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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상식■전작권이 한미동맹이다 ⑥한미전쟁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영웅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는 운도 좋다.
1953년 1월 20일 미국대통령 취임 직후, 3월5일 소련 스탈린이 죽어준 것이다.
그 순간 포로송환문제 대결로 1년 넘게 멈췄던 휴전협상에 물꼬가 터진 것, 즉, 미국은 포로 본인의 의사에 따른 자유송환을 주장한 반면, 무조건 일괄송환을 고집하던 장애물 스탈린이 사라짐으로써 아이젠하워(이하 아이크)의 대선공약 ‘한국전쟁종결’의 문이 활짝 열렸기 때문이다. 아이크는 물론, 판문점 중공-북한 측도 신바람이 났다.
⚫3월15일: 소련 새 수상 말렌코프(Georgy Maximilianovich Malenkov, 1902~1988)가 “미국과 평화적 협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의한다.
⚫3월19일: 아이크는 기다렸다는 듯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화답한다. ”미국은 명예로운 평화 달성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용의가 있다“
⚫3월30일: 중공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가 ’부상포로 우선 송환‘을 제안.
⚫4월11일: 클라크 유엔사령관이 아이크의 결재를 받아 부상포로송환에 합의 서명.
⚫4월15일: 아이크는 ”소련 새 지도자들은 냉전정책을 포기하고, 아시아의 평화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전쟁을 종결시키자“고 재촉하고, 23일에는 ”소련 대표와 어떤 노력이라도 할 수 있으며 어떤 장소에서든 만나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서둘렀다.
■한미전쟁■
여기서 이승만이 폭발한다. 이대로 통일의 꿈은 사라지는가.
”역시나...아이크는 맥아더가 아니었구나“
웨스트포인트 육사 10년 선후배로 필리핀에선 7년간이나 맥아더의 최고급 참모였던 아이크에 대하여 이승만은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유럽전쟁의 연합군총사령관이니까 전쟁을 모르는 트루먼과는 다르겠지...더구나 지난해 12월 대통령당선자로 찾아온 아이크를 붙잡고 한국전쟁의 역사적 정치적 성격과 남북통일의 당위성을 열렬히 설교했던 이승만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반공통일‘ 신념에 일심동체였던 맥아더와 너무나 다른 아이크는 미국 제일주의자일 뿐이다. 또 일언반구도 없이 코리아 패싱, 소련과 야합하는 패권주의 그것이다.
”배신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 T. 루즈벨트와 F. 루즈벨트를 겨누던 화살이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에게 당한 배신, 1905년 8월 어렵게 찾아갔을 때 감쪽같이 속고 말았다. 당시 일본과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맺어놓고서 ”코리아를 돕겠다“고...뒷날에 알고 땅을 쳤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배신, 얄타 밀약에서 스탈린에게 한반도를 넘겨준 장본인 아닌가.
트루먼도 배신자, 2년전 38선 돌파때 미국도 유엔결의로 통일을 약속했거늘 트루먼이 이를 깨고 후퇴하더니, 아이크는 아예 ’분단 휴전‘의 총지휘자로 나선 것이었다.
★”한국의 운명을 한국이 알게 하라“
냉엄한 국제현실주의자 이승만은 한국군 전쟁사령관으로서의 자세를 고쳐잡았다.
”외교는 전쟁이다“ 외교의 신이라 불린 이승만이 미군장성 출신 최강국 대통령과 정면대결하는 국제외교전쟁, 아니 전쟁 중의 전쟁외교! 또 다시 미국과 싸우지않으면 통일은 없다.
4월13일 미-소의 휴전흥정을 가로막고 나섰다. 역사상 몇 번째 흥정이린 밀인가.
“경계선의 위치를 막론하고 국토양단하는 휴전은 공산침략자의 승리가 될 것”이며 “조국 경계선 압록강까지 진격함으로써 한국전을 종결하는 것이 현재 자유의 최전선 한국의 승리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이승만은 단호하게 천명한다.
