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 혐의 등을 받는 장윤기가 광주 서구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좋은 형사사법제도는 특정 기관을 신뢰하는 제도가 아니라 어느 기관도 무조건 신뢰하지 않는 제도입니다."
최근 경찰이 '우발적 살인'으로 송치한 사건이 검찰 보완수사를 통해 1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살인으로 드러났다. 광주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 사건에서도 경찰이 확인하지 못한 성범죄 목적과 증거인멸 정황이 밝혀졌다.
강력범죄 사건에서 잇따라 검찰 보완수사를 통해 경찰 수사의 공백이 확인되면서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도 다시 불붙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장윤기 사건 이후에도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소송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전당대회에서 강성지지층의 표를 얻기위해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와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보완수사권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경찰 수사의 공백을 교차 검증할 장치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 출신인 전형환 법무법인 메가엑스 변호사는 9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두 사건이 보여준 것은 검찰이 우월하다는 점이 아니라 어떤 수사기관이든 1차 수사에는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형사사법의 상식"이라며 "실체적 진실에 도달하려면 다른 기관이 이를 교차 검증하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9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광주경찰청을 방문, '장윤기 사건' 부실 수사 의혹과 관련해 김영근 광주경찰청장과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 장윤기·홍성 사건 … "1차 수사 공백 드러나"
최근 검찰 보완수사는 강력범죄의 실체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잇따라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전지검 홍성지청은 9일 전 여자친구의 새 연인을 살해한 A씨를 살인 혐의 외에도 스토킹처벌법 위반과 살인예비 혐의를 추가해 구속기소했다.
경찰은 A씨를 살인 혐의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송치 이후 휴대전화 포렌식과 통신내역, 기지국 분석 등을 통해 A씨가 약 1년 전부터 범행을 준비한 정황을 확인했다. 피해자 주거지를 찾아가고 몰래 녹음기를 설치하거나 공기총 구매를 시도한 사실, 직접 제작한 흉기의 성능을 시험한 정황도 추가로 밝혀냈다.
앞서 광주 여고생 살해 사건에서도 경찰은 장윤기를 살인 혐의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보완수사를 통해 강간 등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장윤기의 부친인 현직 경찰 간부의 증거인멸 의혹과 경찰 초동수사의 부실 정황도 드러났다.
전 변호사는 "장윤기 사건은 경찰 수사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조직이 연루된 사건을 스스로 수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라며 "홍성 사건 역시 통신기록을 다시 분석한 뒤에야 계획살인이 드러난 만큼 수사기관 권한 다툼보다 피해자와 유족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 지난 5월 2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대검찰청은 지난 27일부터 사흘간 전국 고검장·검사장 화상회의를 소집해 보완수사권, 전건송치 등 검찰개혁 과제를 논의한다. ⓒ뉴시스
◆ "요구권으론 부족" … 실효적 견제장치 마련 촉구
민주당은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권은 폐지하되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권을 실질화하는 방향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구할 시 사법경찰관이 거절할 수 있는 근거가 삭제됐고, 반드시 보완수사에 착수해 그 결과를 검사에게 통보해야 한다.
또한 필요시 공소청의 장이 보완수사 담당 사법경찰관의 교체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적정 보완수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보완수사할 수사관서를 지정해 요구할 수 있게 했으며, 경찰 대신 중수청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다.
아울러 검사의 합당한 보완수사 및 시정조치 요구, 재수사 요청에 사법경찰관이 이유 없이 따르지 않을 경우엔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이 정비됐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이날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방침은 바뀌지 않았다"며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를 실질화하고 피해자의 이의제기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을 법안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전 변호사는 직접 보완수사 폐지 자체는 논의할 수 있지만 현재 제시된 대안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전 변호사는 "한국처럼 검사가 자체 수사관을 두고 직접 보완수사를 하는 나라는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경찰 수사를 강제력 없는 요구만으로 맡겨두는 나라도 없다"며 "프랑스는 검사의 지휘를 따르지 않는 사법경찰관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고 독일도 검사가 경찰 수사의 적법성에 책임을 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접 보완수사를 폐지하려면 불이행 시 인사·징계 연계나 전건송치 등 실질적인 강제장치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며 "지금처럼 요구만 하고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면 요구권은 사실상 의견서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 전형환 법무법인 메가엑스 변호사.
◆ 다음은 전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장윤기 사건과 홍성 계획살인 사건으로 검찰 보완수사권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어떻게 보나.
"저는 경찰에서 수사 실무를 했고 지금은 변호사로서 경찰과 검찰 수사를 모두 상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두 사건이 보여준 것은 검찰이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수사기관이든 1차 수사에는 반드시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형사사법의 상식입니다.
특히 장윤기 사건은 피의자의 부친이 현직 경찰관이었고 수사정보 유출과 증거 확보 누락 정황까지 드러났습니다. 경찰 수사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조직이 연루된 사건을 스스로 수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홍성 사건 역시 흉기를 직접 제작했는데도 우발범행으로 송치됐고 통신기록을 다시 분석한 뒤에야 계획살인이 드러났습니다. 죄명 하나에 따라 법정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와 유족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민주당은 보완수사권은 폐지하되 보완수사 요구권을 실질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나.
"방향 자체는 논의할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 수사를 강제력 없는 요구만으로 맡겨두는 나라도 없습니다.
현재 논의되는 개정안은 요구를 받는 경찰이 따르지 않아도 사건 자체를 통제할 수단이 없습니다. 직접 보완수사를 폐지하려면 프랑스처럼 자격 박탈이나 인사·징계 연계, 전건송치나 법원 통제 등 실질적인 강제장치를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보완수사권 폐지가 강력범죄 피해자 보호에는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나.
"피해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진범이 적절한 죄명으로 신속하게 기소되는 것입니다. 장윤기 사건에서 단순 살인과 강간 등 살인, 홍성 사건에서 우발범행과 계획범행의 차이는 모두 법정형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결국 제도 공백의 비용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가장 약한 피해자가 부담하게 됩니다."
-민주당은 전당대회 전 형사소송법 개정안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입법 속도에 대한 우려는 없나.
"우려가 큽니다. 형사소송법은 국가 형벌권의 설계도입니다. 정치 일정에 맞춰 골격 법률부터 처리하면 혼선은 결국 일선 수사 현장과 사건 당사자에게 돌아갑니다.
개혁의 시간표는 정치가 아니라 피해자와 국민을 기준으로 짜야 합니다."
-보완수사권 폐지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이라고 보나.
"기준은 하나입니다. 누가 권한을 갖느냐가 아니라 억울한 피해자와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는 구조냐는 것입니다.
좋은 형사사법제도는 특정 기관을 신뢰하는 제도가 아니라 어느 기관도 무조건 신뢰하지 않는 제도입니다. 직접 보완수사를 폐지하든 존치하든 경찰 수사를 실효적으로 교차 검증할 장치는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