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규 회장은 홍명보 감독 선임 불공정 논란 등으로 국정감사에 출석해야 했다.ⓒ뉴시스 제공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처참한 실패. 지금 모든 비난의 화살은 홍명보 한국 대표팀 감독에게 쏠리고 있다. 
북중미 월드컵 참패의 원인에서 홍명보를 빠뜨릴 수 없다. 그러나 실패의 '원천'은 따로 있다. 홍명보의 등장을 주도한 힘이기도 하다. 바로 대한축구협회(축구협회)다. 정확히 말하자면 축구협회의 '독재'다. 이를 주도한 건 '현대가'다. 무려 33년 동안.  
◇성과와 논란 공존, 정몽준 회장 
1993년.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이 제47대 대한축구협회장에 올랐다. 이때부터 '현대가'의 축구협회 점령이 시작됐다. 
시작은 좋았다. 지금 이미지대로 현대가의 점령이 전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정몽준 회장 재임 시절 분명 한국 축구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이에 정몽준 회장은 한국 축구의 최고 영웅 중 하나로 꼽힌다. 
최고 업적은 역시나 2002 한일 월드컵이다. 일본의 단독 개최로 진행 중이던 월드컵을 정몽준 회장이 자본력과 외교력을 앞세워 한일 공동 개최로 반전시켰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한일 월드컵이지만 사실상 한국의 월드컵이었다. 2002년 월드컵의 주인공은 한국이었다. 한국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강호들을 연파하며 4강 신화를 달성했다. 전국을 붉게 물들였던 길거리 응원은 전 세계를 감동의 물결로 몰아넣었다. 
정몽준 회장은 축구에 진심이었다. 2002 월드컵이 성공하기까지 재정 자립도가 약한 축구협회를 위해 사비를 선뜻 내놓기도 했다. 이런 노력과 과정이 2002년 신화를 이룩해냈다. 
축구는 진정한 한국의 국민 스포츠가 됐다. 축구협회는 돈에 허덕이는 조직에서 스포츠 단체 중 가장 큰 예산을 주무르는 조직이 됐다. 또 축구 인프라를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켰고, 축구의 변방 한국이 축구의 중심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런 성과를 이끈 정몽준 회장은 한국 축구 최고의 영웅적 수장으로 등극했다. 한국 축구 발전의 '선구자'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모든 빛에는 어둠이 숨어 있는 법. 2002년 월드컵의 대성공은 정몽준 회장에게 절대 권력을 안겼다. 월드컵으로 인해 정몽준 회장은 유력 대통령 후보로까지 올라섰다. 이런 그에게 토를 달 수 있는 이는 축구협회 내부에 존재하지 않았다. 
정몽준 회장은 '장기 집권'을 시작했다. 그는 그 어떤 저항없이 48대, 49대, 50대 회장까지 4연임에 성공했다. 1993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16년이다. 장기 집권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독재는 부패하기 마련이다.  
정몽준 회장이 쌓아놓은 단단하고 높은 벽에, 정몽준 회장의 눈에 든 '주류'와 '비주류'가 갈렸고, '여권'과 '야권'의 불화는 끊이지 않았다. 야권이 진입할 수 있는 여지를 봉쇄했다. 이런 불통과 일방통행은 시간이 갈수록 반감을 키웠고, 정권 말기 정몽준 회장은 선구자로서의 존경보다 장기 권력화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결국 물러났다. 
정몽준 회장이 물러난 뒤에도 현대가는 한 번 잡은 권력을 놓지 않았다. 51대 축구협회장은 조중연 회장이었다. 그는 현대가 출신이었고, 정몽준의 사람이었다. 
◇무능한 독재자 정몽규
조중연 회장이 잠시 자리에 앉은 후 2013년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등장했다. 52대 축구협회장으로 당선됐다. 
이때부터 한국 축구 몰락의 속도는 빨라졌다. 아무리 실책을 저질러도 정몽규 회장의 입지는 단단했다. 정몽준 회장에 이은 독재 체제는 정몽규 회장에서도 이어졌고, 축구협회 내부에 회장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그 누구도 없었다. 소통은 없었고, 불통은 압도적인 힘을 자랑했다.  