이때 백악관에서는 미국이 한반도 허리(腰部)에 경계선을 설정하고 한국정부가 수락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승만 대통령은 거듭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국인이 죽고 유엔연합국 국민을 죽인 공산군을 용인하고 국토를 분단한 채 둔다면 아들을 잃는 부모들에게 어떤 설명과 무슨 위안을 줄 수 있겠는가. (중략)...현재 우리가 공산주의자와 타협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그런 정치적 과오가 다시 취해진다면, 한국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정직한 통고로써 한국민이 알게 하기 바란다” ([조선일보] 53.4.16)
“불의는 폭로하라” 몽매한 국민을 일깨워 여론전으로 성패를 가리는 승부사.
이승만은 청년시절부터 강대국의 ‘한반도 흥정’을 낱낱이 국제사회에 고발해 왔다. 을사조약, 한일병탄은 물론 태프트-가쓰라 밀약 및 얄타밀약 등의 폭로가 그러하다.
◆미국정부에 ’단독북진‘ 공식통고
아이크가 재촉한 휴전회담 정상화, 4월25일로 정해지자 이승만은 칼을 빼들었다.
4월24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은 미국 대통령과 국무부에 ‘최후통첩’ 같은 공식서한을 전달한다. 동시에 이 극비문서 내용을 절친한 미국통신 INS에 건네주어 다음과 같이 보도하게 만들었다. 위에서 지적한 글로벌 외교전술, 미국민과 전세계에 알려야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24일 미국에 대하여 ‘한국의 휴전이 ’한국인이 선택하는 정부하의 재통일‘을 규정하지 않는 한, 어떠한 휴전이든 이를 거부하기로 ’단호하게 결심하였다‘고 통고하였다. 한국주미대사 양유찬 박사는 이날 미국무성 극동담당차관보 로버트슨(Walter S. Robertson)씨를 방문하고 이승만대통령이 영도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전달하였다. 양대사는 또한 “미국이 중국본토를 폭격하겠다는 위협을 줘야한다”는 맥아더 장군의 제안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말하고 통고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만약 한국을 분단된 상태로 휴전이 성립된다면, 우리 국민들은 ’필요하다면 단독으로라도‘ 국토의 재통일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하였다. 설사 이럼으로써 우리가 멸망을 당한다손 치더라도 단독으로 이길로 나아가겠다. 우리는 노예로서 생존하느니보다 자유인으로서 죽는 것을 택하는 바이다. 우리는 다음 두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 휴전이라면 수락하지 않겠다.
(1) 중공군의 완전 철퇴
(2) 한국인민이 선택하는 정부하의 재통일
회담이 재개되어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못한다면 그 결말은 비극적인 것이 되고 말것이라고 양대사는 강조하였다...」 (워싱턴 25일발 INS통신)
★한마디로 대미 선전포고와 같다.
총칼 없는 한미전쟁—”멸망해도 통일로 가겠다“ 대한민국 국운을 건 건곤일척의 ’단독북진통일‘ 결의는 이후 2년간 계속된 한미동맹 체결과 조약 발효까지 이승만은 한치의 ’후퇴‘도 없이 초지일관한다. 대한민국 거리마다 국민항쟁의 함성, 국민의 힘으로 미국과 싸운다.
눈에 띄는 것은 ’통일전쟁 결의를 아이크에게 통고하면서도 ’필요하다면(if necessary)’이란 대미협상 여지를 남겨두는 것을 잊지않았다는 점이다. 정작 미국으로부터 얻어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이 무렵 미정부 문서철 FRUS(Foreign Relations of United States)에는 주한미국대사 브릭스(Ellis O. Briggs)의 면담기록 등 이승만의 휴전반대-단독북진 발언들이 넘쳐난다.
”...Withdraw UN forces and terminate economic aid---do that tomorrow if you must...but even so WE shall go forward alone...“
(유엔군을 철수하고 경제원조도 중단해야 한다면 내일이라도 그렇게 하라. 미국이 그런대도 우리는 혼자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FRUS 551, 5월25일자.)
