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군'부터 '1987' '택시운전사'까지반복된 서사가 현대사 인식 바꿔
  • ▲ 영화 '암살자(들)' 스틸 컷. ⓒ하이브미디어코프
    ▲ 영화 '암살자(들)' 스틸 컷. ⓒ하이브미디어코프
    [편집자 주] 영화는 역사적 사건이나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실존 인물과 사건을 영상과 대사, 극적인 서사로 재구성하는 순간, 수십 년 전의 역사가 두 시간 남짓한 분량으로 압축돼 관객의 감정과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된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어떤 사건을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무엇을 사실로 제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남부군', '태백산맥', '웰컴 투 동막골', '화려한 휴가',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 다수 영화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런 류의 시대극이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상당수 작품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특정 정권의 부도덕성과 잔악상을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들 영화가 관객들의 머리와 가슴을 파고 들면서 어떤 인물은 악의 축으로 전락했고 어떤 인물은 희대의 영웅이 됐다. 

    최근 불거진 '암살자(들)' 논란은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좌파 세력의 '진지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동시에, 공고한 이 구조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당시 정권이 기획했을 수 있다는 '망상'을 다룬 이 영화에 분개하는 2030 세대의 모습을 보면서 드디어 반전의 실마리가 잡혔다는 반응이 나온다.

    본지는 3회에 걸쳐 그동안 한국 영화계에서 어떤 편향적 서사가 전개됐으며 그로 인해 만들어진 시각이 어떻게 역사적 인식을 바꿔왔는지를 살펴보고, 이러한 확증편향적 굴레를 끊고 올바른 역사 인식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함께 모색해 보기로 한다.
  • ▲ 1988년 11월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재야 단체와 학생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이들을 해산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 1988년 11월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재야 단체와 학생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이들을 해산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주창한 '진지전(War of Position)'은 정치·사회 변화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운동권의 이념적 흐름과 시민사회·문화 영역의 변화, 나아가 북한의 대남전략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개념이 함께 거론되곤 한다.

    그람시가 제시한 진지전은 단기간에 권력을 장악하는 '기동전(War of Maneuver)'과 대비된다. 군사적 충돌이나 급격한 정권 교체보다는 교육·언론·학계·문화예술·시민사회 등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영향력을 축적하고, 이를 통해 대중의 인식과 사회적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강제력만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동의와 인식을 통해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헤게모니'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람시의 사상은 1980년대 중후반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의 학생·사회운동은 민주화와 사회변혁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념과 노선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학생운동 내부에서는 조직과 투쟁 방식, 사회변혁의 방향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고, 1980년대 후반에는 민족민주운동 진영이 전국적 조직으로 결집하는 흐름도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그람시의 헤게모니와 진지전 개념 역시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이론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다만 이를 당시 한국 운동권 전체의 단일한 지도 이념으로 규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당시 운동권은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 등 여러 노선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람시의 이론 역시 각 진영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수용됐다.

    북한은 군사적 도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내부의 조직과 시민사회 영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식의 대남 공작을 오랫동안 지속해 왔다. 안보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교육·노동·언론·문화 등 각 영역에서 장기적으로 영향력을 확보하는 진지전 전략을 구사했는데, 실제로 이 시기부터 북한을 온정적인 시선으로 그리거나 좌익 이념을 담은 문화 콘텐츠가 급격히 늘어났다.
  • ▲ 영화 '남부군' 스틸 컷. ⓒ남프로덕션
    ▲ 영화 '남부군' 스틸 컷. ⓒ남프로덕션
    '남부군(1990)'은 소위 좌파 영화 전성시대의 막을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영화는 빨치산 대장과 무리들의 반란 행적을 노골적으로 미화한 작품인데, 놀랍게도 당시 영화계로부터 '6·25전쟁에 대해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난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라는 호평을 받았다. 과거 냉전시대의 역사 해석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해석을 넘어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적 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을 지지한 영화계의 논리였다. 그러나 이는 빨치산 대원, 즉 북한 측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게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는 궤변에 지나지 않았다.

