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뉴시스
녹두나물은 삶고 돌아서면 쉬이 쉰다 하여 숙주라 불린다. 단종을 배신한 신숙주를 향한 대중의 한 맺힌 조롱이다. 조선의 기틀을 정립한 그의 공로는 시간이 지나면 삭을지언정 변절한 충신의 오욕은 후손 만대 오래도록 이어지기 마련이다. 신숙주는 비록 천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조명되지 않았지만, 역사는 한명회보다 신숙주를 더 지탄한다. 권력 야욕에 미친 사람보다 입신을 위해 신념을 버린 위정자에 더 혹독한 게 대중의 시선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살포하자는 광기에 맞선 관료가 있었다. 오늘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과실을 전 국민에 나누자고 나선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당시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었던 김 실장은 재난지원금 보편 지원을 공개 반대하다 청와대 눈 밖에 났다. 입신의 여지가 막힌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달리 앞길이 창창한 김 실장의 단호함에 관가가 적잖이 놀랐었다. 제1차관은 차기 기재부 장관 1순위 후보지만, 그는 쓸쓸히 퇴장했다.
김 실장의 자리는 후배인 이억원 현 금융위원장이 꿰찼고, 당시 제2차관이던 구윤철 현 기재부 장관은 국무조정실장이란 장관급 영전을 누렸다. 말 한 번 잘못했다 창창한 앞날을 망가뜨리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하지만 그는 소신을 지킨 경제 관료로 기억됐고, 와신상담을 거쳐 이재명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다시 기회를 얻었다. 이재명식(式) 공동부유론 선봉장으로서다. 시장 경제를 신념으로 삼는 경제학자의 놀라운 변신이요, 환골탈태(?)였다.
김 실장은 최근 SNS를 통해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이 지급되고, 사상 최대 규모의 수출 대금이 국내로 유입되기 시작하면 올해 말과 내년 초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과거 수십 년의 경향이 반복될 것"이라며 "보유세와 양도세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옳은 방향"이라고 했다. 서민들이 감내하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고통을 두고, 우리 경제 '성공의 비용'이라 자화자찬한 게 불과 한 달여 전이다. 지방선거가 끝나자 불현듯 성공의 비용을 고가 주택 보유자에게 떠넘긴 셈이다.
상환 능력에 따라 차등 금리를 적용하는 금융 시스템을 두고 "잔인한 시스템"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나도 명백한 공범"이란 자아비판을 내놓을 때만 해도 그의 노선 이탈의 진위를 의심하는 이가 몇 있었다. 시장 논리와 복지의 경계에서 정책 결정 최고위층이 내놓음 직한 정치적 수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를 무너뜨린 부동산 정책 한복판에 서 있었던 그가 또다시 과세 강화를 들고나온 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동안 그가 걸어온 경제 관료로서의 궤적을 송두리째 뒤집은 것이기 때문이다.
김 실장의 논리는 반도체 호황이라는 통계적 착시를 명분 삼아, 시장에 징벌적 부동산 세금을 전가한다는 점에서 명분이 빈약하다. 첫째, 돈을 번 주체와 세금을 내는 주체가 다르다. 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막대한 부가 창출되더라도 그 과실은 해당 대기업과 소수의 관련 종사자에게 집중될 뿐, 과거와 같은 낙수효과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유세와 양도세는 자산을 가진 다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오히려 반도체 호황의 온기를 느끼지 못한 중산층과 서민 다주택자에게 '경기가 좋으니 세금을 더 내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
둘째, 세금으로 자금 흐름을 막겠다는 발상은 반발이 불가피하고 근본적인 처방이 되기 어렵다. 호황으로 자본을 축적한 소수는 세금을 감수하고서라도 똘똘한 한 채를 사들이려 하겠지만, 정작 보유세와 양도세의 동시 타격을 받은 기존 소유자들은 세금이 두려워 집을 팔지 못한다. 즉, '진입'은 막지 못한 채 매물만 잠겨버리는 꼴이다. 김 실장이 주도했던 2020년 '7·10 부동산 대책'이 명확히 이를 증명했다. 다주택자의 퇴로를 막고 보유세를 옥죄자, 임대인들은 세금 고지서를 월세로 전환해 구조적 약자인 세입자에게 전가했다. 서민 주거 방파제였던 등록임대사업자 혜택마저 적폐로 몰아 축소하자 수많은 전세 난민들이 눈물을 삼켜야 했다.
수출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늘어난 것을 마치 국가 전체에 유동성이 넘쳐흐르는 것처럼 포장하여 징벌적 과세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통계의 악용이다. 자금이 생산적인 자본 시장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부동산에 고이는 근본 원인은 낡은 규제와 시장의 불신 탓이지, 부동산 세금이 싸서가 아니다. 번번이 정치적 정책을 강행하던 권력에 맞서 시장 경제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경제학자라면 분연히 반박하는 게 위정자의 직무다. 재난지원금을 앞장서 반대했던 그때처럼 말이다.
시장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경제 정책은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적 전리품이나 특정 이념의 실험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때 나라 곳간을 지키기 위해 홀로 권력의 광기에 맞섰던 깐깐한 경제 관료의 뒷모습은 어디로 갔나. 민생의 고통을 '성공의 비용'으로 치부하고 징벌적 과세라는 실패한 칼을 재차 빼든 지금, 그는 그토록 피하려 했던 '숙주'의 길을 스스로 걷고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국가 최고 경제 정책 입안자는 역사의 평가가 위정자의 마지막 행보를 되새긴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