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현지시간) 합성 사진. 왼쪽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X(옛 트위터) 계정에 18일 공개된 영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 프랑스 베르사유 남서쪽 베르사유 궁전 내부에서 중동 전쟁 종식을 위한 이란과의 합의문에 서명하는 장면을 담은 화면이고, 오른쪽은 같은 날 이란 국영방송 IRINN이 내보낸 영상에서 마수드 페제슈키안 이란 대통령이 중동 전쟁 종식을 위해 서명한 양해각서(MOU) 문서를 들어 보이는 모습을 캡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페제슈키안 대통령은 17일,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을 희석하는 대가로 대규모 경제적 보상을 받는 내용을 골자로 한 중동 전쟁 종식 합의문에 서명했다. ⓒ연합뉴스·AFP PHOTO / IRINN via AFPTV
미국과 이란이 공개한 종전 양해각서(MOU) 5조는 호르무즈해협의 통행료 문제를 넘어 전후 중동 에너지 질서의 방향과 한국과 같은 원유 의존국의 선택 폭을 동시에 좁히는 조항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60일에 한해 아무런 비용 없이'(with no charge for 60 days only)라는 문구와 이를 둘러싼 이란 측의 주장은 자연 해협에서 '서비스 수수료' 명목의 비용 부과를 상정한 구조라는 점에서 향후 국제법·정치적 논쟁의 불씨를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외교가에 따르면 MOU 5조는 서명과 동시에 이란이 페르시아만과 오만해 사이를 오가는 상선들의 통항을 즉시 재개하고 60일 동안은 어떠한 비용도 부과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업 선박의 통항은 이란이 기뢰 제거와 군사·기술적 장애물을 해소하는 절차를 거쳐 30일 안에 전쟁 이전 수준으로 복원하도록 돼 있으며 이후 호르무즈해협의 '미래 관리와 해상 서비스 체계'는 이란이 오만과 걸프 연안국들과 협의해 마련하도록 했다. 이란이 이후 '통행료가 아닌 해상 서비스 수수료' 명목의 비용 부과를 제도화할 여지를 사실상 열어 둔 셈이다.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각)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협상단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장은 국영TV 인터뷰에서 "호르무즈해협은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60일이 지나면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요금을 당연히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에스마일 바게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15일 "호르무즈해협의 항해 서비스 및 보험에 대해 필요한 비용을 설계해 징수할 것"이라며 "우리(이란)는 통행료를 받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항해 서비스, 보험, 환경보호 등을 위한 비용을 설계하고 징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란이 '통행료' 대신 '서비스 수수료'를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MOU 5조가 국제법상 국제해협이자 자연해협인 호르무즈해협에서 '유료 서비스 해협' 모델을 도입하기 위한 속내로 볼 수 있다.
다만 5조의 법적 성격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인공운하가 아닌 자연 해협에서 통과 자체에 통행료 형태의 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이 보장하는 통과 통행권과 정면으로 충돌할 소지가 크지만 항해 안전·등대·도선·구난·오염 방지 등 구체적인 서비스를 근거로 합리적 수수료를 책정하는 방식은 말라카·보스포루스 등 일부 해협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는 선례이기 때문이다. 특정 서비스를 전제로 한 수수료는 범위와 투명성에 따라 허용될 수도 있으나 이란이 어디까지를 '서비스'로 포장할지와 어느 수준의 금액을 요구할지가 관건이다.

결국 이란이 청구할 수수료의 규모와 성격은 국제법 기준이 아니라 협상력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MOU 설계 방식 자체가 이미 이란 쪽으로 기울었다는 점이다. 이번 MOU는 구조적으로도 이란에 유리한 선지급 패키지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다. 4조와 10·11·13조는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다시 열고 기뢰를 제거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해상 봉쇄를 즉시 해제하고 30일 내 전면 해제하며, 이란산 원유·석유제품의 수출과 은행·보험·운송 등 관련 서비스에 대한 제재를 서명 직후부터 유예하는 내용으로 짜였다.
동결·제한 자산도 이란 중앙은행이 지정한 최종 수혜자에게 지급될 수 있도록 '완전한 사용'을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13조는 '1·4·5·10·11조의 이행이 시작되고 이런 조치들이 이행된다는 조건으로'라며 이러한 봉쇄 해제·제재 유예·자산 해제 조치가 먼저 이행된다는 전제를 달고서야 나머지 핵·재건·제재 관련 조항들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도록 순서를 못 박았다. 이란 입장에서는 호르무즈해협만 열어도 원유 수출 재개와 동결 자산 해제, 대규모 재건기금 논의라는 숙원을 먼저 해소할 수 있게 된 구조다.
