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다.
홈에서 열린 첫 번째 월드컵.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휘한 한국 축구대표팀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작성했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강호들을 연파하고 역대 최고 성적인 4강 진출. 전 세계가 한국 축구의 저력에 충격을 받았다.
2002년 4강 신화.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영광. 그리고 축구를 넘어 한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환희였다.
그러나, 2002년 신화 속에서도 '어둠'이 존재한다. 겉으로 잘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02년 4강 신화가 홍명보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2002년 영광은 대한축구협회(축구협회)의 영향력과 위상을 극도로 높였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축구협회는 자신들의 얼굴이 돼줄 '황태자'를 찾았다. 그게 바로 홍명보였다.
2002 4강 신화의 주역이자 주장.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리베로. 선수로서 홍명보는 영웅이다. 이견이 없는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다. 이런 홍명보는 축구협회의 얼굴 역할을 하기에 최적의 인물이었다.
선수 영웅 홍명보가 선수에서 은퇴를 선언한 후부터가 문제였다. 축구협회의 의지와 홍명보의 야망이 맞닿았고, 이후 한국 축구는 몰락의 길을 시작했다. 특혜와 반칙이 난무했다. 불공정과 불투명이 한국 축구를 지배했다. 과정과 절차가 무시됐고, 상식에 어굿났다.
이 후폭풍이 2026 북중미 월드컵까지 이어진 것이다.
◇시작은 2005년, 무자격 코치 논란
시작은 2005년이었다. 홍명보의 지도자의 시작은 '부정출발'이었다. 시작부터 논란이었다.
2005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황태자 홍명보는 코치진으로 합류했다. 그런데 당시 홍명보는 1급 자격증이 없었다. 당연히 1급 자격증이 없으면 대표팀 코치를 할 수 없다. 홍명보 무자격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축구협회는 "지휘권을 갖지 않는 보조 지도자 역할이기 때문에 홍명보 코치의 1급 자격증 취득 여부는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며 논란을 덮었다. 이 논란은 시작에 불과했다.
홍명보는 200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지휘봉을 잡았다. 황태자가 코치를 넘어 '감독'이 된 것이다. 홍명보호는 8강이라는 성과를 냈다. 축구협회는 환호했고, 감독 홍명보의 역량과 가치에 찬사를 보냈다.
문제는 그다음 대회에서 터졌다. 홍 감독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이끌었다. 4강에서 골키퍼 교체라는 실책을 저지르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아시아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한국 축구에 있어서 아시안게임은 무조건 '금메달'이어야 한다. 금메달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금메달이 아니면 실패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감독은 경질이다. 이것이 축구협회의 방식, 한국 축구의 대응이었다.
홍명보는 분명 실패를 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홍 감독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댔다. 홍명보이기에 달랐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경질당했을 것이지만, 홍명보는 살아 남았다. 황태자 만들기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축구협회가 홍명보에게 특혜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형평성에도 어긋났다. 홍명보는 축구협회의 절대적 지지 속에 아시안게임 금메달 실패의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영전할 수 있었다.
축구협회는 아시안게임에서 실패한 감독에게 더 상위 대회인 '올림픽' 지휘봉을 맡겼다. 2012 런던 올림픽이다.
홍명보호는 런던에서 기적을 썼다. 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동메달을 따냈다. 홍명보의 감독 커리어 최대 업적이다. 이 올림픽 동메달은 분명 한국 축구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
◇올림픽 동메달 맹신, 상식 밖 월드컵 대표팀 감독 선임
안타깝게도 올림픽 동메달의 영광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2002 4강 신화처럼 2012 올림픽 동메달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망쳐버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황태자의 올림픽 동메달은 축구협회가 홍명보를 맹신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홍명보는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찬양의 존재가 됐다.
이후 한국 축구 추락의 속도는 빨라지고, 크기는 커졌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협회는 홍명보는 감독으로 전격 선임했다. 상식의 파괴. 특혜의 연속. 맹신의 위험성. 모두 포함된 홍명보 감독 파격 선임이었다.
