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완전한 남이야. 그러니깐 부모하고는 다른 입장이란 말이지.」
머리를 이쪽으로 굽히고 사근사근 말하는 바람에 앞쪽 윤상기와 박미주는 못 들었다. 이쪽을 본 둘의 얼굴에 오히려 웃음기가 번져졌다. 속닥거리는 자세였으니 그럴 법 하다.
윤대현은 심호흡을 하고나서 굳어진 얼굴의 긴장을 풀었다.
그때 고수연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 둘 앞에서 생쇼를 할 필요는 있을거야. 하지만 우리 둘이 있을 땐 철저히 해줬으면 좋겠어. 난 오빠 따윈 갖고 싶지가 않으니깐 말야.」
그때 머리를 끄덕인 윤대현이 이제는 고수연의 귀에 입술을 붙였다. 얼굴에는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시발년이 조개까고 있네. 알갔어.」
그리고는 시치미를 딱 뗀 얼굴로 바로 앉아 슬쩍 고수연을 보았다.
고수연의 눈이 잠깐 치켜떠졌다가 내려갔다. 웃으려고 입술 끝이 올라갔다가 그대로 뒤틀려졌다.
「무슨 이야기냐?」
웃음 띤 얼굴로 윤상기가 물었으므로 윤대현이 정색하고 말했다.
「잘 해보자구요.」
「근데 넌 술 너무 마시는거 아냐?」
하고 박미주가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바람에 윤대현이 풀석 웃는다.
「아뇨. 이 정도는 입가심이죠. 제 주량은 소주 열병입니다.」
「아유, 아빠보다 세구나.」
윤대현의 시선이 힐끗 윤상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말이 맞긴 하다. 요즘 들어서 윤상기의 주량이 많이 줄었다.
그런데 아는 척을 하는 박미주의 말투가 조금 거슬렸다.
그때 윤상기가 고수연을 바라보았다. 고수연은 회를 맛있게 씹는 중이다. 표정도 정상으로 되돌아와 있다.
「수연이, 너 오빠하고 잘 지내.」
「네.」
대답하는 표정도 다소곳하다.
윤상기가 만족한 듯 얼굴을 펴고 웃었다.
「수연이가 착하게 보이는구만.」
그러자 박미주는 웃기만 했지 거들지는 않았다. 겸손해서 그런지 착하지 않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식당에서 나왔을 때는 밤 9시경이었다. 술 한잔 걸친 상태에서 집에 들어가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윤상기가 식당 앞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10만원권 수표 두 장을 윤대현에게 내밀며 말했다.
「야, 이것 갖고 둘이 어디 가서 놀다 와. 늦지 말고.」
「아니, 이십만원 갖고 뭘 한다고.」
눈을 치켜 뜬 윤대현이 머리를 저었다.
「이십 더줘.」
「이 자식이.」
하면서도 윤상기가 지갑에서 이십만원을 더 꺼내 주었다.
「아빤 늦게 들어와도 돼.」
정색한 윤대현이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박미주가 고수연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너도 일찍 들어와.」
「걱정 마.」
대답하는 고수연의 표정도 밝다.
윤상기의 팔짱을 낀 박미주가 어둠속으로 사라졌을 때 윤대현이 옆에 서 있는 고수연을 보았다. 고수연은 차도를 향한 채로 서 있다.
「야, 반 나누고 갈라서자.」
하고 윤대현이 주머니에서 수표 두 장을 꺼내 내밀었다.
「재수 없지만 계산은 분명히 하자구.」
그러자 고수연이 힐끗 윤대현에게 시선을 주는 것 같더니 번개처럼 수표를 나꿔채었다. 윤대현이 빈 손을 내려다 보면서 입술을 부풀리며 말했다.
「나, 참. 어쩌다가 저런게 걸렸지?」
고수연은 이미 몸을 돌려 멀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