터인데, 그런 모습이 버거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함께 나누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선배님께서 '오징어 게임'을 보시고 제 생각이 나서 감독님께 "호연 씨는 어떠냐"고 가볍게 제안하셨고, 감독님도 "한번 만나보자"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Q. 임현식 배우와의 호흡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비하인드가 있나요?

- 거창한 비하인드는 없지만, 임현식 선생님은 제게 정말 전설 같은 존재였습니다. 촬영하면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영화나 TV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순간순간 "아, 맞다. 나도 연기해야지" 하고 정신을 차리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웃음)

Q. 그 장면도 촬영 기간이 길었다고 들었습니다.

- 네. 이틀 동안 촬영했습니다. 사실 이번 작품은 공을 많이 들인 장면들이 대부분 촬영 기간이 길었습니다.

제가 처음 총기를 들고 등장하는 액션 장면도 이틀 동안 촬영했어요.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다시 차에 타는 순간까지를 한 번도 끊지 않는 마스터 숏으로 여러 차례 촬영했고, 다양한 앵글과 인서트 컷도 굉장히 많이 찍었습니다.

Q.
다양한 앵글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나요?

- 그것도 있지만 연기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처음에는 체력이 충분한 상태에서 완벽한 동작과 사격을 담고 싶어 하셨고, 20테이크 이상 반복하다 보면 배우가 점점 지치면서 계획된 연기보다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되잖아요.

그렇게 실제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호흡까지 모두 담고 싶어 하셨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프리프로덕션은 프로덕션을 위해 존재하고, 프로덕션은 포스트프로덕션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씀이었어요.

결국 후반 작업에서 가장 좋은 장면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재료를 확보하는 방식이었죠. 배우 입장에서도 "한 번에 잘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느낌이라 오히려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Q. 그렇게 많은 테이크 가운데 어떤 장면이 영화에 사용됐는지는 기억하시나요?

- 그건 정말 모르겠습니다. (웃음) 감독님께 직접 여쭤봐야 할 것 같아요. 편집은 감독님만 아시는 영역이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Q.
 촬영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낸 적은 없으신 가요?

- 제가 먼저 제안한 애드리브는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원래 대본에 충실하려고 하는 편이라요.

대신 감독님께서 현장에서 상황에 맞게 대사를 조금씩 추가해주신 경우는 있었습니다.

Q.
어떤 대사들이었나요?

-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야기의 의미를 크게 바꾸는 대사라기보다는 현장감을 살리는 추임새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감독님께서 "여기서는 조금 더 소리가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추가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다만 이상희 선배님이 "쟤는 말을 왜 이렇게 잘 타"라고 하는 대사는 현장에서 생긴 건지 원래 대본에 있었던 건지 기억이 헷갈려서 잘못 말씀드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웃음)

Q.
영화가 끝난 뒤 성애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 같나요?

- 저는 이미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성애의 미래가 어느 정도 보여졌다고 생각합니다.

큰 비극을 겪었지만 결국 다시 미래를 바라보고 계획을 세우잖아요. 그 모습이 감독님께서 처음 말씀하셨던 "지치지 않는 선의"와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애는 앞으로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 같습니다.

Q. 본인의 연기 가운데 가장 만족스러운 장면이 있다면요?

- 정말 개인적인 만족인데요. (웃음) 총을 장전하는 손놀림이 생각보다 잘 나왔더라고요. 그 동작이 사실 굉장히 어려운데 화면에서 거침없이 자연스럽게 보여서 '손놀림은 괜찮았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 장면도 여러 번 촬영했습니다. 카메라 위치나 타이밍에 따라 다양한 버전을 찍었고, 영화는 혼자 만드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여러 번 시도해보는 건 항상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해남의 풍경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 마지막 장면의 하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감독님께서는 너무 맑지도, 그렇다고 비가 오지도 않는, 회색빛이 도는 하늘을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날씨를 기다리며 촬영했던 기억이 있는데, 영화에 정말 잘 담긴 것 같아요.

또 해남을 촬영지로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해의 광량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해남은 빛이 들어오는 느낌이 다른 지역과 조금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정확한 원리는 모르지만, 그런 자연광을 활용하기 위해 일부러 해남을 선택하셨다는 이야기를 선배님들에게 들었습니다.

Q.
배우의 꿈은 언제부터 꾸게 됐나요? 영향을 받은 작품도 궁금합니다.

- 해외에서 모델 활동을 할 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 시간 동안 영화를 정말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었어요.

그때 특히 많이 봤던 작품이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들과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마스터', 션 베이커 감독의 작품들이었습니다. 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 '이 투 마마'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너무 많아요. '칠드런 오브 맨'의 롱테이크, '파이트 클럽'의 여러 장면, '블루 재스민'에서 케이트 블란쳇의 무너지는 얼굴까지…. 그런 영화적 순간들이 배우라는 꿈을 꾸게 만들어준 계기였습니다.

Q. '오징어 게임' 이후 기대만큼 빠르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는데요.

- 오히려 '오징어 게임' 이후에는 감사함보다도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너무 큰 관심과 사랑을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받다 보니 인간 정호연으로서는 당황스럽고 불안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조급하게 다음 작품을 선택하기보다는 제게 시간을 주고 싶었습니다. 집에서 충분히 쉬고, 운동도 하고, 생활 리듬을 되찾으면서 다시 저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감정들이 조금씩 정리됐고, 선배님들께서 "지금은 혼자 모든 걸 이끌어야 하는 작품보다 좋은 선배들과 함께하는 작품을 경험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해주셨습니다.

그 말씀 덕분에 알폰소 쿠아론 감독님의 작품도 만나고, '닭강정'에도 특별출연했고, 이번에는 황정민, 조인성 선배님, 나홍진 감독님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배우는 장기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미 너무 감사한 기회들을 많이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사진 제공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