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도죄의 핵심은 '계산을 안 했느냐'가 아니라 '처음부터 돈을 내지 않고 가져가려는 고의가 있었느냐'에 있다. ⓒChatGPT
[편집자주] 이거 불법인가요?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궁금증을 가져봅니다. 하지만 법은 어렵고, 판례는 더 어렵습니다. '정혜영의 생활법률.zip'은 실제 사례와 판례를 통해 일상 속 법률 궁금증을 쉽고 명확하게 풀어드립니다. 뉴스로 끝나는 법이 아닌, 내 삶에 필요한 법 이야기를 전합니다. '정혜영의 생활법률.zip' 연재물을 통해 독자 여러분이 법 때문에 '함정'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퇴근길 마트를 찾은 70대 A씨.
셀프계산대에서 과자와 즉석밥 등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을 차례로 계산한 뒤 매장을 나섰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계산하지 않은 물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5400원짜리 음료수 6캔을 장바구니에 담아둔 채 계산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갔다. 검찰은 이를 절도라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누가 봐도 절도처럼 보이는 사건.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A씨가 다른 물건은 모두 정상적으로 계산했고, 장바구니를 손목에 걸친 채 다른 물건을 들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음료수를 순간적으로 잊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5400원짜리 음료수만 가져가기 위해 1만 원이 넘는 다른 물건은 모두 정상적으로 결제했다는 점도 자연스럽지 않다고 판단했다. 결국 절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 절도 가르는 고의
그렇다면 셀프계산대에서 물건 하나를 계산하지 않고 나오면 절도죄가 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셀프계산대에서 계산하지 않은 물건을 들고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절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실수였다"는 말 한마디만으로 형사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절도죄의 핵심은 '계산을 안 했느냐'가 아니라 '처음부터 돈을 내지 않고 가져가려는 고의가 있었느냐'에 있다.
형법상 절도죄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해야 성립한다. 이때 단순히 물건을 가져간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는 의사, 즉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돼야 한다.
▲ 타인의 재물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는 의사가 인정돼야 절도죄가 성립한다. ⓒ뉴데일리DB
◆ 법원은 이렇게 본다
그래서 수사기관과 법원은 CCTV 영상 등 객관적인 정황을 살핀다. 바코드를 제대로 스캔하려 했는지, 계산이 끝난 뒤 누락 사실을 알아차릴 만한 상황이었는지, 고가 상품만 의도적으로 빼놓지는 않았는지, 비슷한 일이 반복된 적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실수'와 '고의'를 구별한다.
예를 들어 물건을 계산대 아래에 숨기거나, 값이 싼 상품만 스캔한 뒤 고가 상품을 그대로 가져가는 등 적극적으로 계산을 피한 정황이 확인되면 절도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계산 과정에서 단순한 착오가 있었고, 이후 누락 사실을 알고 곧바로 매장에 알리거나 추가 결제를 하는 등 절취 의사를 인정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실무에서도 판단 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다.
김은경 법률사무소 지한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CCTV 등 객관적인 증거"라며 "물건을 일부러 숨겼는지, 바코드를 제대로 스캔하려 했는지, 계산이 끝난 뒤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건을 많이 구매하다가 하나 정도 빠진 경우는 단순 실수로 볼 여지가 있지만, 계산 누락이 반복되거나 특정 상품만 계속 빠진다면 고의로 의심받을 가능성이 커진다"며 "실무에서는 상당수가 경찰 수사 단계에서 종결되거나, 검찰에 송치되더라도 약식절차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 뒤늦게 알았다면?
의외로 중요한 점도 있다. 처음에는 단순 실수였더라도 계산이 누락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는데도 그대로 귀가하거나 물건을 사용해 버리면 이후에는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셀프계산대 이용이 늘면서 계산 누락 사례도 함께 증가하고 있지만, 모든 누락이 곧바로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셀프계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산이 누락됐느냐'가 아니라 '처음부터 훔칠 의도가 있었느냐'다. 계산이 누락된 사실을 알게 됐다면 즉시 매장에 알리고 대금을 지급하는 것이 불필요한 형사 분쟁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 정혜영의 생활법률.zip은 실제 사례와 판례를 통해 일상 속 법률 궁금증을 쉽고 명확하게 풀어드립니다. ⓒChatGPT
◆ 한 줄 생활법률.zip
Q. 셀프계산대에서 물건 하나를 계산하지 않고 나오면 무조건 절도죄일까?
A. 아니다. 단순히 계산이 누락됐다는 이유만으로 절도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핵심은 처음부터 돈을 내지 않고 가져가려는 '고의(불법영득의사)'가 있었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