다음주 이승만이 아이크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는 한층 비장하다.
”미국의 휴전강요는 저항도 없이 사형선고를 받으라는 것과 같다”
(,,,an acceptance of a death sentence without protsest.../FRUS 565, 5월30일자)
◆“북한포로는 우리 국민, 제3국 못 보낸다”
판문점에서 ‘반공포로의 중립국 이관문제’가 타결되자 이승만이 또 폭발한다. 경무대에서 기자단과 회견, “중공군을 먼저 철퇴시켜야 한다”고 전제한 다음, ”본국 가기를 거부하는 중공군 포로는 상관치 않으나, 북한출신 포로만은 우리 국민이므로 한국이외의 여하한 제3국 이송관리도 절대 반대하는 바“라고 대못을 박았다.
”북한 괴뢰군의 무장해제를 요구해왔는데 이는 지금 필요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중공군만 물러나간다면 북한 공산군쯤이야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지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1군단 창설식서 ‘북진통일’ 맹서=미국의 원조에 힘입어 국군 1군단이 창설된다. 5월1일 중동부전선 미10군단 광장에서 거행된 창설식에는 이대통령 부처, 테일러 제8군사령관, 신태영 국방장관, 화이트 제10군단장, 백선엽 육군총참모장, 이형근 제O군단장, 정일권 제O군단장 및 각사단장 등 한미 장성들이 참석, 사열-분열이 끝난뒤 이대통령이 어김없이 ‘북진통일’ 훈시에서 열변을 토한다.
”한국민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휴전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중공군이 한국에 남아있는 현정세하에서는 어떠한 휴전도 반대하는 것이다. 한국국민은 통일 없는 휴전에 반대하며 일대 국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휴전성립 전에 중공군은 압록강 이북으로 철수하라. 한국 국민은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이 한국에 남아있어야 행복할 것이며 승리의 날까지 계속 싸워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변영태 ”완충지대는 반드시 압록강 국경선 밖에 설정하라“
판문점 쵝덕신 대표로부터 ‘군사적 완충지대 설정 논의’를 보고받은 변영태 외무장관은 5월8일 이승만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성명을 발표한다.
“만일 휴전을 위한 완충지대가 한반도 내에 설정된다면 그 완충지대의 존재이유까지도 소멸될 것이다. 압록강 양안에 걸쳐지거나 한국영토내에 설정되는 어떠한 완충지대도 우리는 수락할 수 없다”
◆아이크 친서에 분격...“단독북진이다! 국민은 나를 따르라”
클라크 장군과 브릭스 대사가 이승만 대통령을 또 찾아왔다. 그들이 내놓은 봉투에서 아이젠하워가 쓴 장문의 친서가 나왔다. 이승만은 큰 소리로 읽었다. 안면 근육과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7일상오 11시 공보처를 통하여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휴전회담에 관한 한국정부의 대안(代案) 관철을 다시 강조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단독으로라도 북진하여 나갈 것이니 전국민은 일심합력하여 정부의 결정을 따라서 동진동퇴(同進同退)할 것을 바란다는 비장한 결의를 전국민 앞에 선언하였는데 특별담화내용은 아래와 같다.([조선일보] 1953,6.9일자)
“...(전략)...최덕신 소장이 매일 천막속에서 진전되는 사항을 보고하여 얼마쯤은 나도 알고 있었으나 유엔 측에서 절대비밀을 지켜달라는 부탁이 있었으므로 발표할 수 없었으나, 그 제안의 중요한 조건은 벌써 각국 신문에 이미 전파되었으며, 연합국에서는 내용을 모르는데 공산측은 다 알고 있다는 비평까지 있었던 것이다. (중략)...얼마 전에 내가 미국대통령에게 답서를 보내 미국제안을 받을 수 없고 우리의 대안을 제출할 것이니, 이것은 중공군이 다 철퇴하고 미국은 타국이 한국을 침략할 때는 언제나 싸우겠다는 한미상호안보조약을 먼저 서명 체결하자는 것이다. 이를 반대해서 될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끼리 만이라도 밀고 올라가서 사생을 결단하여 좌우간 통일을 규정해 내겠다는 결심을 표시한 바 있는 것이다. 일반민중은 이 사태를 잘 알고 전국민이 일심합력해서 정부를 따라서 동진동퇴(同進同退)하여야 할 것이다.」
아이크의 친서를 보자 분노한 이승만이 ’국민 총동원령‘을 내린 것이다. 왜?
