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9일 세종시 조치원역 광장에서 지원 유세를 하며 노란봉투법 청구서를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노란봉투법 시행 100여 일이 지났지만 하청 노동자의 원청 교섭 요구가 이어지면서 '사용자성' 판단을 둘러싼 법적 혼선이 커지고 있다.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근로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을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실질적 영향력'이라는 기준이 구체적으로 정리되지 않으면서 노동위원회 단계에서 사건별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하청 노조 1000여곳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가운데 현대자동차·한화오션 등 대기업 사건에서는 원청의 교섭 의무 인정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산업안전뿐 아니라 급식·청소 등 외주 업무까지 원청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향후 사용자성 범위를 둘러싼 법적 다툼도 이어질 전망이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혼란이 극심해지는 와중에 대기업들의 파업이 확산하면서 노봉법이 하투(夏鬪)의 트리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마저 제기되고 있다. 
▲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가비전2050포럼 주최 '노란봉투법 시행 100일, 현장은 무엇을 말하는가?' 토론회에 참석해 있다. ⓒ뉴시스
◆ 노란봉투법 후 '사용자성' 혼선 … 엇갈린 노동위 판단
노란봉투법의 핵심 쟁점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때 사용자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기존 노동법에서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사용자로 인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개정 노조법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업무 방식이나 작업 환경 등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사용자 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실질적 영향력'이라는 기준이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산업안전처럼 원청의 관리 권한이 비교적 명확한 영역뿐 아니라 임금·복지·작업 방식 등 어디까지 교섭 대상에 포함되는지를 두고 해석이 갈리고 있다.
실제 노동위원회 판단에서도 사용자성 인정 여부를 둘러싼 혼선이 나타났다.
건설업 관련 사건에서는 원청이 안전회의를 주관하고 위험성 평가, 안전교육 등을 실시했다는 점이 사용자성 인정 근거로 작용했다. 반면 일부 사건에서는 하청 업체가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는 이유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중흥건설·중흥토건 사건에서는 전남지노위가 원청의 안전 관리만으로 사용자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뒤집고 산업안전 의제에 대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교섭 단위 분리 여부에서도 판단은 엇갈렸다. 쿠팡CLS 사건에서는 노조별 근로조건 차이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분리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포스코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건에서는 노조 간 갈등 가능성을 이유로 별도 교섭 단위를 인정했다.
▲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4월 15일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본사 인근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원청교섭 쟁취 금속노조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 현대차·한화오션 쟁점화 … 원청 교섭 확대 논란
최근 산업계와 노동계가 주목한 사건은 현대자동차 하청 노조의 사용자성 판단이다.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하청 노조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사건에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해당 사건에는 생산 지원뿐 아니라 보안, 급식 등 생산 과정과 직접 관련성이 낮은 업무도 포함됐다. 판매대리점 영업사원인 카마스터까지 대상에 포함되면서 사용자성 인정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다만 노동위는 사용자성 인정 여부만 먼저 통보하면서 구체적인 교섭 대상과 범위는 이후 판정서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화오션 사건 역시 원청 교섭 범위를 둘러싼 논란을 키웠다. 중앙노동위원회는 급식·청소 등 생산과 직접 관련성이 낮은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원청의 관리·통제 권한이 인정될 경우 제조업 현장 내 다양한 외주 업무가 교섭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사용자성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원청 책임만 확대될 경우 도급·외주 운영 전반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4월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대규모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기 평택=서성진 기자
◆ "사용자 범위 확대 우려 … 기준 정립 필요"
전문가들은 노란봉투법의 취지를 인정하면서도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범위가 과도하게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문에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결정'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원청과 하청 관계, 도급인과 수급인 관계에서는 계약상 갑을 관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그 관계만으로 원청을 모두 사용자로 보고 하청 노조가 항상 원청을 상대로 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하면 사용자 범위가 무한히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관계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한계를 설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위원회 판단이 엇갈리는 배경에 대해서는 "아직 선례가 충분히 쌓이지 않아 기준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한쪽에서는 노동권 보호라는 정책 목적을 강조할 수 있고, 다른 쪽에서는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법적 근거를 더 구체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며 "결국 관점 차이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측 우려에 대해서는 "원청이 하청업체를 활용하는 이유는 결국 원가 절감인데 교섭권이 확대되면 아웃소싱의 목적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원을 줄이거나 자동화·로봇 도입, 생산기지 이전 등을 선택할 경우 오히려 하청 근로자의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박 교수는 제도 정착 과정에서 혼선은 불가피하다고 봤다.
박 교수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 논란과 문제 제기를 거치면서 보완점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단순히 시간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현재 나타난 문제를 바탕으로 기준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려면 입법·행정·사법 영역이 함께 기준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