    작가 조정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태백산맥(1994)'은 소위 좌파 콘텐츠의 대중화 물꼬를 튼 작품이다. 먼저 소설 '태백산맥'은 1990년대 초반 당시 200만~3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그의 유려한 필치로 되살아난 빨치산의 활약상은 젊은층의 눈길을 사로 잡았고 '태백산맥'은 대학생이 뽑은 '가장 감명 깊은 책' 1위, 한국의 지성 49명이 뽑은 '미래를 위한 오늘의 고전' 60선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이 책은 그 당시 '민주화운동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이러한 붐을 타고 제작된 영화 '태백산맥'의 흥행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고(故) 안성기와 김명곤이 주연으로 참여한 이 영화는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춘사국제영화제 등에서 대상, 최우수작품상, 남자최우수연기상 등을 휩쓸며 평단과 관객 모두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당시 영화인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영화의 민주화, 독립영화의 발전, 검열에 대한 저항, 사회현실의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해 왔다. 스크린쿼터 운동이 시작되고 독립영화가 성장하는 시기에 등장한 '주류에 저항하는' 빨치산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소재였다. '태백산맥'으로 좌익 이념에 대한 대중의 문턱이 낮아졌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이런 류의 작품이 단순한 선전 수단을 넘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운동권 출신 엘리트 학생들이 충무로로 모여드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영화계의 '의식화'와 '고급화'를 앞당겼다. 이 판에 대기업 등 자본가들까지 뛰어들면서 영화계는 급격히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 ▲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스틸 컷. ⓒ쇼박스
    ▲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스틸 컷. ⓒ쇼박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은 판문점이라는 가장 첨예한 분단의 공간을 배경으로 남북한 병사들을 적대하는 군인이 아니라 서로의 삶과 취향을 공유하는 평범한 청년으로 그려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념과 체제의 차이가 인간적 우정이라는 서사 뒤로 밀려났다는 데 있다. 이 시기부터 북한군은 더 이상 교과서 속의 '적'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적 타자로 스크린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웰컴 투 동막골(2005)'은 그 변화를 한층 더 세련된 우화의 형태로 밀어붙였다. 6·25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이념 대립의 현장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영화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남한 국군과 북한 인민군, 그리고 미군까지도 한 마을 안에서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였다. 특히 남북 병사들이 서로 총을 겨누던 관계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전쟁을 지탱해 온 이념보다 인간애와 평화의 가치가 우선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결국 이러한 서사는 북한군과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무장해제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800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이념보다 인간이 먼저'라는 감성적 명제를 관객의 마음속에 주입시켰다. 문제는 이러한 이상적 명제가 때로는 자유와 인권이 말살된 북한의 현실을 가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에 이르면 비판의 대상은 북한에서 미국과 대한민국의 국가 시스템으로 이동한다. 한강에 출현한 괴물이라는 장르적 외피를 쓰고 있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국가는 시민을 보호하는 최종적인 방어자가 아니라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관료조직에 가깝다. 여기에 미군의 화학물질 방류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 설정이 결합하면서 미국과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이 영화의 중요한 정서적 배경으로 자리 잡았다. 외견상 오락영화 성격을 띠는 이 작품이 대표적인 반미·반정부 코드 영화로 해석되는 이유다. '괴물'에선 국가가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을 보호한다는 전통적인 권위의 서사가 뒤집히고, 오히려 국가의 통제 밖에 있는 평범한 가족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등장했다.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 관료주의에 대한 냉소, 거대 조직보다 개인과 가족의 연대를 중시하는 정서가 대중적 오락영화의 문법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 ▲ 영화 '1987' 스틸 컷. ⓒCJ엔터테인먼트
    ▲ 영화 '1987' 스틸 컷. ⓒCJ엔터테인먼트
    '1987(2017)'은 이러한 반골 정서가 현대사의 가장 민감한 기억과 결합했을 때 어떤 힘을 갖는지를 보여줬다. 영화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시작해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여러 인물의 시선을 교차시키며 재구성했다. 실제 박종철 사건에서 경찰이 사망 경위를 은폐하려 했고 이후 언론·검찰·종교계·민주화 인사 등의 노력으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가 남긴 정치적 효과는 사실의 재현이라는 차원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스크린에서 반복되는 것은 '폭력적인 국가권력'과 이에 맞서는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구도였다. 