◆아이크의 협박을 공개...미국의 음모 폭로
오전에 대국민 특별담화를 발표한 이승만은 저녁 7시에 아이젠하워의 극비편지를 일방적으로 공개하였다. 미국을 잘 아는 이승만의 공격타이밍 선택, 워싱턴 출근 시간에 맞춰 강펀치를 날린다. 아이크의 감언이설과 협박, 최후통첩 같은 국제음모의 가면을 활짝 벗겨 한-미 양국 국민 앞에 보란 듯이 폭로해버린 것이었다. 독립운동 때와 같은 이승만식 ’여론투쟁 전술‘이다. 그 아이크의 속내를 보자.
▶[공보처7일 하오7시 특별발표]◀
이대통령은 7일 하오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대장과 주한미국대사 브리그스씨를 통하여 아이젠하워 미대통령으로부터 장문의 서한을 접수하였다. 이날 공보처는 이대통령의 특명에 의하여 동 서한 전문을 공표하였는데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조선일보] 1953년 6월9일자)
◉아이크 친서 전문
1953년 6월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대통령 각하
5월30일자 서한을 보내신 전문은 6월2일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은 그 가진바 모든 인적물적 자원들 들여 역사에 영원히 빛날 영웅적 투쟁을 하여왔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한 공산주의 침략에 대하여 인간의 자유와 민족의 자유는 엄존할 것이라는 원칙을 위하여 귀국은 일체를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미국은 귀국과 함께 일어나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위와 같은 원칙을 위하여 싸워온 것입니다. (중략)...우리는 한국 통일을 위한 투쟁을 전쟁으로써 속행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또는 기타 방법에 의하여 이 목표를 추구할 것인가? 결정해야할 순간에 직면하였습니다.
적(敵은 침략의 과실을 확실히 포기하는 것을 포함시켜 휴전을 제안하여 왔습니다.
휴전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은 침략을 받기전에 통치하였던 영역을 실질적으로 전부 점유하게 되는 것이며, 오히려 이러한 영역은 좀 확대될지도 모릅니다...(중략)...현정세하에서 유엔이나 대한민국이나 휴전을 수락해야 한다는 것은 나의 충심으로부터 나온 확신입니다. 무력으로써 한국통일을 달성하겠다는 기도에 수반될 모든 참사를 생각할 때 전쟁을 길게 끈다는 것은 정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통일이라는 것은 미국이 한번만이 아니라 여러 차례 공약한 목표의 하나입니다.
이 공약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그러하였고 또 한국에 관하여 유엔이 선언한 원칙을 미국이 수락함에서도 표명된 것입니다. 한국은 불행하게도 제2차대전후 국토가 분단된 유일한 국가는 아닙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분단된 모든 나라의 정치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의 역할을 다 하겠다는 결의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고 정당하다고 믿어온 세계적 규모의 정치적해결을 달성한 수단으로서 전쟁에 호소할 의사는 없습니다...(중략)...각하에게 명백히 알리고자 하는 세 가지 주요점이 있습니다.
1. 미국은 모든 평화적 수단으로써 한국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노력을 결코 단념치 않을 것입니다. 또한 유엔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유엔이 금후로 이점에 관하여 확고부동한 결의를 견지하도록 전력을 다 할 것입니다. 휴전후 열릴 정치회의에서도 이것이 우리의 중요목표가 될 것입니다.