이전까지 감독 홍명보는 성인팀 지도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런 감독을 성인팀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 감독으로 부른 것이다. 이례적인 일, 아니 기괴한 일이다. 다른 국가에서도 이런 전례는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런 해괴한 현상은 올림픽 동메달이 만들어 낸 결과다. 올림픽 동메달을 땄으니 월드컵에서도 통할 거라는 맹신.
올림픽은 U-23 대회다. 연령별 대회라는 거다. 게다가 U-23에 포함되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도 출전하지 않는 대회다. 월드컵과 차원이 다른 대회라는 의미다.
참사가 예고됐고, 참사는 현실이 됐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나선 홍명보호는 1무 2패로 조 꼴찌 탈락했다. 특히 '1승 제물'이라고 만만히 보던 알제리에 2-4 참패를 당했다. 21세기 한국 월드컵 역사상 1승도 하지 못한 첫 번째 대회. 이 악몽의 주인공이 홍명보였다. 그리고 홍명보를 맹신한 축구협회였다.
놀라운 건 브라질 월드컵 참패 후 축구협회가 홍명보 감독 '유임'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상식 파괴, 특혜, 반칙이 또 나왔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축구협회와 홍명보가 어떤 관계인지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결국 여론에 등 떠밀려 홍명보는 사퇴했지만, 홍명보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축구협회의 시도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브라질 월드컵 참패 후 홍명보는 중국으로 갔다. 중국 축구 클럽인 항저우 뤼청 감독으로 부임했다. 결과는? 1부리그 항저우는 홍 감독 체제 아래 2부리그로 강등됐다. 축구협회를 떠난 후, 축구협회의 지원이 없는 첫 도전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이런 방황하는 홍명보를 축구협회는 가만히 둘 수 없었다. 2017년 축구협회는 홍명보를 전무이사로 선임했다. 성인팀 감독 경험이 없는 홍명보를 월드컵 감독에 앉힌 축구협회. 이번에는 행정 경험이 '전무'한 홍명보를 전무로 앉혔다. 행정의 사령관으로 모셨다. 여기에 전무이사를 보좌하는 사무총장직을 신설하는 노력까지 더했다.
전무이사 홍명보. 그의 행정이 한국 축구를 발전시켰나. 도대체 홍명보의 행정으로 무슨 변화가 일어났나. 없다. 그대로였다. 오히려 홍명보는 축구협회를 나와 2020년 한국 K리그1(1부리그) 울산HD 감독으로 갔다. 전무이사 자리는 다시 지도자를 하기 위한 도피처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홍명보는 비상했다. 현대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홍 감독은 K리그1 2연패를 달성했다. 전북 현대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시기와 맞물려 울산의 독주가 펼쳐진 것이다. 홍명보는 K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섰다. 성인팀 감독으로서 최초의 성과였다.
홈에서 열린 첫 번째 월드컵.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휘한 한국 축구대표팀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작성했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강호들을 연파하고 역대 최고 성적인 4강 진출. 전 세계가 한국 축구의 저력에 충격을 받았다.
2002년 4강 신화.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영광. 그리고 축구를 넘어 한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환희였다.
그러나, 2002년 신화 속에서도 '어둠'이 존재한다. 겉으로 잘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02년 4강 신화가 홍명보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2002년 영광은 대한축구협회(축구협회)의 영향력과 위상을 극도로 높였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축구협회는 자신들의 얼굴이 돼줄 '황태자'를 찾았다. 그게 바로 홍명보였다.
2002 4강 신화의 주역이자 주장. 강력한 카리스마로 무장한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리베로. 선수로서 홍명보는 영웅이다. 이견이 없는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다. 이런 홍명보는 축구협회의 얼굴 역할을 하기에 최적의 인물이었다.
선수 영웅 홍명보가 선수에서 은퇴를 선언한 후부터가 문제였다. 축구협회의 의지와 홍명보의 야망이 맞닿았고, 이후 한국 축구는 몰락의 길을 시작했다. 특혜와 반칙이 난무했다. 불공정과 불투명이 한국 축구를 지배했다. 과정과 절차가 무시됐고, 상식에 어굿났다.