    실제로 영화 개봉 이후 박종철 사건과 6월항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다시 높아졌고, 옛 남영동 대공분실 방문객도 크게 증가했다. '1987'의 서사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부정적 기억과 민주화 세력의 도덕적 정당성을 현재까지 연장하는 효과를 낳았다. 결국 관객이 기억하는 1987년은 기록물 속의 1987년이 아니라, 스크린을 통해 재구성된 1987이 되고 말았다.

    '그때 그 사람들(2005)'은 10·26 사건을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면서도 상당한 허구적 설정을 가미한 작품이다. 영화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통치자', 김재규를 모티브로 한 인물을 '김 부장'으로 이름을 바꿔 등장시켰다. 그러나 영화 속 일부 장면은 실제 기록과 다른 내용으로 묘사됐다. 궁정동 만찬에서 심수봉이 엔카를 부르는 장면이나 참석자들이 일본어를 주고받는 설정, 실제 주안상과 다른 호화로운 식사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김재규의 발언으로 제시된 일부 대사에는 실제 사건과 시간관계가 맞지 않는 내용도 포함됐다. 제작진은 실화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상상력을 더한 작품이라는 입장이었지만, 영화 홍보 과정에서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실제 역사와 영화적 허구의 경계가 논쟁의 대상이 됐다.
  • ▲ 영화 '화려한 휴가' 스틸 컷. ⓒCJ엔터테인먼트
    ▲ 영화 '화려한 휴가' 스틸 컷. ⓒCJ엔터테인먼트
    유해진과 송강호가 열연한 '택시운전사(2017)'도 일부 사실관계를 교묘히 비튼 영화다. 당시 1200만 관객을 모은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인 김사복을 모티브로 한 택시기사 김만섭이 우연히 독일 기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 뒤 5·18 현장의 참상을 목격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렸다. 하지만 개봉 이후 공개된 김사복의 가족 자료와 증언을 통해 실제 인물의 모습은 영화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작품에서 평범한 택시기사로 그려진 김사복은 서울 모 호텔에서 관광택시를 운행하며 외국인 고객을 주로 상대했고 영어에도 능숙했으며, 힌츠페터와도 1980년 이전부터 알고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함석헌 등 유신헌법 반대 인사들을 법원까지 태워준 사진 등 그의 과거 행적을 보여주는 자료도 공개된 상태다.

    CJ엔테테인먼트가 제작한 '화려한 휴가(2007)'는 전술한 대로 '좌파 콘텐츠'를 일종의 '킬러 콘텐츠'쯤으로 여긴 대기업이 '의식화'된 영화인들과 함께 만든 최고의 콜라보였다. 이 영화에는 공수부대가 누군가로부터 사격명령을 받고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해 아무런 경고도 없이 M-16 소총을 사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11공수여단 61대대장 등은 "전남도청 앞에서 그런 사격도, 그런 사격 명령을 내린 장교도 없었다"고 항의했으나, 스크린을 통해 역사를 접한 관객들의 머릿속엔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장면만 각인됐다. 영화가 만든 '허구'가 실제 역사를 바꾸는 순간이었다.

    상기한 영화들로 인해 반공의 대상이었던 북한군은 인간적인 타자로, 이념적 대립은 화해와 평화의 문제로, 국가권력은 시민을 억압하거나 무능한 존재로, 권위주의 시대의 민주화 세력은 역사적 정의를 구현한 주체로 반복해서 재현됐다. 이런 서사가 수십 년에 걸쳐 흥행영화의 형식으로 축적되면서, 한때 논쟁적이었던 좌파적 가치와 역사 인식이 오늘날 대중문화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통용되는 전제와 상식이 됐다.

    -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