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형소법 시행…경찰 수사 권한 확대수사관 1인당 접수 사건 5년 새 23%↑부실·축소수사 논란 속 초동수사 중요성 커져경찰 잇단 대책에도 숙련 수사관 확보 과제
  • ▲ 경찰청. ⓒ정상윤 기자
    ▲ 경찰청. ⓒ정상윤 기자
    검찰청 폐지와 함께 개정 형사소송법이 지난 2일 시행되면서 경찰의 수사 권한과 책임이 커졌다. 살인·강도·성폭력 등 대부분의 민생 형사사건은 경찰이 처음 사건을 접수해 증거를 확보하고 혐의를 판단한다.

    검사는 경찰이 송치한 사건의 수사가 부족하다고 판단해도 직접 증거를 확보하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해야 한다. 경찰의 초동수사 단계에서 어떤 증거를 확보하고 어떤 혐의를 적용하는지가 그만큼 중요해졌다.

    경찰은 올해 수사부서에 4000명가량을 추가 배치하는 등 형사사법체계 개편에 대비해왔다. 하지만 일선 수사관이 접수하는 사건은 최근 5년 사이 20% 넘게 늘었다.

    최근에는 일선 경찰서에서 사건을 임의로 종결하거나 수사 범위를 축소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 수사의 전문성과 내부 통제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졌다.
  • ▲ 경찰. ⓒ뉴데일리 DB
    ▲ 경찰. ⓒ뉴데일리 DB
    ◆사건 늘었는데…수사관 1명 연간 133.8건 접수

    경찰이 처리해야 할 사건은 최근 다시 늘고 있다.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접수 사건은 2023년 248만4914건에서 지난해 297만3719건으로 2년 새 19.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사관 1인당 연평균 접수 사건도 110.4건에서 133.8건으로 늘었다.

    장기간 경찰에 머무는 사건도 적지 않다. 경찰이 6개월을 넘겨 처리한 사건은 2020년 10만6316건에서 2024년 16만879건으로 증가했다. 다만 전체 평균 사건 처리기간은 2022년 67.7일까지 늘어난 뒤 감소해 지난해에는 54.5일을 기록했다. 

    일선 경찰서별 업무량 차이도 크다. 지난해 통합수사팀 수사관 1인당 접수 사건은 상위 20% 관서에서 평균 253.3건으로 하위 30% 관서 117.9건의 두 배를 넘었다. 개별 경찰서 간에는 최대 7.4배 차이가 났다.

    경찰은 늘어난 수사 업무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상반기 기동대 감축 등을 통해 1907명을 수사부서에 보강했다. 하반기에도 약 2100명을 추가 배치하기로 했다.

    다만 수사인력 보강에는 기존 경찰 인력을 수사부서로 옮기는 방식도 포함됐다. 수사부서에 인력을 더 배치하면 지구대·파출소와 경비·교통 등 다른 부서는 줄어든 인원으로 기존 업무를 맡아야 한다.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도 지난달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수사 외 부서의 경우 기존 10명이 하던 일을 7~8명이 감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선에서도 늘어난 수사 책임에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도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든다"며 "현재 각 일선서가 한정된 인력으로 여러 사건을 도맡다 보니 민생치안 외에도 형사사건 처리를 맡는 구조에서 현장 경찰관들의 부담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수사부서에 인원을 늘리는 것과 숙련된 수사관을 확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수사계에 인력을 배치한다고 부서 내에서 '즉시 전력'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여러 사건을 접하고 경험해야 개별 형사사건에 대한 판단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사법적 판단을 현장에 맡긴 셈인데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도 고충을 호소하는 동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도 단순히 수사관 숫자를 늘리는 것과 고난도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은 별개라는 의견이 나온다. 기존 경찰 인력을 수사부서로 옮기는 것과 함께 사건 경험을 갖춘 숙련된 수사관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 ▲ 장미란(37)씨 등 실종자 허위 종결 사건으로 직무유기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제주 서부경찰서 소속 A경장이 25일 오후 제주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은 후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 장미란(37)씨 등 실종자 허위 종결 사건으로 직무유기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제주 서부경찰서 소속 A경장이 25일 오후 제주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은 후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부실·축소수사 질타에도…첫 수사 책임 더 커져

    경찰의 수사 권한이 커진 상황에서 최근 일선 경찰서에서는 부실수사 논란이 잇따랐다. 장미란씨 실종 사건에서는 경찰이 사건을 임의로 교통사고로 판단해 종결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실종자를 직접 확인하도록 한 경찰청 지침과 관리자 보고 절차가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사건이 다시 수사 대상에 올랐을 때는 필요한 증거 일부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장윤기 사건에서는 광주 현지 수사팀과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 부친 사이의 유착 의혹과 함께 축소수사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경찰은 장윤기를 일반 살인 혐의로 송치했지만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 이후 강간 등 살인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 자체 수사에서는 광주 광산경찰서 지휘부가 성범죄 목적을 염두에 둔 수사를 제한하고 일반 살인 사건으로 수사 범위를 축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초동수사를 맡은 강력팀장은 구속됐고 당시 광산경찰서장과 형사과장도 검찰에 넘겨졌다.

    개정 형소법 시행 이후에는 장윤기 사건 당시 검찰이 했던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없다. 검사가 경찰 수사에서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해야 한다. 경찰은 원칙적으로 한 달 안에 보완수사를 마쳐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경찰도 개정 형소법 시행을 앞두고 부실수사와 사건 지연 등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줄이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놨다. 지난 7월에는 경찰 수사 과정의 비리·유착과 사건 축소·은폐 등을 살피기 위한 내부 통제 강화 방안을 내놨다.

    국가수사본부장 직속 내부비리수사대 신설과 국가경찰위원회 산하 경찰 수사 인권·감찰 조사기구 설치 등이 포함됐다. 경찰 수사심의위원회 기능을 강화하고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 사항을 상시 점검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장미란씨 사건 이후에는 사건 무작위 배당과 수사관 기피 신청제를 추진하고 외부 법률가 중심의 수사심사관을 전국 경찰서에 배치하기로 했다. 실종사건은 관리자가 실종자 대면 여부와 안전을 확인할 객관적인 자료 등을 확인한 뒤 종결하도록 절차를 바꿨다.

    개정 형소법에는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고 기존 수사관이나 수사관서에서 적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려우면 상급 수사관서나 다른 수사기관을 지정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됐다.

    수사가 6개월 이상 정당한 이유 없이 진행되지 않거나 위법·부당한 수사행위가 있을 경우 고소인 등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도 신설됐다. 다만 경찰이 내놓은 대책 상당수는 수사 기록을 사후에 점검하거나 경찰에 다시 수사를 맡기는 방식이다.

    국가경찰위원회 산하 조사기구 역시 경찰이 종결한 불입건 사건과 관리 미제 등을 점검한 뒤 국가수사본부장에게 재수사를 요구하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최초 수사 과정에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수사 기록 자체가 잘못 작성되면 사후 점검만으로 문제를 찾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에 더 많은 수사 책임이 주어진 만큼 단순한 인력 재배치에 그치지 않고 사건 경험을 갖춘 수사관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