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지난 3일 오후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6·3 지방선거 본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투표 용지 부족 사태를 계기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해체에 준하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초법적 권한을 누린 선관위가 정작 본연의 업무인 선거에 안이한 모습을 수차례 노출하자 정치권에서는 선관위가 자정 능력을 넘어섰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투명한 선거 관리를 위해 선관위를 견제하는 독립기구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야당은 선관위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선관위 개혁은 스스로의 손에 맡길 수준을 넘어섰다. 국회 차원의 선관위 개혁 특위 구성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며 "민주당이 진상 조사와 선관위 개혁을 방해한다면 스스로 선관위의 공범임을 자백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선관위는 지난 3일 지방선거 당일 투표지 부족 사태를 발생시켰다. 유권자들이 본투표에 참여하고자 투표소를 찾았지만 투표에 필요한 투표지가 동이 난 것이다. 서울 송파구·광진구·강남구 등 14개 투표소에서 투표지 부족 현상을 겪었다.
이에 선관위는 부랴부랴 추가 투표지를 공수했지만 기다리던 시민 중 발걸음을 돌린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가 연장된 오후 10시까지 투표는 계속됐다. 선관위는 투표지를 사전에 50%만 인쇄해 놨다고 해명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특히 잠실 7동 투표소에서의 문제가 가장 심했다. 장시간 투표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법의 절차에 따라 개표 절차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는 항의가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 3일 밤부터 수백 명의 시민이 현장에 몰려들어 투표소 앞을 막아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후 대치가 장기간 이어졌다. 모여든 시민의 숫자만 14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투표함이 반출되지 못하며 마지막 개표 절차도 멈췄다. 그러자 지난 5일 공권력이 투입됐다. 기동대 18개 중대와 1000여 명의 경찰이 배치됐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함 호송을 위해 현장 질서 유지를 요청하면서 경찰이 강제 집행에 나섰다. 문제를 일으킨 선관위가 항의하는 시민들을 설득하기보다는 물리력을 동원해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앞서 선관위의 안이한 태도는 줄곧 국회의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2월에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0여 년 간 선관위 고위 간부들의 친인척이 부정 채용을 진행해 왔다는 내용이다. 총 878건의 규정 위반이 확인됐다. 결국 전·현직 사무총장이 연루돼 관련자들이 징계를 받았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가 '가족회사'처럼 운영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황교안 자유와혁신 대표가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
'부실 선거 논란'도 끊이지 않고 발생해왔다. 202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일부 투표소가 기표를 마친 투표지를 비닐봉투와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아 운반하다가 적발됐다. 
지난 대선에서는 사전투표소에서 일부 유권자가 투표지를 받고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선관위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사과했지만 선거철마다 논란은 커지고 있다. 
선관위의 '마이동풍'은 결국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것이 문제라는 진단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선관위는 2024년 감사원의 감사를 두고도 '위헌적'이라며 법률 투쟁까지 벌였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에 대통령 산하 감사원이 감사를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논리였다.
특히 선관위가 재판 과정에서 패배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현직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을 맡고, 선관위원과 각 지자체 선관위원장도 판사들이 맡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다음 개헌 논의에서 선관위를 헌법기관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헌법상 권한을 앞세워 치외법권 기관 행태를 보이는 근본부터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실제 외국에서는 선관위가 헌법기관이 아닌 사례가 많다. 일본은 내각의 총무성 행정국 선거부가 선거 관리를 한다. 
미국은 연방선거위원회가 정치자금 규제, 제도 개혁 등의 업무만 한다. 선거 관리는 각 주의 선거 관리 기구를 별도로 두고 연방법과 주법으로 통제한다.
독일도 연방선거위원회는 전체 전국 선거, 주 선거는 주 선거위원회가 감독한다. 두 국가 모두 선관위는 헌법 기관이 아니다. 
당장 개헌이 어려운 현실성을 고려해 선관위 내부에 '독립감찰관'을 두는 방법도 거론된다. 이미 선관위가 2024년 자체적으로 다수의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독립 기구인 감사위원회를 설치했지만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독립감찰관(Inspector General)을 행정부 각 부처에 둬 부정부패와 예산 낭비, 권한 남용을 독립적으로 조사하고 감독한다. 
감찰관을 국회에서 임명하는 방식으로 감찰관을 통해 선관위를 상시 조사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제도다. 광범위한 수사와 감사권을 부여하고 의회에 직접 보고하는 방식도 병행된다. 
이러한 시스템 변화를 선관위에 적용해 국회가 임명하는 독립감찰관이 국회에 직접 보고하도록 하면 어느 정도의 견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서울 소재 대학의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관위를 완전히 물갈이 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개헌이 필요하지만 그 사이 선관위를 견제할 장치가 꼭 필요하다"며 "선관위가 스스로 잘못을 고쳐갈 능력이 사실상 없다고 보고 국회 통제 안에 있는 감찰기관을 설치해 선관위의 전반적인 업무 처리 방식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