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호 법무부 장관. ⓒ뉴시스
문재인 정부 시절 국회를 출입하면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중진이던 정성호 의원을 여러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별도로 만난 자리에서는 정치와 법치, 민주당의 미래를 놓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특히 그는 사법연수원 동기인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높이 평가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정치 정상에 오른 그의 의지와 인간적인 면모를 이야기하며 그것이 친명(親明)의 길을 걷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당시는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던 시기였다. 그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은 선택이었다. 누군가는 정 의원을 사법리스크를 두둔하는 정치인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정 의원은 민주당 안에서도 손꼽히는 합리파였다. 계파보다 원칙을 먼저 이야기했고, 당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소신을 숨기지 않았다. 온화한 인품과 절제된 태도로 여야를 막론하고 신뢰를 얻었다.
그래서 최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모습은 더욱 낯설다. 정 장관은 지난 8일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에 대해 "야당에서 국회 논의에 적극 참여해 국민적 우려와 대안들을 적극 말해 달라"고 했다. "형사사법 체계에서 피해자가 억울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다. 정부의 기본 입장은 보완수사권 폐지지만 부작용이 우려되는 만큼 야당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대안을 제시해 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발언을 접하면서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국회에서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진 것은 민주당이다. 최종 입법권이 국회에 있다고 해서 정부가 예상되는 부작용을 알면서도 "야당이 막아 달라"고 말하는 것은 주무부처 장관의 태도로는 무책임하게 비칠 수 있다.
야당더러 막아 달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은 평론가가 아니다. 형사사법제도를 책임지는 국무위원이자 법안 제출권과 당정 협의를 통해 입법 과정에 참여하는 책임자다.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당과 정부를 설득하고 잘못된 입법을 바로잡기 위해 앞장서는 것이 장관의 책무다.
실제로 법무부는 검찰 내부 의견을 수렴해 국회에 제출한 형사소송법 개정 의견서에서 여러 우려를 제기했다. 민주당이 대안으로 제시한 보완수사요구권의 실효성 문제를 비롯해 검사의 영장 집행 지휘권 폐지 등 형사사법 체계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쟁점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스스로도 적지 않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정 장관이 이 같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몰라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그 책임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려는 현실의 사건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경찰의 부실 수사 논란이 제기된 사건들 가운데서는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관계가 드러나거나 수사 방향이 바로잡힌 사례가 적지 않았다. 개별 사건의 평가는 사법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겠지만, 적어도 보완수사가 형사사법 절차에서 일정한 견제 기능을 수행해 온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검찰의 직접수사권 축소와 조직 개편은 정책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경찰 수사가 사실상 1차적으로 종결되는 구조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권까지 전면 폐지된다면 견제 장치는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경찰이 사실관계를 잘못 판단하거나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을 때 기소 전에 이를 바로잡을 최소한의 장치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우려다. 결국 그 피해는 경제적·사회적 약자에게 더 크게 돌아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헌법적 논란도 적지 않다. 법조계에서는 보완수사권의 전면 폐지가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 원칙과 신체의 자유, 제27조의 재판청구권 보장 취지와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수사는 국가 권력이 행사하는 대표적인 공권력이다. 그렇기에 권한은 분산되고 서로를 견제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민주주의 형사사법의 기본 원리다.
보완수사권은 검찰이 다시 수사를 독점하자는 제도가 아니다. 기소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기관으로서 경찰 수사를 법률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하면 미비점을 보완하는 최소한의 검증 장치다. 권한의 집중은 오·남용을 낳고 견제 장치의 부재는 부실을 낳는다. 어느 쪽도 국민에게 이롭지 않다.
이러한 우려는 특정 성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학계에서도 다양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진보 성향 법률가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내부에서도 보완수사권의 전면 폐지보다 부분 존치나 유지 의견이 더 많았다는 조사 결과가 소개됐다. 해법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최소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정 장관도 과거 여러 차례 보완수사의 필요성을 언급해 왔다. 최근에도 민주당 법제사법위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보완수사권을 대안 없이 폐지하면 서민 피해가 우려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공개석상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일관되게 밝혀야 한다. 비공개 자리에서는 우려를 말하고 공개적으로는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국민은 어느 쪽이 진심인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인사라는 평가를 받아온 정 장관이라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당론을 마지못해 따르는 것이 아니다. 당이 실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헌법과 형사사법 원리에 근거해 왜 최소한의 보완수사권이 필요한지, 또 어떠한 방식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하는지를 대통령과 여당에 설명하는 것, 그것이 법무부 장관에게 부여된 책무이자 합리주의자의 역할이다.
과거 정 장관은 필자에게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이유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불굴의 의지"를 꼽았다. 이제 그 불굴의 의지는 정 장관 자신이 보여줄 차례다. 정치적 부담보다 국민의 기본권을 먼저 생각하고, 당론보다 헌법과 법치를 앞세우는 용기를 보여준다면 그는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법무부 장관의 임기는 끝나도 형사사법 제도의 후유증은 오래 남는다. 정성호라는 이름 앞에 '보완수사권 폐지의 문제를 바로잡은 합리적인 정치인'으로 남을지, 아니면 '보완수사권 폐지를 막지 못한 무능한 법무부 장관'으로 남을지는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역사는 직책이 아니라 선택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