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장악한 좌파 문화 헤게모니운동권과 자본이 만나 '영화 문법' 새로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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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영화는 역사적 사건이나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실존 인물과 사건을 영상과 대사, 극적인 서사로 재구성하는 순간, 수십 년 전의 역사가 두 시간 남짓한 분량으로 압축돼 관객의 감정과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된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어떤 사건을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무엇을 사실로 제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 ▲ 영화 '암살자(들)' 스틸 컷. ⓒ하이브미디어코프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남부군', '태백산맥', '웰컴 투 동막골', '화려한 휴가',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 다수 영화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런 류의 시대극이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상당수 작품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특정 정권의 부도덕성과 잔악상을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들 영화가 관객들의 머리와 가슴을 파고 들면서 어떤 인물은 악의 축으로 전락했고 어떤 인물은 희대의 영웅이 됐다.
최근 불거진 '암살자(들)' 논란은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좌파 세력의 '진지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동시에, 공고한 이 구조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당시 정권이 기획했을 수 있다는 '망상'을 다룬 이 영화에 분개하는 2030 세대의 모습을 보면서 드디어 반전의 실마리가 잡혔다는 반응이 나온다.
본지는 3회에 걸쳐 그동안 한국 영화계에서 어떤 편향적 서사가 전개됐으며 그로 인해 만들어진 시각이 어떻게 역사적 인식을 바꿔왔는지를 살펴보고, 이러한 확증편향적 굴레를 끊고 올바른 역사 인식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함께 모색해 보기로 한다. -
1950년대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존 하워드 로슨(John Howard Lawson)은 작가들에게 "공산주의 전부를 보여주거나 애써 설명하려 들지마라. 그냥 지금 쓰고 있는 대본에 공산주의 원리를 5분, 당 노선을 5분 정도 집어 넣어라"고 조언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작가 제임스 돌턴 트럼보(James Dalton Trumbo)는 "제 값을 하는 작가라면 누구나 각자의 방식대로 전투를, 일종의 문학 게릴라전(戰)을 감행해야 한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 ▲ 영화 'JFK' 스틸 컷. ⓒ워너브러더스 픽처스
초창기부터 헐리우드 문화계에 뿌리박힌 좌파 세력은 오랫동안 '현실 비판'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사회주의 이념을 설파해 왔다. 사회적 소수자에게 귀를 기울이는 마이너리티 운동은 기득권층에 저항하는 문화혁명으로 연결됐고, 이는 좌파 문화 전성시대를 여는 단초로 작용했다. 경쟁력이 약한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은 좌파 문화를 공유하며 현실 도피를 꿈꾸고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이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현실 부정'은 정부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과 피해의식으로 확산됐다.
음모론도 좌파들이 '군중 길들이기'에 활용하는 단골 메뉴 중 하나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이 연출한 'JFK(1991)'가 대표적인 예다. 이 영화에서 존 F. 케네디는 현실과 달리 베트남 전쟁을 종식하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평화를 주창하는 케네디를 다국적 기업과 손잡은 미국 CIA가 제거했을 것이라는 게 이 영화의 주된 골자. 철저히 허구적 내용으로 그려진 영화지만 'JFK'를 관람한 많은 대중은 오늘 날에도 이것을 역사적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대중의 왕'을 부패한 권력과 거대 기업이 암살했다는 맹랑한 시나리오는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게 됐다.
문제는 좌파 이념에 물들은 순진무구한 대중이 곧잘 부패한 정치권력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의 영웅' 케네디의 비극적 죽음을 다룬 영화 'JFK'는 공교롭게도 부패 정치인의 상징과도 같은 빌 클린턴을 당선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학창 시절 백악관을 방문한 클린턴이 케네디와 만나는 장면을 삽입한 정치 광고가 큰 화제를 모으면서 클린턴은 부패 권력에 맞설 차세대 정치인로 각인되는 효과를 거뒀다. -
우중(愚衆)을 기득권 타개를 위한 불쏘시개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국내에서도 나타났다. 2012년 9월 13일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누적 관객 1232만3408명을 동원했다. 당시 이 영화는 '주인공이 특정 정치인을 연상시킨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정치권에서도 큰 관심을 가졌던 작품이다.
-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 컷. ⓒCJ엔터테인먼트
2012년 10월 12일 당시 민주통합당 이헌태 부대변인은 문재인 후보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서울 신촌 아트레온 영화관에서 '광해'의 추창민 감독 등 제작관계자를 비롯한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영화 '광해'를 관람한 사실을 전하면서 '광해'의 주인공 하선을 '사람이 먼저인 세상'과 '경제민주화'를 꿈꾼 선각자로 묘사했다.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후보의 대선 캐치프레이즈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가상의 이야기를 가미한 팩션(faction)이었지만, 각종 매체를 통해 진행된 '정치적 여론몰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하선'을 특정 인물의 이미지에 투영시키는 착각을 일으켰다.
영화 개봉 후 정확히 3개월 만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48%의 득표율을 얻어 51.6%의 득표율을 얻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패했다. 그러나 선거운동 기간, 영화 '광해'의 후광 효과를 등에 업은 문재인 후보의 기세는 대단했다. 영화의 흥행 속도와 비례해 문 후보에 대한 젊은층의 지지도도 점차 높아졌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선 선거 막판 문 후보의 대역전을 점치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 영화의 '위력'을 피부로 실감했던 문재인 의원은 2년 뒤 개봉한 영화 '변호인'에선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해당 영화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는 묘수를 부렸다. -
2014년 1월 1일 측근들과 함께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문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뭐라고 조언했겠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뜸 "요즘 영화 '변호인' 열풍이 불고 있다.."는 말로 선수를 쳤다.
