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김근태의 눈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근태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는 상극이다. 같은 당에 오랫동안 몸담았지만 결코 상대방을 평가해주지 않는다. 1970년대와 80년대 민주화투쟁을 함께했던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팔순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서로 으르렁대듯이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DJ-YS 사이보다 더 나쁘다. 김 의원과 노 대통령은 단 한순간도 상대를 인정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김 의원은 노 대통령을 '짝퉁 진보'로 여긴다. 진보정책을 펴다가 느닷없이 신자유주의로 옮겨가고는 '실용노선'이라고 변명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본다. 노 대통령은 김 의원을 '운동권 주류의식에 사로잡혀 정치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교조주의자'쯤으로 간주한다.
그런 김 의원이 13일 눈물을 흘렸다.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 직전 정대철·정동영씨와 만난 자리에서다.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중도 포기한 뒤 5년 만에 또다시 불출마 선언을 해야 했던 그의 심정이 착잡하지 않을 리 없다. 배신감과 참담함, 원망과 자괴감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눈물의 화학성분을 분석해 보면 노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선 포기 선언 후 그의 움직임이 이를 입증한다. 그는 범여권 대선 주자들을 잇따라 만나 '대통합'과 '범여권 후보 단일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DJ의 입장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당장 DJ도 '살신성인'이란 용어까지 동원해 가면서 김 의원의 결정을 치켜세웠다. 이제 김근태는 DJ 주장을 앞장서서 실현해 나가는 구심점이 된 것이다. 범여권 대선 주자군 중 가장 먼저 자신을 비웠기에 그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다. 손학규 정동영 천정배 등 누구도 김근태의 말을 외면할 수 없게 됐다. 대선 정국에서 DJ와 영향력 행사 경쟁을 하는 노 대통령에게 이런 김근태의 행보는 위협적이다.
김 의원의 움직임도 과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는 논리적이고 자신에게 성실하려는 사람이기에, 자신의 감정조차 논리로 치환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이기에, 정치권에서는 '늘 한 박자 늦다'는 지적을 받았다. DJ가 집권했을 때에도, 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에도, 그는 '비판적 지지' 입장을 견지했다. 그래서 그는 집권당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주류가 될 수 없었다. 최고권력자의 입장에서는 화끈하게 지지해주지 않고 "1인 보스정치에 반대한다" "열린우리당은 노무현당이 돼선 안 된다"며 제동을 거는 김 의원이 달가울 리 없다. 2004년 4월 17대 총선 직후에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했을 때에도, 2006년 5월 지방선거 직후에 당의장을 맡았을 때에도 그는 노 대통령의 견제 속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격적으로 불출마 선언을 하고 망설임 없이 '대통합' 운동에 몸을 던졌다. 만약 그가 대통합을 이룰 수 있다면 '생각 많고 행동 느린 햄릿' '비주류 김근태'의 이미지를 벗어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장애물이 있다. 바로 김근태 자신이다. "민주화 세력이라는 것을 더 이상 훈장처럼 달고 다니지 않겠다"고 했지만 '민주화 세력'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외교부 관리와 군 장성들은 미국의 앞잡이"라는 사고에 머물러 있다. 당의장 시절 서민경제 우선론과 추가 경제성장론을 내세우더니 결국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로 되돌아갔다. 범여권의 대선 후보들 중에는 이미 김 의원과 노선을 달리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자기 노선을 앞세우고 강요한다면 대통합은 성사되기 어렵다.
최근 김 의원이 탈당하자 노 대통령은 "배짱과 뚝심이 없다"고 쏘아 댔다. 물론 김 의원의 인생역정이 노 대통령의 비웃음거리가 될 정도로 녹록하지는 않다. 한나라당의 최병렬 전 대표조차 군사정권의 온갖 위협에도 굴하지 않은 김 의원을 인정한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1980년대에 멈춰 있다면, 세상이 바뀐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의 눈물은 헛된 감상의 찌꺼기로만 기억될 것이다.
