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인스타그램에서 '주적'을 검색한 결과. ⓒ인스타그램 캡쳐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들에게 "대한민국의 주적이 누구냐"고 묻는 이른바 '주적 챌린지'가 선거판을 달궜다.
유튜브와 SNS를 중심으로 확산한 이 챌린지는 유세 현장을 찾은 시민이나 유튜버가 후보자에게 돌발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촬영해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관련 영상이 온라인에서 '밈(유행)'처럼 확산하며 선거 막판 화제가 됐다.
특히 부산 북구갑 보궐선거에 출마한 하정우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관련 질문을 받은 뒤 "선거 방해 행위가 될 수 있다"며 선관위 신고 가능성을 언급했다.
6·3 지방선거는 막을 내렸지만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주적 챌린지' 논란은 여전히 법적 쟁점으로 남아 있다. 단순한 질문과 촬영이 공직선거법상 선거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는지, 또 후보자 검증과 선거운동 방해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 지난달 22일 대구 수성구 T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시장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김부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가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SNS서 시작된 '주적 챌린지' … 선거 막판 안보 논쟁으로
'주적 챌린지'는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보수·우파 성향 유튜버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하며 하나의 정치 밈으로 자리 잡았다.
유세 현장을 찾은 시민이나 유튜버가 민주당 후보자들에게 "대한민국의 주적은 누구인가"라고 질문하고 이를 촬영해 SNS에 게시하는 방식이다. 후보자들의 반응을 담은 영상이 유튜브 쇼츠와 SNS를 통해 퍼지면서 선거 막판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부산 북구갑 보궐선거는 '주적 논쟁'의 중심에 섰다. 하 후보는 유튜버의 질문에 "국방백서에 나와 있다"고 답했다. 이에 박민식 국민의힘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의 주적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단 1초도 머뭇거릴 수 없는 질문"이라고 비판했다. 한동훈 무소속 후보도 "북한은 우리의 분명한 주적"이라고 하 후보를 겨냥했다.
비슷한 논란은 다른 지역으로도 번졌다. 박찬대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는 주적을 묻는 질문에 "내란세력 아니에요?"라고 반문한 영상이 온라인에서 확산했다.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역시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는 모습이 SNS를 통해 공유됐다.
국민의힘은 이를 후보자 안보관 검증 문제로 규정한 반면 민주당은 색깔론 공세라고 반발했다. 논쟁은 TV토론회로도 번졌다. 대구시장 후보자 토론회에서는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가 김부겸 민주당 후보에게 주적이 누구인지 물었고 김 후보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적"이라고 답했다. 부산 북구갑 보궐선거 토론회에서도 같은 공방이 반복됐다.
▲ 하정우 당시 더불어민주당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가 지난달 21일 오전 부산 북구 남산정종합사회복지관에서 시민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부산=서성진 기자
◆ 하정우 "선거방해 될 수 있다" … 선거법 적용 범위 쟁점
선거는 끝났지만 하 후보가 유세 현장에서 언급한 '선거방해' 발언의 법적 의미를 둘러싼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한 유튜버가 하 후보에게 "주적이 북한이냐"고 묻자 하 후보는 "북한이라고 말씀드렸고 저도 북한은 기본적으로 주적"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거 선거 방해가 될 수 있고 선관위에 신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튜버가 "협박하시는 건가요"라고 묻자 하 후보는 "정보를 드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발언을 계기로 단순 질문과 촬영이 실제 선거방해 행위에 해당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237조는 집회·연설 또는 교통을 방해하거나 위계·사술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선거의 자유를 방해한 경우를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선거의 자유방해죄가 인정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선거운동은 종료됐지만 선거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공직선거법 제268조는 선거범죄의 공소시효를 원칙적으로 선거일 후 6개월로 규정하고 있다.
▲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노원구 롯데백화점 노원점 앞에서 열린 릴레이 순회 유세장을 떠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 "질문 자체보다 실질적 방해 여부가 핵심"
법조계는 단순히 후보자에게 정치적 질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선거방해죄가 성립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헌 법무법인 홍익 변호사는 "유세 현장에서 연설에 끼어들어 실질적인 방해가 이뤄졌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길거리를 걷는 후보에게 '대한민국 주적이 누구냐'고 묻는 정도로는 선거방해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실질적인 방해가 있었는지, 여러 사람이 위력을 행사했는지 등 현실적인 침해가 있어야 한다"며 "결국 후보자의 선거운동이 실제로 침해됐는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최건 법무법인 건양 변호사도 선거방해죄가 성립하려면 구체적인 방해 행위와 위험이 인정돼야 한다고 봤다.
최 변호사는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자를 붙잡아 이동하지 못하게 하거나 현수막을 훼손하는 것처럼 실제 선거운동에 지장을 주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며 "주적이 누구냐고 물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선거방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질문은 후보자가 답하지 않으면 그만인 만큼 질문 자체만으로 선거운동이 방해될 구체적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중요한 것은 질문 내용이 아니라 실제 선거운동에 어느 정도 지장을 초래했는지 여부"라고 설명했다.
다만 반복적인 추적이나 촬영으로 후보자의 이동이나 유권자 접촉을 방해하는 수준에 이르면 법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후보자를 계속 따라다니며 반복적으로 질문해 선거운동에 실질적 지장을 주는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공개된 영상 내용만 놓고 보면 '주적이 누구냐'고 질문한 것만으로 선거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