이 후폭풍이 2026 북중미 월드컵까지 이어진 것이다.
◇시작은 2005년, 무자격 코치 논란
시작은 2005년이었다. 홍명보의 지도자의 시작은 '부정출발'이었다. 시작부터 논란이었다.
2005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황태자 홍명보는 코치진으로 합류했다. 그런데 당시 홍명보는 1급 자격증이 없었다. 당연히 1급 자격증이 없으면 대표팀 코치를 할 수 없다. 홍명보 무자격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축구협회는 "지휘권을 갖지 않는 보조 지도자 역할이기 때문에 홍명보 코치의 1급 자격증 취득 여부는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며 논란을 덮었다. 이 논란은 시작에 불과했다.
홍명보는 200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지휘봉을 잡았다. 황태자가 코치를 넘어 '감독'이 된 것이다. 홍명보호는 8강이라는 성과를 냈다. 축구협회는 환호했고, 감독 홍명보의 역량과 가치에 찬사를 보냈다.
문제는 그다음 대회에서 터졌다. 홍 감독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이끌었다. 4강에서 골키퍼 교체라는 실책을 저지르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아시아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한국 축구에 있어서 아시안게임은 무조건 '금메달'이어야 한다. 금메달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금메달이 아니면 실패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감독은 경질이다. 이것이 축구협회의 방식, 한국 축구의 대응이었다.
홍명보는 분명 실패를 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홍 감독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댔다. 홍명보이기에 달랐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경질당했을 것이지만, 홍명보는 살아 남았다. 황태자 만들기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축구협회가 홍명보에게 특혜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형평성에도 어긋났다. 홍명보는 축구협회의 절대적 지지 속에 아시안게임 금메달 실패의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영전할 수 있었다.
축구협회는 아시안게임에서 실패한 감독에게 더 상위 대회인 '올림픽' 지휘봉을 맡겼다. 2012 런던 올림픽이다.
홍명보호는 런던에서 기적을 썼다. 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동메달을 따냈다. 홍명보의 감독 커리어 최대 업적이다. 이 올림픽 동메달은 분명 한국 축구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
◇올림픽 동메달 맹신, 상식 밖 월드컵 대표팀 감독 선임
안타깝게도 올림픽 동메달의 영광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2002 4강 신화처럼 2012 올림픽 동메달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망쳐버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황태자의 올림픽 동메달은 축구협회가 홍명보를 맹신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홍명보는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찬양의 존재가 됐다.
이후 한국 축구 추락의 속도는 빨라지고, 크기는 커졌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협회는 홍명보는 감독으로 전격 선임했다. 상식의 파괴. 특혜의 연속. 맹신의 위험성. 모두 포함된 홍명보 감독 파격 선임이었다.
이전까지 감독 홍명보는 성인팀 지도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런 감독을 성인팀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 감독으로 부른 것이다. 이례적인 일, 아니 기괴한 일이다. 다른 국가에서도 이런 전례는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런 해괴한 현상은 올림픽 동메달이 만들어 낸 결과다. 올림픽 동메달을 땄으니 월드컵에서도 통할 거라는 맹신.
올림픽은 U-23 대회다. 연령별 대회라는 거다. 게다가 U-23에 포함되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도 출전하지 않는 대회다. 월드컵과 차원이 다른 대회라는 의미다.
참사가 예고됐고, 참사는 현실이 됐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나선 홍명보호는 1무 2패로 조 꼴찌 탈락했다. 특히 '1승 제물'이라고 만만히 보던 알제리에 2-4 참패를 당했다. 21세기 한국 월드컵 역사상 1승도 하지 못한 첫 번째 대회. 이 악몽의 주인공이 홍명보였다. 그리고 홍명보를 맹신한 축구협회였다.
