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이 22일(현지시각) 향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주요 외신과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린스펀 전 의장의 부인인 NBC뉴스의 안드리아 미첼 기자는 성명을 통해 그린스펀이 워싱턴 D. C. 자택에서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이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연준 의장에 임명된 그린스펀은 2006년까지 약 18년 6개월 동안 연준을 이끌며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긴 재임 기록을 남겼다.
그는 재임 기간 레이건, 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공화·민주 양당의 대통령 4명과 함께 일하며 세계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린스펀은 취임 직후 발생한 1987년 '블랙 먼데이' 증시 폭락 당시 신속한 유동성 공급으로 금융시장 불안을 진정시키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아시아 외환위기, 닷컴 버블 붕괴, 2001년 9·11 테러 등 굵직한 위기마다 통화정책을 통해 시장 충격을 완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은행이 급락장을 방어할 것이라는 기대를 뜻하는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이라는 표현도 이 시기에 자리 잡았다.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그의 전기 제목을 '마에스트로'로 붙이며 당시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독특한 화법도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복잡하고 신중한 이른바 '연준식 화법(Fedspeak)'으로 유명했으며, 발언 하나하나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만 퇴임 후 평가는 크게 엇갈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저금리 기조와 금융시장 규제 완화에 우호적이었던 그의 정책이 주택시장 거품과 금융 불안을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그린스펀 역시 이후 의회 증언에서 금융기관이 스스로 위험을 통제할 것이라는 자신의 판단에 "결함(flaw)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FT는 그의 자유시장 철학이 현대 중앙은행의 역할을 재정의했지만 금융위기의 그림자 역시 그의 유산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고 평했다.
주요 외신과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린스펀 전 의장의 부인인 NBC뉴스의 안드리아 미첼 기자는 성명을 통해 그린스펀이 워싱턴 D. C. 자택에서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이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연준 의장에 임명된 그린스펀은 2006년까지 약 18년 6개월 동안 연준을 이끌며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긴 재임 기록을 남겼다.
그는 재임 기간 레이건, 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공화·민주 양당의 대통령 4명과 함께 일하며 세계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린스펀은 취임 직후 발생한 1987년 '블랙 먼데이' 증시 폭락 당시 신속한 유동성 공급으로 금융시장 불안을 진정시키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아시아 외환위기, 닷컴 버블 붕괴, 2001년 9·11 테러 등 굵직한 위기마다 통화정책을 통해 시장 충격을 완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은행이 급락장을 방어할 것이라는 기대를 뜻하는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이라는 표현도 이 시기에 자리 잡았다.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그의 전기 제목을 '마에스트로'로 붙이며 당시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독특한 화법도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복잡하고 신중한 이른바 '연준식 화법(Fedspeak)'으로 유명했으며, 발언 하나하나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만 퇴임 후 평가는 크게 엇갈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저금리 기조와 금융시장 규제 완화에 우호적이었던 그의 정책이 주택시장 거품과 금융 불안을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그린스펀 역시 이후 의회 증언에서 금융기관이 스스로 위험을 통제할 것이라는 자신의 판단에 "결함(flaw)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FT는 그의 자유시장 철학이 현대 중앙은행의 역할을 재정의했지만 금융위기의 그림자 역시 그의 유산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