김근태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는 상극이다. 같은 당에 오랫동안 몸담았지만 결코 상대방을 평가해주지 않는다. 1970년대와 80년대 민주화투쟁을 함께했던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팔순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서로 으르렁대듯이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DJ-YS 사이보다 더 나쁘다. 김 의원과 노 대통령은 단 한순간도 상대를 인정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김 의원은 노 대통령을 '짝퉁 진보'로 여긴다. 진보정책을 펴다가 느닷없이 신자유주의로 옮겨가고는 '실용노선'이라고 변명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본다. 노 대통령은 김 의원을 '운동권 주류의식에 사로잡혀 정치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교조주의자'쯤으로 간주한다.
그런 김 의원이 13일 눈물을 흘렸다.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 직전 정대철·정동영씨와 만난 자리에서다.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중도 포기한 뒤 5년 만에 또다시 불출마 선언을 해야 했던 그의 심정이 착잡하지 않을 리 없다. 배신감과 참담함, 원망과 자괴감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눈물의 화학성분을 분석해 보면 노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선 포기 선언 후 그의 움직임이 이를 입증한다. 그는 범여권 대선 주자들을 잇따라 만나 '대통합'과 '범여권 후보 단일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DJ의 입장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당장 DJ도 '살신성인'이란 용어까지 동원해 가면서 김 의원의 결정을 치켜세웠다. 이제 김근태는 DJ 주장을 앞장서서 실현해 나가는 구심점이 된 것이다. 범여권 대선 주자군 중 가장 먼저 자신을 비웠기에 그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다. 손학규 정동영 천정배 등 누구도 김근태의 말을 외면할 수 없게 됐다. 대선 정국에서 DJ와 영향력 행사 경쟁을 하는 노 대통령에게 이런 김근태의 행보는 위협적이다.
김 의원의 움직임도 과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는 논리적이고 자신에게 성실하려는 사람이기에, 자신의 감정조차 논리로 치환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이기에, 정치권에서는 '늘 한 박자 늦다'는 지적을 받았다. DJ가 집권했을 때에도, 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에도, 그는 '비판적 지지' 입장을 견지했다. 그래서 그는 집권당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주류가 될 수 없었다. 최고권력자의 입장에서는 화끈하게 지지해주지 않고 "1인 보스정치에 반대한다" "열린우리당은 노무현당이 돼선 안 된다"며 제동을 거는 김 의원이 달가울 리 없다. 2004년 4월 17대 총선 직후에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했을 때에도, 2006년 5월 지방선거 직후에 당의장을 맡았을 때에도 그는 노 대통령의 견제 속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격적으로 불출마 선언을 하고 망설임 없이 '대통합' 운동에 몸을 던졌다. 만약 그가 대통합을 이룰 수 있다면 '생각 많고 행동 느린 햄릿' '비주류 김근태'의 이미지를 벗어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장애물이 있다. 바로 김근태 자신이다. "민주화 세력이라는 것을 더 이상 훈장처럼 달고 다니지 않겠다"고 했지만 '민주화 세력'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외교부 관리와 군 장성들은 미국의 앞잡이"라는 사고에 머물러 있다. 당의장 시절 서민경제 우선론과 추가 경제성장론을 내세우더니 결국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로 되돌아갔다. 범여권의 대선 후보들 중에는 이미 김 의원과 노선을 달리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자기 노선을 앞세우고 강요한다면 대통합은 성사되기 어렵다.
최근 김 의원이 탈당하자 노 대통령은 "배짱과 뚝심이 없다"고 쏘아 댔다. 물론 김 의원의 인생역정이 노 대통령의 비웃음거리가 될 정도로 녹록하지는 않다. 한나라당의 최병렬 전 대표조차 군사정권의 온갖 위협에도 굴하지 않은 김 의원을 인정한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1980년대에 멈춰 있다면, 세상이 바뀐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의 눈물은 헛된 감상의 찌꺼기로만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