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생성형 이미지.

"현금 많은 사람은 그대로 사고, 대출 받아야 하는 사람만 멈춰 섰습니다. 집값 잡겠다는 정책이라는데, 막상 잡힌 건 실수요자 발목이더라고요."

지난해 6·27 대출규제 이후 내 집 마련을 준비해온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다. 정부가 수도권·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묶은 지 1년이 됐다. 집값을 잡고 가계부채를 관리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시장에서 먼저 체감된 것은 가격 안정이 아닌 대출 실수요자의 매수 여력 축소였다.

규제는 모든 차주에게 같은 숫자로 적용됐다. 그러나 시장의 출발선은 같지 않았다. 현금 보유층은 대출 한도와 무관하게 움직였고, 청약 당첨자나 생애 첫 주택 구입자처럼 정작 대출이 필요한 실수요자는 잔금 단계에서 막혔다. 집값 과열을 누르겠다던 정책이 무주택 실수요자의 선택지부터 줄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 6월15일 기준 1년 새 9.44% 올랐다. 상승세는 강남권에만 머물지 않았다. 동대문구 13.89%, 마포구 12.04%, 성동구 8.49% 등 비강남권 주요 지역도 줄줄이 뛰었다. 대출 문턱을 높이면 매수세가 꺾이고 집값도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서울 집값은 규제 이후에도 오름세를 이어갔다.

거래 구조도 달라졌다. 서울 9억원 이하 아파트 거래 비중은 6·27 대책 이후 38%에서 50%로 확대됐다. 대출 한도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가격대로 수요가 밀려난 결과다. 집값을 낮춘 것이 아니라 실수요자가 살 수 있는 집의 범위만 낮아진 셈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6·27 대책 이후 시장 변화가 가격 하락보다 수요 재편에 가까웠다고 본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대출을 막았다고 집을 살 사람이 없어진 건 아니다. 현금 있는 사람은 그대로 사고, 대출이 필요한 사람만 뒤로 밀린 것"이라며 "서울에서는 가격이 내려가기보다 실수요자가 갈 수 있는 선택지만 줄어든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알려진 다자녀 신혼부부 손해배상 소송은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세 자녀를 둔 신혼부부는 신생아 우선공급 청약에 당첨된 뒤 잔금대출 단계에서 6억원 한도에 막혔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청약 당첨 이후 계약금과 중도금을 납부했지만 잔금대출 문턱에서 내 집 마련 계획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출규제가 실제 주택 구입 과정의 시간차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청약 당첨과 계약금 납부, 중도금 실행, 잔금대출까지는 통상 수개월 이상 걸린다. 그 사이 규제가 바뀌면 이미 계약 단계에 들어간 실수요자도 새 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다. 집을 사려는 의사결정은 과거 기준으로 했지만 실제 자금 조달은 바뀐 기준에 막히는 구조다.

시장에서는 6억원 한도가 서울 주택가격 수준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이미 10억원대를 넘어선 상황에서 일률적인 대출 한도는 실수요자의 선택지를 9억원 이하 주택으로 좁힌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저가 주택에 수요가 몰리고, 중고가 주택은 사실상 현금 여력이 있는 매수자에게 유리한 시장으로 남게 된다.

이번 신혼부부 사례를 단순한 개인 사정으로만 보기 어렵다. 청약제도는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주기 위한 장치다. 신혼부부, 다자녀 가구, 생애 최초 구입자 등 정책적으로 보호해야 할 계층도 이 틀 안에 있다. 그러나 대출규제는 이들의 사정을 충분히 가려내지 못했다. 청약 당첨 시점과 대출 실행 시점 사이 정책 변화가 생기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쪽은 여유자금이 없는 실수요자다.

물론 가계부채 관리는 필요하다. 주택담보대출이 집값 상승의 연료가 되고 과도한 차입이 금융시장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방식이다. 모든 주택 매수자에게 같은 한도를 적용하면 투기 수요와 실수요자가 함께 묶인다. 소득, 자녀 수, 청약 당첨 여부, 계약 진행 단계, 기존 주거 상황 같은 현실의 차이는 정책 표 안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지난 1년 동안 서울 집값은 올랐고 거래는 낮은 가격대로 이동했다. 대출규제의 가격 안정 효과가 제한적인 사이 실수요자의 매수 여력은 줄었다. 집값을 잡기 위한 규제가 실제 시장에서 누구를 막고 누구에게 부담으로 돌아갔는지 다시 따져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