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 성향 여초 커뮤니티에서 쓰던 '좌아하게'지지자 글 공유하며 던진 한마디에 또 여권 분열문조털래유 조롱하는 강성 지지층 은어 받아쓰다니최고 권력자의 언어가 국민들을 아군과 타자로 갈라일언일구(一言一句)에 나라 일으킬 수도, 잃을 수도
  • ▲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옛사람들은 임금의 말을 일러 윤언여한(綸言如汗)이라 했다. 몸 밖으로 흘러나온 땀이 다시 살갗 속으로 스며들 수 없듯, 군주의 입에서 나온 말 역시 되담거나 취소할 수 없다는 경책이다. 말 한마디가 곧 나라의 품격이 되고 국정의 방향타가 되는 자리이기에, 동양의 정치 전통은 최고 권력자의 일언일구(一言一句)를 무겁게 여겨 왔다. 그런데 국민 통합을 강조하던 이재명 대통령이 이 해묵은 경구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지지자의 소셜미디어 글에 특정 진영에서만 쓰는 은어(隱語)로 맞장구를 친 것이다. 국민 통합의 깃발을 들었던 대통령이 특정 당파(黨派)의 울타리 안으로 걸어 들어간 장면이었다.

    언어학에서 은어는 특정 집단 안에서만 통하도록 짜인 말을 가리킨다. 같은 말을 쓰는 이들끼리는 결속을 다지지만, 그 울타리 바깥에 선 이들에게는 소외감과 경계심을 안긴다. 은어의 본령(本領)은 애초에 소통이 아니라 구별짓기에 있다는 얘기다. 이번 논란을 들여다보면 이 오래된 언어학적 개념이 고스란히 포개진다.

    이 표현이 겨누는 과녁을 살피면 문제의 심각성은 한층 더해진다. 이 대통령은 1일 X(엑스) "대통령님 좀 쉬면서 하셔요. 이재명 정부의 모든 일을 기록하지 않는데도 200건을 돌파했습니다"라는 지지자의 글을 공유하며 "많이들 함께 해주세요. 좌아하게 말입니다"라고 적었다.

    '좌아하게'는 '우아하게'의 '우'를 '좌(左)'로 바꿔 사용하는 조어(造語)다. 친명 강성 지지층이 주로 사용한다. 최근에는 반명(反明)으로 꼽히는 친노·친문 계열을 에둘러 깎아내릴 때 즐겨 쓴다. 이 대통령 지지층이 모인 커뮤니티에선 "정청래 전 대표를 좌아하게 멕였다(먹였다)"며 쾌재를 부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유시민 작가의 비판을 완곡하게 받아쳤을 때도 비슷한 평가가 뒤따랐다. 대통령이 같은 진영 내부를 겨냥한 조롱의 암구호를 공개적으로 받아 적은 셈이다.

    당장 문조털래유 진영에선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다", "국격을 까먹고(떨어뜨리고) 있다". "특정 커뮤니티 용어라는 점에서 일베와 닮았다" 등 비판이 쏟아졌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모두 친문이고, 친노이며, 친김대중이고, 이재명의 동지들"이라고 한 발언을 거론하며 "모두 거짓이었냐"는 지적도 나왔다.
  •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여성시대 캡처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여성시대 캡처
    더욱 주목할 점은 이 말이 자라난 토양이다. '좌아하게'는 젠더 갈등이 극으로 치닫던 시절,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성향 여초 커뮤니티 여성시대, 더쿠 등에서 주로 쓰던 것으로 알려졌다.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오가던 말들이 시간이 흘러 친명 세력의 언어로 전환됐다는 시각이 많다. 가뜩이나 이 대통령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2030 남성들이 이번 일에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의 소외감을 다독여야 할 대통령이 도리어 해묵은 갈등에 불씨를 던진 격이다. 청년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듣겠다던 대통령이 정작 특정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짙어진다. 