- ▲ 영화 '변호인' 스틸 컷. ⓒNEW
기자가 묻지도 않은, '변호인'을 굳이 거론한 것은 문재인 스스로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방증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문 의원은 이틀 후 부산 진구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을 찾아 영화 '변호인'을 단체 관람한 뒤 "부당한 시대에 지식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들에게 묻는 것 같다"며 "당시와 지금 시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생각하게 된 영화"라는 촌평을 남겼다.
'변호인' 역시 '광해'와 마찬가지로 '팩션'에 가까운 영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림사건'을 맡았던 대표 변호사가 아니었다. 영화 속 '송우석'이란 인물처럼 혼자 총대를 매고 뛰어든 적도 없었다. 문 의원도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은 사실이 없지만, 세간에는 김광일 등과 함께 무료 변론을 맡은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
하지만 '변호인'을 통해 이같은 루머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알려지면서 이 영화는 훗날 대통령이 된 문 의원과 노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미담으로 활용돼 왔다. -
그가 대권에 도전하거나 정치 재기를 도모할 때 동종 영화들이 개봉, 흥행몰이를 했다는 사실을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 ▲ 영화 '변호인' 스틸 컷. ⓒNEW
'광해'는 CJ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기획한 작품이고, '변호인'은 캐피탈원, 동문파트너즈 등과 함께 CJ창업투자가 공동 투자한 작품이다. 이에 영화계에선 "2년 전 '광해'로 재미를 본 CJ가 또 다시 좌파 영화인 '변호인'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CJ가 민주당을 민다'는 괴소문은 이때부터 서서히 공론화 되기 시작됐다.
2012년엔 CJ 계열 케이블방송채널인 tvN이 SNL코리아의 '여의도텔레토비'를 통해 신랄한 정치풍자를 시도했다. 표면적으론 여야 모두를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풍자 코미디 특성상 주된 타깃은 현 정부나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같은 해 영화 '광해'마저 대성공을 거두면서, 세간에는 'CJ=좌파'라는 인식이 불변의 진리처럼 퍼져 나갔다.
시장경제의 '총아'인 대기업이 좌파 손을 잡았다? 좌파가 시장 공고화에 압장서고 있다면 이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좌파는 아닐 것이다. 이른바 '좌파 콘텐츠'가 시장에서 큰 이문을 남기면서, 좌파 스스로 '산업화'하는 변신을 꾀한 것인지, 아니면 기업에서 좌파 콘텐츠를 차용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자본으로 힘을 키운 변질된 좌파 세력이 문화를 통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변호인'의 경우를 예로 들면, 이 영화 한편으로 수면 아래에 있던 '부림사건'이 재조명됐고 명백한 과거의 역사가 송두리째 뒤바뀌는 역사적 왜곡 현상이 일어났다. 노 전 대통령의 향수를 간직한, '문재인'이란 정치인이 다시금 스타덤에 오른 것도 '변호인'이 가져온 여러 반사이익 중 하나였다. -
당시 수사 기록을 보면 '부림사건'은 멀쩡한 일반인을 공산주의자처럼 만들어서 범죄사실을 억지로 만들어 낸 '조작사건'이 아니라, 반미좌경(反美左傾) 사상에 심취한 자들이 일으킨 '공산주의 운동'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이들은 하나같이 "이 사건은 조작됐다"고 말한다. 'JFK'에 심취한 영화팬이 "케네디는 CIA가 죽였다"고 주장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얘기다.
- ▲ 영화 '화려한 휴가' 스틸 컷. ⓒCJ엔터테인먼트
김대중 정권 하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한 CJ는 '좌파 콘텐츠'를 일종의 '킬러 콘텐츠'쯤으로 치부한 듯 하다. CJ가 제작을 하거나 투자를 한 작품들을 보면 경찰이나 군대, 관료들이 매우 무능하고 부패한 '공공의 적'으로 묘사된 경우가 흔하다. '쉬리' '한반도' '괴물' '공공의 적' '강철중' '살인의 추억' '아저씨' '화려한 휴가' 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권력은 폭력과 부조리와 무능력으로 점철된 '암적 존재'나 다름없다. 반면 '친구' '추격자' '두사부일체' '조폭마누라' 등에 등장하는 조직폭력배나 매춘업자는 오히려 정의롭고 양심적으로 그려진다.
'CJ가 민주당을 민다'는 소문은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널리 확산된 얘기이지만, CJ가 관여한 영화들 상당수가 좌파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작품이라는 인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퍼진 상태였다.
좌파 성향의 방송인과 대중 연예인들이 앞서 문화 권력을 쥐고 있었고, CJ가 엔터테인먼트사업에 뛰어들면서 매칭 포인트가 전혀 없던 두 세력은 자연스레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는 공생관계로 발전했다.
대기업이 특정 부문에 투자를 지속하는 이유는 이윤 창출 때문이다. CJ가 손대는 작품들에 관객이 열광하고 자본이 모여든다. 그러면 그 안에서 잉태된 좌파 문화 인사들이 또 다른 볼거리를 들고 나와 고유한 좌파 정서를 주입시킨다.
학습된 대중은 이른바 좌파 콘텐츠를 꾸준히 소비하는 우량(단골) 고객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관객의 정서가 '좌편향적'이라고 판단하는 제작사는 계속해서 동질의 작품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영화판에서 '조폭물'과 '시대극'이 순환되는 이유도 바로 이같은 경제 논리 때문이다.
- 2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