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고업계 취업 준비생들이 채용 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정상윤 기자
[편집자주] 2030 여성의 표심은 특정 정당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이번 6·3 서울시장 선거에서 일부 20~30대 여성은 민주당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 기자는 그 이유를 통계가 아닌 사람에게서 찾기로 했다. 서울에서 민주당 후보를 선택하지 않은 20~30대 여성 30명을 직접 만났다. 이들이 가장 많이 꺼낸 단어는 '공정'과 '주거'였다. 취업과 내 집 마련이 표심과 어떻게 맞닿아 있었는지 두 편에 걸쳐 살펴본다.
서울 중구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32)씨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처음으로 민주당이 아닌 오세훈 후보를 선택했다. 대학 졸업 후 2년 넘게 취업을 준비하며 자격증과 어학 점수를 쌓았던 그는 "민주당이 싫어서라기보다 '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이 흔들렸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이라는 말이 제 삶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고 느꼈다"고 했다.
기자가 지난 3일부터 9일까지 7일간 서울 곳곳에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선택하지 않은 20~30대 여성 30명을 인터뷰한 결과,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 중 하나는 '공정'이었다. 응답자 대부분은 특정 정당보다 취업 문제와 같은 자신의 삶을 먼저 꺼냈다. 보수나 진보 같은 이념을 언급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들이 말하는 공정은 "노력에 대한 보상", "공정한 기회", "실력대로 평가받는 것"이었다.
취업준비생 김모(27)씨는 "취업 준비에서 가장 힘든 건 열심히 준비해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라며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실력 외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노력하면 된다고 하지만 금수저와는 출발선부터 다르다"며 "기성세대가 사다리를 걷어찬 것 같은 허탈감도 컸다"고 했다.
계엄 정국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지지했던 인터뷰 대상자들 가운데 일부도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삶과 직결되는 문제를 이야기했다. 이들에게 공정은 추상적인 정치 담론이 아니었다. 취업과 일자리를 둘러싼 생존의 문제였다. 당장 다음 달 월세와 연봉, 승진이 더 절박했고, 이들이 바랐던 것은 거창한 구호보다 납득할 수 있는 기회였다.
프리랜서 작가 최모(29)씨도 "예전에는 민주당을 여러 번 찍었다"며 "조국 사태 등을 보면서 '우리 편이면 불공정한 행동도 다르게 평가받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실력보다 진영이나 인맥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고, 그때부터 공정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고 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취업과 승진에서는 불공정을 자주 체감했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이모(33)씨는 "같은 일을 해도 누구는 더 좋은 업무를 맡고 승진 기회를 얻는 걸 보면서, 내가 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직원 김모(30)씨는 "입사 시기는 비슷한데 대기업에 간 친구들과 몇 년 지나고 나니 연봉과 복지에서 차이가 크게 난다"며 "내가 더 노력한다고 해서 그 격차를 줄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박모(29)씨는 "회사처럼 연차가 쌓이고 보상이 커지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결과물을 잘 만들어도 다음 일을 맡으려면 다시 처음부터 경쟁해야 한다. 노력한 시간이 보상받는다는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 한 여성이 채용박람회에서 채용 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정상윤 기자
공정에 대한 인식 변화는 청년들의 정치 지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정치권에서는 '2030=민주당 지지'라는 인식이 강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개혁과 참여를 내세운 민주당계 정당이 청년층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촛불집회와 정권 교체를 거치며 2030은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으로 여겨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공정을 둘러싼 논란은 이 같은 흐름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을 국정 철학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의혹과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태 등을 거치며 일부 청년층에서는 공정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2030=민주당'이라는 공식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청년층이 성별에 따라 갈리는 '이대남·이대녀' 구도가 형성됐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변화도 확인됐다. 계엄 국면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던 일부 2030 여성들조차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삶의 문제를 더 중요한 기준으로 꼽았다.
▲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왜 2030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정혜영 기자
정치권 내부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왜 2030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가' 토론회에서 봉건우 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장은 "지금은 전체 파이를 키우면 함께 나눌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누군가의 파이를 뺏어와야만 내가 먹고 살 수 있는 시대"라며 "청년들에게 공정은 이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송일찬 민주당 부대변인은 "청년 남성에 이어 청년 여성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박탈감과 공정에 대한 불신을 체감하기 시작했다"며 "민주당이 다시 신뢰를 얻으려면 청년 세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는 정당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30 여성을 하나의 정치적 성향으로 묶어 해석하기보다, 삶의 의제에 따라 선택을 달리하는 유권자층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정과 주거, 일자리처럼 생존과 직결된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정당이 이들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윤희웅 오피니언즈 대표는 "지금의 2030은 민주당을 외면했다기보다 자신의 삶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세대"라며 "청년들이 체감하는 불안과 박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을 누가 설득력 있게 제시하느냐가 앞으로의 정치적 선택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