    정치권도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개혁신당은 '우를 지우니, 우아함도 사라졌다'는 논평을 내고 "좌우를 아우르겠다던 대통령은 어디 가고, 강성 지지층의 말투까지 빌려가며 '좌아함'을 뽐냅니까"라고 꼬집었다. 대통령이 쓴 조어를 그대로 비틀어 되돌려준, 뼈 있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멘탈 나간 대통령이 운전하는 대한민국이 걱정된다"고 했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언어가 이토록 가볍게 소비되고 조롱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 앞에서 이번 일을 한낱 해프닝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물론 공식 석상이 아닌 만큼, 대통령도 SNS에서만큼은 격식을 내려놓고 지지자들과 허물없이 말을 섞고 싶을 수는 있다. 지지자의 글에 짧은 댓글 하나 단 것을 두고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다는 항변도 나올 법하다. 하지만 대통령의 언어는 사적인 공간에 쓴 글이라 해도, 결코 사적일 수 없다. 그 말은 지지자 한 사람의 화면에 머무르지 않고, 5,000만 국민 모두를 향해 열려 있는 공적 언어로 읽히기 때문이다. 가벼운 문구라도 대통령의 입을 거치는 순간 정치적 신호가 되고, 진영의 구호가 된다. 강성 지지층의 환심을 사려는 계산이었다면 유치하다는 비판을, 아무 생각 없이 쓴 것이라면 공인(公人)으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내로남불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그간 이재명 정권과 지지자자들은 상대 진영의 언어를 두고 혐오(嫌惡)와 분열(分裂)을 조장한다며 날을 세워 왔다. 그런 이들이 정작 제 편의 은어는 애교 섞인 풍자쯤으로 너그러이 감싸고 있다. 남의 눈 속 티끌은 잘도 찾아내면서 제 눈 속 들보는 보지 못하는 형국이다. 진영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기준은 더 이상 공정(公正)의 척도라 할 수 없다. 편 가르기의 도구일 뿐이다.

    당동벌이(黨同伐異)라는 말이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같은 편은 무조건 돕고 다른 편은 무조건 배척한다는 뜻이다. 특정 진영의 은어를 국정 최고책임자가 스스럼없이 입에 올리는 순간, 국민은 자신이 그 말을 알아듣는 편인지 아닌지부터 따지게 된다. 알아듣는 이는 결속감을 느끼겠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절대다수의 국민은 까닭 모를 거리감을 느낀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국민을 아군과 타자로 가르는 경계선이 되는 것이다.
  • ▲ 유시민 작가(왼쪽)와 김어준씨가 유튜브 방송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공장 캡처
    ▲ 유시민 작가(왼쪽)와 김어준씨가 유튜브 방송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공장 캡처
    분열의 시대를 건넌 해외 지도자들의 행보를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남북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두에게 너그러움을 베풀자며 남부를 끌어안았다. 27년의 옥고를 치르고 대통령에 오른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1995년 럭비 월드컵 결승전에 백인 통치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스프링복스(Springboks)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다. 지지층의 언어가 아니라 반대편의 상징을 끌어안음으로써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자기 편의 환호보다 반대편의 마음을 얻는 일에 더 공을 들여왔다. 

    논어 자로편(子路篇)에는 '일언이가이흥방(一言而可以興邦) 일언이상방(一言而喪邦)'이라는 구절이 있다. 한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킬 수도,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입은 재앙의 문이라는 옛 경구도 같은 이치를 일깨운다. 말이 곧 정치이고 정치가 곧 말인 자리에 선 이에게, 단어 하나의 선택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우아함은 한쪽 편을 향한 날렵한 비틀기가 아니라, 듣는 모든 이를 배려하는 절제에서 비롯된다. 좌든 우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청년이든 노년이든 가르지 않고 아우르는 어법이 필요하다. 국민 통합을 국정 과제 1순위로 내세웠던 이재명 대통령이, 정작 자신의 입으로 통합의 문턱을 낮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