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8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6·3 선거 청년 당선자 워크숍에서 김민석 전 국무총리와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가 이동하는 모습.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대진표가 사실상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당권 경쟁이 정책 대결보다 계파 간 이전투구로 흐르는 모습이다. 친노(친노무현) 적통 문제부터 김민석 전 국무총리의 '감기약' 공방, 자기 정치 논쟁까지 번져 설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작 민생을 둘러싼 비전 경쟁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기준 김민석·송영길·고민정 의원이 당 대표 선거 출마 선언을 마치면서 당권 싸움의 구도가 4파전으로 흐르고 있다. 당 대표 연임 도전이 유력한 정청래 전 대표의 출마 선언은 다음주 중 예정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총리와 송 의원의 연대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이번 전당대회는 두 사람과 정 전 대표 사이의 이른바 명청(이재명·정청래) 대전 구도로 압축되고 있다. 김 전 총리는 친명(친이재명)계의 지원을, 정 전 대표는 친노·친문 경향의 지지층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형국이다.
전당대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당권주자들은 연일 상대 진영을 겨냥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 전 대표가 자신을 '노무현 키즈'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적통 논쟁에 불을 지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총리는 '김민새'(김민석+철새)라는 멸칭이 부각됐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낮아지자 정몽준 후보 측으로 이동했던 전력이 재조명된 탓이다. 정 전 대표도 2007년 대선 국면에서 친노 노선과 대립 구도였던 '정통사'(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활동 이력이 부각됐다.
적통 논쟁은 지난 1일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오찬으로 잦아드는가 싶었지만 이번에는 '감기약 성분' 논란과 '자기 정치' 논쟁이 불거졌다.
친청(친정청래)계는 김 전 총리가 2024년 12월 3일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표결에 불참한 배경을 두고 고의성을 의심했다. 김 전 총리가 감기약을 복용하고 자느라 표결 이후에야 국회 본회의장에 도착한 사실을 소환하며 "감기약 성분을 밝히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김 전 총리는 "대장동 때를 보는 것 같다"며 "허위 사실 주장에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여기에 김 전 총리와 정 전 대표는 '자기 정치'를 두고도 거세게 붙었다.
김 전 총리가 지난 6일 당권 출마를 선언하며 "자기 정치의 폐해가 당과 당·정협력을 혼선에 빠뜨렸다"고 지적하자 정 전 대표는 "현직 국무총리가 '당 대표 로망' 발언을 함으로써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이 대표적 자기 정치 사례"라고 받아쳤다. 그러면서 "저를 공격하지 않으면 저도 정당방위 할 일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김 전 총리가 전날 '김어준 방송'에서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두고 "폭탄선언식으로 해서 일을 그르쳤다"고 재차 직격하면서 신경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김 전 총리는 정 전 대표의 '당 대표 로망' 지적에 대해 "그것이 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사례라면 저는 자기 정치를 거의 안 했다고 평가해준 것이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당대회 룰을 두고도 계파 간 갈등이 치열해지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지난 7일 당 대표 선거에서 결선투표 대신 '선호투표제'를 도입하기로 의결했다가 정 전 대표 측과 고 의원의 반발이 이어지자 재논의하기로 했다.
친청계는 "당헌·당규 위반이고 권한 없는 행위로 원천 무효"라며 선호투표에 반대했고, 김 전 총리와 송 의원은 전준위의 선호투표제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당 안팎에서는 전당대회가 공천권을 둘러싼 계파 경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기 당 대표가 2028년 총선 공천권을 쥐게 되는 만큼 계파 간 볼썽사나운 파워 게임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당권주자들이 이전투구에 매몰된 사이 민생 현안에 대한 고민은 사실상 실종됐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지방선거 이후 2030 세대를 입에 올리는 빈도수는 늘었으나 이들 세대가 민주당 진영에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 계기인 부동산 정책, 일자리 문제 등에 대한 정책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존폐 여부도 국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에 대한 고민보다는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선명성 경쟁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최근 '광주 여고생 살인' 장윤기 사건을 수사한 경찰에 대해 증거 인멸 등 유착 의혹이 제기되면서 야권과 법조계를 중심으로 보완수사권 존치 요구는 거세지고 있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폐지론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당에서 보완수사권이 유지돼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지만 강경론에 묻혀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없지 않다"며 "당의 강성 지지층만 의식할 것이 아니라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책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