반대로 핵 문제와 관련된 8조는 '이란은 핵무기를 획득하거나 개발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고농축 우라늄(HEU)에 대해서도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독 아래 현장에서 희석·처분하기로 했을 뿐 농축 능력과 미사일 프로그램 문제는 향후 '최종 합의'에서 다루기로 미뤄졌다. 제7조에서 미국이 유엔 안보리와 IAEA 결의, 자국의 1·2차 대이란 제재를 모두 종료하겠다는 원칙적 약속을 열어 둔 것은 이란에 상당한 협상 여지를 남겨 둔 문구로도 해석된다. 전쟁 종식과 해협 재개방을 서둘러야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내 정치 시간표가 핵·미사일·세력 확장 문제에서의 실질적 성과보다 이란에 대한 경제적 선지급을 앞서게 만든 측면이 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 MOU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듯이 미국이 사실상 중동 개입을 줄이고 있는 흐름의 배경에는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의 지위가 근본적으로 바뀐 구조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에서 수평시추와 수압파쇄를 결합한 비전통적 시추 공법이 상용화되면서 그간 경제성이 낮다고 여겨졌던 셰일층에서의 석유·가스 생산이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급증했다. 이른바 '셰일 에너지 혁명'으로 미국은 2015년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한 이후 천연가스 순수출국으로 전환했고, 2018년에는 하루 약 1200만 배럴을 생산하며 세계 생산의 약 15%를 담당하는 최대 원유 생산국 지위에 올랐다.
그 결과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에너지 순수출국으로 부상해 중동산 원유 의존도와 호르무즈 리스크 노출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진 반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는 여전히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구조적 의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는 이번 합의가 남기는 숙제가 더 직접적이다. 2020년대 들어 중동산 원유 비중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전체 수입의 70% 안팎을 차지하며 이 중 대부분이 호르무즈해협을 경유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의 상당 부분이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로 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란이 60일 이후 해상 서비스 수수료를 부과하면 그 비용은 보험료와 운송비, 원유 가격을 통해 동아시아 수입국에 직접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동아시아 수입국'이라는 한 범주로 한국·중국·일본을 묶는 시각은 실제 구도와 거리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의 약 38%가 중국으로 향하는 가운데,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자 미국의 대이란 제재 국면에서도 이란산 원유 구매를 사실상 중단하지 않은 국가다. 양국은 2021년 3월 25년짜리 포괄적 협력 협정을 통해 에너지·인프라·안보 분야 협력 틀을 제도화해 놓았다. 이란이 60일 이후 호르무즈 수수료 체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별도의 조율 채널을 가동할 수 있는 토대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 MOU에 담은 3000억 달러 규모 재건기금은 중동 내 중국의 주요 거점인 이란에서 중국의 우위를 뒤흔들 수 있는 변수로 거론된다. 제재 해제와 서방 자본 유입이 현실화될 경우 이란의 대중(對中) 경제 의존도가 지금보다 완화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정 강대국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외교 원칙을 대외적으로 강조해온 이란으로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리를 극대화하는 선택지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호르무즈 수수료 문제는 미국의 경제적 수단과 중국의 기존 관계망이 맞붙는 미·중 경쟁의 또 다른 장(場)이 되지만, 한국은 이 협상의 당사자가 아니다.
미국이 이번 합의로 해상 봉쇄를 해제하고 일정 시점 이후 역내 군사력을 줄이기로 한 만큼 통행료·수수료 분쟁이 불거지더라도 이를 이유로 다시 대규모 군사 개입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한국이 호르무즈에서 군사력으로 통과 조건을 바꿀 수 있는 현실적 여지는 크지 않다"며 "결국 국제 공조를 통한 외교적 견제와 에너지 공급 다변화, 상업적 비용 분담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위치"라고 말했다.  
한국이 독자적인 호위 전력을 상시 투입해 자국 선박의 무상 통항을 무력으로 관철하는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낮다. 미국이 호르무즈 안전을 전면적으로 보증하는 전통적인 '세계 경찰' 역할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 이번 이란 전쟁 과정과 MOU에서 사실상 확인됐다.
반대로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이 자국 경제 회복과 대외 협상에서 강력한 전략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이번 전쟁과 종전 협상을 통해 체감했으므로 향후 자국의 이해가 갈린 국면에서 봉쇄나 통항 제한을 재차 지렛대로 활용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호르무즈해협에서 통행료·수수료와 통항 조건을 둘러싼 분쟁이 본격화하면 한국은 통상·해운·에너지 기업의 상업적 판단, 국제 여론과 법적 논쟁, 동맹국과의 공조 사이에서 종합적인 비용·편익 계산을 통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
자연 해협인 호르무즈해협에서의 유료화 시도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위험을 어떤 외교·안보·에너지 전략으로 분담할 것인지는 이제 한국 정부와 산업계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