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현지시간) 멕시코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1차전 한국과 체코의 경기. 오현규가 후반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4년 전 등번호도 없이 카타르 땅을 밟았던 '추어탕집 아들'이 한국 축구의 16년 묵은 한을 풀었다.
오현규(25·베식타시)는 12일(한국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 체코전에서 후반 35분 결승골을 터트리며 한국의 2-1 역전승을 이끌었다. 생애 첫 월드컵 무대에서 나온 데뷔골이자 2010년 남아공 대회 이후 16년 만의 월드컵 1차전 승리다. 
전반은 0-0으로 끝났다. 한국은 후반 14분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갔다. 후반 22분 황인범이 감각적인 칩샷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자 홍명보 감독은 곧바로 '캡틴' 손흥민(로스앤젤레스 FC)을 불러들이고 오현규를 투입했다. 주장이 빠진 자리에 선 25세 공격수는 11분 뒤 황인범의 낮은 크로스를 온몸을 던져 골로 연결했다.
성한 몸으로 세운 기록이 아니다. 오현규는 경기 직후 한 방송 인터뷰에서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라며 울컥하더니 "경기 전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고 열이 38도까지 올라 뛸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대표팀 스태프와 의료진이 보살펴준 덕에 뛸 수 있었고 골까지 넣을 수 있었다"며 "스트라이커로서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 등번호 없던 4년 전, 일기에 쓴 약속 지켰다
오현규는 수원에서 태어나 삼성 구단 산하 매탄중·매탄고를 거쳐 그대로 프로 유니폼을 입은 추어탕집 아들이다. 남들이 이유식을 먹을 때 추어탕에 밥을 말아 먹으며 자랐고 어릴 때부터 '아기 괴물'로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2022시즌 K리그1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해 겨울 카타르 월드컵에 동행한 그에겐 등번호가 없었다. 당시 수원 삼성 소속이던 오현규는 파울루 벤투 감독 체제에서 최종 명단 26명 밖 훈련 파트너로 동행했다. 대회 직전 안와골절을 입은 손흥민의 결장에 대비한 예비 자원이었다. 손흥민이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뛰면서 그의 자리는 끝내 나지 않았다. 이름도 번호도 없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4경기를 지켜봤고 12년 만의 16강 환호도 흘려보내야 했다. 
그때 그는 일기를 썼다. 오현규는 2022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모든 선수가 유니폼을 입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나의 유니폼에 등번호는 없었다. 부끄럽기도 했다. 속상하기도 했다"고 적은 일기를 공개했다. 그는 "앞으로 4년간 준비해서 당당히 등번호 달고 오면 된다. 꼭 해내자 현규야. 이제 시작"이라며 "희생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흥민이형 덕분에 경험을 해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한국과 체코의 경기가 열린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오현규의 역전골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설움의 유럽 4년
유럽에서의 시간은 설움의 연속이었다. 2023년 1월 약 300만 유로(약 40억원)를 받고 스코틀랜드 셀틱으로 떠났지만 두 시즌 내내 교체 선수였다. 주전 자리를 찾아 옮긴 2024년 여름 벨기에 헹크에서 골이 터지자 독일 분데스리가 슈투트가르트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적의 마지막 관문인 메디컬테스트에서 구단이 계약을 엎었다.
오현규는 무너지지 않았다. 올해 2월 튀르키예 명문 베식타시로 옮기자마자 데뷔전에서 오버헤드킥 골을 터트렸다. 구단 138년 역사에 없던 '이적 후 3경기 연속골' 기록도 새로 썼다. 시즌 도중 팀을 옮기고도 헹크와 베식타시를 합쳐 17골을 쌓은 기세로 월드컵 무대에 올랐다.
4년 전 일기에 쓴 자신과의 약속은 이날 이뤄졌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측은 SNS에 그날의 일기를 다시 올리며 "등번호 달고 뛰겠다 약속한 오현규 선수가 해냈다. 체코전 역전골의 주인공"이라고 전했다. 손흥민의 부상에 대비한 예비였던 그가 이번엔 손흥민과 교체로 들어가 골을 넣었다.
그의 골에 들썩인 건 과달라하라만이 아니었다. 이날 광화문광장에는 최대 1만4000명의 시민이 모여 체감 30도 안팎의 더위 속에 거리 응원을 펼쳤다. 역전골이 터지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다.
온라인은 더 뜨거웠다. 네이버에 따르면 체코전을 생중계한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의 최고 동시접속자는 482만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국민 10명 중 1명꼴이 같은 시간 치지직을 켠 셈이다. TV 시청자는 뺀 숫자다.
한국은 19일 같은 장소에서 개최국 멕시코와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멕시코는 개막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2-0으로 눌렀다. 오현규는 "오늘 승리의 좋은 기운대로, 겸손하게, 멕시코 홈이니 상대 분석을 잘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100% 그 이상을 쏟아내 승리하겠다"고 각오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