놀라운 건 브라질 월드컵 참패 후 축구협회가 홍명보 감독 '유임'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상식 파괴, 특혜, 반칙이 또 나왔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축구협회와 홍명보가 어떤 관계인지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결국 여론에 등 떠밀려 홍명보는 사퇴했지만, 홍명보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축구협회의 시도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브라질 월드컵 참패 후 홍명보는 중국으로 갔다. 중국 축구 클럽인 항저우 뤼청 감독으로 부임했다. 결과는? 1부리그 항저우는 홍 감독 체제 아래 2부리그로 강등됐다. 축구협회를 떠난 후, 축구협회의 지원이 없는 첫 도전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이런 방황하는 홍명보를 축구협회는 가만히 둘 수 없었다. 2017년 축구협회는 홍명보를 전무이사로 선임했다. 성인팀 감독 경험이 없는 홍명보를 월드컵 감독에 앉힌 축구협회. 이번에는 행정 경험이 '전무'한 홍명보를 전무로 앉혔다. 행정의 사령관으로 모셨다. 여기에 전무이사를 보좌하는 사무총장직을 신설하는 노력까지 더했다.
전무이사 홍명보. 그의 행정이 한국 축구를 발전시켰나. 도대체 홍명보의 행정으로 무슨 변화가 일어났나. 없다. 그대로였다. 오히려 홍명보는 축구협회를 나와 2020년 한국 K리그1(1부리그) 울산HD 감독으로 갔다. 전무이사 자리는 다시 지도자를 하기 위한 도피처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홍명보는 비상했다. 현대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홍 감독은 K리그1 2연패를 달성했다. 전북 현대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시기와 맞물려 울산의 독주가 펼쳐진 것이다. 홍명보는 K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섰다. 성인팀 감독으로서 최초의 성과였다.
◇다시 월드컵
K리그에서의 부활도 결국 '독'으로 작용했다.
홍명보는 다시 야망을 드러냈고, 축구협회는 다시 홍명보의 손을 잡았다. K리그 시즌 도중 홍명보는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울산과 K리그를 뒤통수치면서까지 자신의 야욕을 채웠다.
홍명보를 선임한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는 유명무실한 상태였고, 감독 선임 권한이 없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홍명보 선임을 독단적으로 추진했다. 외국인 명장들은 병풍으로 세워놓고, 온갖 자료와 PPT를 요구한 뒤 홍명보를 찾아가 간청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대표팀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홍명보는 축구협회의 손을 기어코 잡았다.
이 과정에서 또 특혜, 반칙, 불공정, 불투명이 등장했다. 한국의 정부와 법원이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공식화한 사안이다. 피해갈 수 없는 팩트다.
월드컵에서 실패한 감독이다. 가장 철저하게 검증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프리패스로 다시 홍명보를 모셔 왔다. 개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 축구협회가 팔 걷고 나선 꼴이다. 그렇게 한국 축구는 역대 최초로 월드컵을 2번 지휘하는 감독을 등장시켰다.
이후 한국의 월드컵 대표팀은 급격하게 추락의 길을 걸었다. 한국의 상대는 멕시코, 체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 아니라 불공정이었다. 홍명보가 감독이 된 이후 2년 동안 불공정과의 싸움이 계속됐다.
한국 축구의 성지인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홍명보 나가!"라는 외침이 터졌고, 흥행은 참패했으며, 역대 가장 관심이 떨어지는 최악의 월드컵 대표팀이 등장했다. 감독 야유 따로, 선수 응원 따로 하는 해괴망측한 대표팀에 축구 팬들은 분열했고, 하나가 된 지지를 얻지 못하는 월드컵 대표팀이 됐다.
이런 팀이 어떻게 성과를 낼 수 있겠는가. 과정이 뒤틀렸는데 결과가 어떻게 좋을 수 있겠는가. 자격 없는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무슨 영광을 누리겠는가. 홍명보는 또 실패했다. 정의가 이긴 것이다. 정의가 불공정을 무너뜨린 것이다.
고지대 적응에 실패한 체코에 2-1 역전승. 이어 멕시코에 0-1 패배.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남아공전 0-1 패배. 객관적 전력에 약한 팀에게 압도당한 충격적인 경기력. 48개국 월드컵 체제에서 34위. 조별리그 탈락. 역대급 꿀조, 최상의 이동 거리. 그리고 역대 최강의 스쿼드. 이 모든 걸 가졌으면서도 실패했다. 처참하게 실패했다.
