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표시돼 있다. ⓒ뉴데일리
미국·이란 전쟁 직후 유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담합한 혐의를 받는 국내 정유사들과 관계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6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4개 회사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 부서장과 책임매니저, 법무실장, GS칼텍스 국내영업 부문장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검찰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직접 담합 규모는 약 14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해당 가격을 참고해 가격을 인상한 영향까지 포함하면 총 26조 원 규모의 경쟁 제한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검찰은 미국·이란 전쟁 발발 직후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이례적으로 급등한 점을 수상하게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가격결정부서 책임자들은 전쟁 직후 석유제품 가격 인상 시기와 인상 폭을 사전에 협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HD현대오일뱅크 직원들이 전쟁 이전부터 SK에너지 임직원들과 지속적으로 가격 정보를 교환한 정황도 확인됐다.
검찰은 "전쟁 직후의 담합은 일시적인 일탈이 아니라 평소 이어져 온 담합 관행이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설명했다.
당시 정유사들은 상당량의 원유를 이미 비축하고 있어 원가 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회사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공급가격을 일제히 인상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국내 정유시장이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가격을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추종하는 구조인 만큼 두 회사의 가격 담합이 시장 전반의 유가 급등을 촉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GS칼텍스와 에쓰오일 가격결정부서 직원들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가격 인상 수준을 그대로 따라간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이 사용한 대화방에는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우리 올해 2조 벌 듯" 등의 메시지가 오간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검찰은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행위가 경쟁질서를 저해하는 전형적인 '의식적 병행행위'에는 해당하지만 현행 공정거래법상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라며 이 부분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와 함께 유가 상승 원인으로 지목된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관행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여 정유 4사를 모두 기소했다.
수사 결과 이들 업체는 자영주유소와 전량구매계약을 체결한 뒤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결정한 가격에 따라 해당 정유사로부터만 석유제품 전량을 구매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계약으로 주유소들은 가격을 비교해 더 저렴한 공급처를 선택할 수 없었고, 계약을 위반할 경우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등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조사 계획을 사전에 파악한 뒤 증거를 인멸하려 한 정황을 확인하고 두 회사 직원들을 공정거래법상 조사방해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했다.
또 정유사 3곳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석유제품 공급가격을 실제 인상 폭보다 낮게 허위 보고한 사실도 확인했다며 향후 산업통상자원부와 관련 자료를 공유하고 후속 조치를 협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검찰은 "담합과 거래상 우월적 지위 남용을 통해 유가를 교란한 피고인들에게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