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12일 유세 수행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전날 숨진 고(故) 김우동(50) 홍보실장의 빈소를 찾았다.
박 후보는 이날 영남 방문에 앞서 오전 8시47분쯤 서병수 사무총장과 조윤선 대변인, 윤상현 수행단장, 이학재 후보 비서실장 등과 함께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침통한 표정의 박 후보는 고인의 빈소에서 헌화와 묵념을 하며 조의를 표한 뒤 유족들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빈소를 나온 박 후보는 서 사무총장에게 "가족들이 어려운 일을 당해서 몹시 애통해 하고 있고, 딸 아이도 있는데 장례절차라든지 병원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애써달라. (장례가) 끝나고 나서도 생계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병원 관계자들에게도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고 들었다. 감사하다. 참 사람의 힘으로 안되네요, 기도도 많이 하고 했는데…"라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박 후보는 이어 기자들과 만나 "꼭 이번에 다시 일어날 것이라 기대하면서 많은 분들이 기도하고 참 애타게 기다렸는데 갑자기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심정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뭐라고 위로를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고…"라고 울먹었다.
고인은 지난 2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선거 유세 지원을 나갔다가 강원도 홍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11일 오후 5시 20분쯤 원주 기독병원에서 사망했다.
박 후보의 캠프에서 홍보물 제작 등을 담당했던 김 실장은 LG애드 출신으로 개인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다가 지난 2006년부터 박 후보를 도와왔다.
조윤선 대변인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사용된 후보의 로고뿐만 아니라 빨간 목도리, 빨간 장갑, 빨간 모자 등 이번 대선을 빨간색 물결로 치르자는 것도 김 실장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김 실장은 지난 1987년 북한의 지시를 받은 김현희씨에 의해 폭발돼 사망한 대한항공 858기 기장 김직한씨의 아들이다.
유족으론 부인 서은희씨와 딸 예현양이 있다. 발인은 13일.
지난 2일 사고에서 김 팀장과 같은 승합차에 탔던 6명 가운데 박 후보의 핵심 측근 이춘상 보좌관은 사고 직후 숨졌고, 사진작가인 박병혁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박 후보의 페이스북 '친근혜'에도 고(故) 김우동 홍보실장을 향한 애도의 글이 올라왔다.
"고 이춘상 보좌관을 잃은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와 함께 했던 김우동 팀장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었다. 그동안 홍보본부의 팀장으로 헌신적이고 열심히 일해오신 김우동 팀장님의 명복을 빈다."
"그분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남은 팀원과 모두 함께 반드시 승리하여 그 분의 영전에 바칠 것이다."
새누리당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 애도를 표했다
다음은 조윤선 대변인의 11일 서면 브리핑이다.
오늘 오후, 교통사고로 고투하던 김우동 홍보실장이 운명하셨습니다.
사고 후 하루 이틀을 버티기 어렵다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열흘 동안 버텨주어, 모두들 기적에 한걸음씩 가까이 간다고 믿었습니다.
비록 의식은 없었지만, 청각은 열려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박근혜 후보는 직접 음성 편지를 보내드리기도 했습니다.
“김우동 실장님, 박근혜입니다.
제 목소리가 들리시면 좋겠습니다”,
“꼭 이겨내셔야 합니다”,
“가족들과 저와 동료들이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힘 내셔서 일어나 주세요”
박근혜 후보가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하고, 어서 일어나시기를 기원하는 절절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이 음성 편지를 하루종일 김우동 실장이 들을 수 있도록 그의 귓가에 틀어주었습니다.
처음으로 의사선생님으로부터 ‘희망을 건 기대를 해 볼 수 있겠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 것이 바로 오늘 아침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김우동 실장은 2006년부터 박근혜 후보를 도왔습니다.
2007년 경선을 위해 홍보와 디자인, 제작을 도맡아 왔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이번 대선은 빨간색으로 치르자는 것도 김우동 실장의 아이디어였습니다.
후보의 로고, 빨간 운동화 팀의 디자인, LED조명으로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 새겨진 유세차, 빨간 목도리, 빨간 장갑, 빨간 모자, 이른바 이번 대선을 월드컵에 버금가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 빨간 물결을 제안한 것도 김우동 실장과 그가 이끄는 팀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늘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후배들의 간식이며 밥을 챙기는 사람도 김우동 실장이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움직이는 곳에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따뜻하고, 헌신적이고 맑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자리에 누워있을 때 모두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그제야 그가 얼마나 조용하게, 자기 할일을 하고, 주변을 도왔는지를.
김우동 실장의 선친께서는 1987년, 김현희 사건으로 폭파된 KAL 기장 김직한 선생님이셨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를 하기 직전 사고를 당해 사모님은 시아버님을 뵌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그 아버님이 가장 곁에 두고 예뻐하던 막내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김우동 실장을 보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유전자를 타고 났나보다고 합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김우동 실장의 손에서 멋스럽게 대통령이 탄생되듯이 또한 그의 손으로 성공한 멋진 대통령으로 마무리하게 하는 기적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요.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고인의 충정 어린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고인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그의 지난하고도 헌신적인 노력,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생전에 이 말씀 꼭 드리고 싶었지만 아무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고인의 영전에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우동 실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