한국 월드컵 역사에서 최악의 월드컵이라 꼽히는 두 대회. 2014 브라질 대회와 2026 북중미 대회다. 모두 홍명보의 작품이다. 축구협회의 합작품이다.
특혜와 반칙을 앞세운 불공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2014년에 경험해 놓고 또 같은 실책을 반복했다. 2005년부터 21년 동안 이어진 질긴 인연. 한국 축구가 후퇴한 21년이다.
이제 축구협회와 홍명보는 이별해야 한다. 영원히. 3번은 없다. 홍명보는 사퇴했다. 이 사태를 만든 축구협회의 책임자들도 전원 사퇴해야 한다. 그들이 함께하는 한 한국 축구의 발전은 없다.
K리그에서의 부활도 결국 '독'으로 작용했다.
홍명보는 다시 야망을 드러냈고, 축구협회는 다시 홍명보의 손을 잡았다. K리그 시즌 도중 홍명보는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울산과 K리그를 뒤통수치면서까지 자신의 야욕을 채웠다.
홍명보를 선임한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는 유명무실한 상태였고, 감독 선임 권한이 없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홍명보 선임을 독단적으로 추진했다. 외국인 명장들은 병풍으로 세워놓고, 온갖 자료와 PPT를 요구한 뒤 홍명보를 찾아가 간청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대표팀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홍명보는 축구협회의 손을 기어코 잡았다.
이 과정에서 또 특혜, 반칙, 불공정, 불투명이 등장했다. 한국의 정부와 법원이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공식화한 사안이다. 피해갈 수 없는 팩트다.
월드컵에서 실패한 감독이다. 가장 철저하게 검증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프리패스로 다시 홍명보를 모셔 왔다. 개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 축구협회가 팔 걷고 나선 꼴이다. 그렇게 한국 축구는 역대 최초로 월드컵을 2번 지휘하는 감독을 등장시켰다.
이후 한국의 월드컵 대표팀은 급격하게 추락의 길을 걸었다. 한국의 상대는 멕시코, 체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 아니라 불공정이었다. 홍명보가 감독이 된 이후 2년 동안 불공정과의 싸움이 계속됐다.
한국 축구의 성지인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홍명보 나가!"라는 외침이 터졌고, 흥행은 참패했으며, 역대 가장 관심이 떨어지는 최악의 월드컵 대표팀이 등장했다. 감독 야유 따로, 선수 응원 따로 하는 해괴망측한 대표팀에 축구 팬들은 분열했고, 하나가 된 지지를 얻지 못하는 월드컵 대표팀이 됐다.
이런 팀이 어떻게 성과를 낼 수 있겠는가. 과정이 뒤틀렸는데 결과가 어떻게 좋을 수 있겠는가. 자격 없는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무슨 영광을 누리겠는가. 홍명보는 또 실패했다. 정의가 이긴 것이다. 정의가 불공정을 무너뜨린 것이다.
고지대 적응에 실패한 체코에 2-1 역전승. 이어 멕시코에 0-1 패배.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남아공전 0-1 패배. 객관적 전력에 약한 팀에게 압도당한 충격적인 경기력. 48개국 월드컵 체제에서 34위. 조별리그 탈락. 역대급 꿀조, 최상의 이동 거리. 그리고 역대 최강의 스쿼드. 이 모든 걸 가졌으면서도 실패했다. 처참하게 실패했다.
한국 월드컵 역사에서 최악의 월드컵이라 꼽히는 두 대회. 2014 브라질 대회와 2026 북중미 대회다. 모두 홍명보의 작품이다. 축구협회의 합작품이다.
특혜와 반칙을 앞세운 불공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2014년에 경험해 놓고 또 같은 실책을 반복했다. 2005년부터 21년 동안 이어진 질긴 인연. 한국 축구가 후퇴한 21년이다.
이제 축구협회와 홍명보는 이별해야 한다. 영원히. 3번은 없다. 홍명보는 사퇴했다. 이 사태를 만든 축구협회의 책임자들도 전원 사퇴해야 한다. 그들이 함께하는 한 한국 축구의 발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