정몽규 회장은 정몽준 회장의 길을 따라갔다. 52대로 시작해 53대, 54대, 55대까지 4연임에 성공했다. 정몽준 회장 시절까지 더하면 현대가는 한국 축구를 무려 33년간 지배를 한 것이다. 정몽준 회장이 잘했던 점은 외면했고, 잘못했던 점만 승계받았다. 
정몽준 회장은 그래도 공이라도 있지, 정몽규 회장 체제에서 공을 찾기는 어렵다. 많이 양보하면 K리그 승강제의 정착 정도라 할 수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 선임과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도 추가할 수 있다. 이외에는 생각나는 게 없다. 그가 야심차게 내놓은 코리아풋볼파크도 접근성 등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공은 너무나 작고 과는 너무나 크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참패,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시도, 울리 슈틸리케·위르겐 클린스만·홍명보 등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실패,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초유의 국정 감사, 2026 북중미 월드컵 참패 등 실책 공화국이다. 
이런 무능한 수장의 모습을 보였음에도, 무능함이 공식적으로 증명됐음에도, 4연임까지 할 수 있는 조직. 한국에서 축구협회뿐이다. 독재 체제이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견제 세력이 없었다. 체육관 선거로 압도적 몰표를 받을 수 있는 독재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한국에서 가장 페쇄적인 조직이라는 오명. 그리고 정씨 가문의 '독재 사조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매번 실책의 종합세트를 만들어 온 정몽규 회장이다. 그는 같은 일을 반족했다. 52대 임기가 끝난 후 개혁을 약속했고, 53대 임기가 끝난 후 개혁을 약속했고, 54대 임기가 끝난 후 개혁을 약속했다. 55대 임기를 시작하면서도 개혁을 악속했다. 또 매번 엄청난 공약을 내걸었다. 지켜진 건 거의 없다. 축구계의 화합과 통합도 실패했고, 축구협회 예산 3000억 시대도 실패했다. 
도돌이표다. 책임은 지지 않았고, 꼬리 자르기에 진심이었던 수장이었다. 잠깐 고개를 숙여 사과한 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책임 회피를 위한 시간 끌기. 뒤로 물러나 있기를 최선봉에 내세운 정몽규 회장. 그를 향한 불신을 정점을 찍고 있다. 
정 회장은 2026 북중미 월드컵이 개막하기 전 사퇴를 약속했다. 월드컵이 끝난 후 물러나겠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한국 축구가 후퇴한 건 안타깝지만,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지금이라도 물러나서 다행이다. 한국 축구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 정몽규 회장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참패에 대해 사과했다.ⓒ뉴시스 제공
◇축구인들도 공범
현대가 독재 33년. 독재자만 있어서 가능한 현상이 아니다. 독재를 떠받는 부역자들도 있었기에 독제 체제는 오랜 시간 공고히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부역자들은 한국의 축구인들이다. 
기업인에게 수장 자리를 맡겨 놓고 축구인들은 찬양하는데 진심이었다. 그들이 한 일은 회장님 비위 맞추기. 회장님 눈에 들기. 회장님 권력 지키기. 그들은 대기업 회장이 선사하신 콩고물을 받아 축구협회에서 한 자리씩 차지했다. 견제와 감시가 아닌, 성장과 시너지가 아닌, 정 회장의 심기에 거슬리지 않는 일에 집중을 한 것이다. 그래야 축구협회에 남아 대기업 총수가 내어준 권력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기에. 밥그룻을 유지할 수 있기에.   
현대가 체제에서 수많은 스타 출신 축구인들이 축구협회에서 일했다. 특히 정권의 위기 때마다 스타 출신들이 얼굴마담으로 기용됐다. 이용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얄팍한 권력의 한 줌을 잡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고개를 숙였다. 스타 방패막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중 단 한 명이라도, 정말 단 한 명이라도 회장의 독재에 반기를 들고, 회장에 맞서 한국 축구의 정상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이 있는가. 모두가 회장님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회장님의 선택과 결정은 무조건 옳았다.  
회장님이 선사한 그 작은 권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 다른 축구인들과 반목하며 총질을 해댔다. 축구계는 분열됐다. 축구인들은 파가 갈렸다. 독재자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이렇게 축구인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들도 공범이다. 정몽규 회장이 물러나면, 그의 콩고물을 받아먹은 모든 축구인들도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체육관 선거에서 정몽규 회장을 공개 지지하며 압도적 몰표를 몰아준 그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