2. 각하의 서한은 또 상호방위조약을 언급하였습니다. 나는 휴정협정이 체결되고 수락된 후 동시에 미국과 필리핀, 미국과 호주 및 뉴질랜드 간에 체결된 조약과 동일성격의 상호방위조약을 협상할 용의가 있습니다.
동조약은 현재로 또는 금후 평화적으로 대한민국 통치하에 들어올 영역을 적용대상으로 할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각하는 미국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이와같은 조약은 상원의 조언 과 동의를 얻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3. 미국정부는 국회의 예산승인 범위 내에서 대한민국이 황폐한 국토를 평화리에 부흥할 수 있도록 계속 경제원조를 할 용의가 있습니다...(중략)...
휴전성립과 동시에 미국은 대한민국과 손을 잡고 한국의 이러한 목표를 추구할 용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이 더 완전한 통일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며, 위에 말한바 평화적 방법에 의하여 그러한 통일을 달성할 방도를 추구할 것입니다. 이것은 전투의 종식에서 올수 있다고 믿는 바입니다. 한국 방위를 위한 어떠한 규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상호한전보장 조약에 나타날 것입니다. (중략)
대통령 각하
나는 대한민국과의 제휴관계를 증진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소망이라는 것을 확언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위기에 있어서 결별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일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드와이트 J. 아이젠하워 (*밑줄은 필자)
한국목표에 동의한다면서도 선심을 쓰는 체 ‘용의’가 있다‘는 말의 나열이다.
‘약속’이 아니라 ‘용의’라는 외교적 수사, 어르고 달래는 수법이다.
한미방위조약도 “휴전을 수락해야만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것,
휴전을 수락한다면 휴전 후에 정치협상으로 통일을 이룰 방도를 찾겠다는 것,
경제원조도 휴전을 수락해야 제공할 용의가 있다는 것,
그리고 편지 마지막에 결정적 ‘주먹 한방’을 날린다.
“이런 위기에 ‘결별’한다는 것은 비극”이라는 말, 폭력배의 공갈 협박이나 다름없다. “내 말 안 들으면 너의 나라는 끝장이야! 손 뗄 것이니 알아서 해!”
★휴전후 정치회의?
이 아이디어야말로 1951년 휴전으로 돌아선 미국이 궁리해 낸 꼼수, 이것을 1953년 누구보다 휴전이 시급한 아이크가 관철한 것이다. “한국전쟁은 내가 끝낸다”고 장담한 그는 무엇보다 급한 것이 전쟁중지, 말 그대로 정전(停戰) 곧 Cease Fire (발포중지)였다.
전쟁 끝내기 회담은 대개 종전(終戰) 평화회담, 적대국들 사이에 얽힌 정치적 문제들까지 조정-타협-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상식인데 이것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따라서 미국민들에게 대선공약 실현을 빨리 보여주려는 아이크는 ‘휴전후 정치회의’ 카드를 내민 것, 한반도에 쌓이고 쌓인 정치적문제는 몽땅 제외하고 오로지 ‘발포 중지‘만 서둘러 타결한 것이다, 그래서 협정명칭도 Korean Peace Treaty가 되지 못하고 Armistice Agreement로 된 이유이다.
이와같이 전쟁의 최대이슈 ’남북통일‘ 문제를 휴전후 ’정치회의‘(Political Conference)에서 해결하자는 ’아이크의 꼼수’ 때문에 이승만은 아이크와 한판 전쟁을 벌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뿐인가. 지금 대한민국도 북한의 ‘평화회담’ 공작에 몸살을 앓는지 73년째이다.
◆미 유학 장성들 긴급소환...전국에 비상령 선포
이승만 대통령에게 6월 7일 하루는 아주 바쁜 날이었다.
국민들에게 ”단독 북진할 테니 나를 따르라“는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저녁엔 아이크의 협박편지를 폭로하면서 동시에 워싱턴 한국대사관에는 클라크의 ‘철군 협박’도 폭로하라 시켰다.
그런데 이날 이승만이 맨 처음 한 일은 7일 아침 9시를 기해 전국에 준(準)비상경계령을 내리고, 미국에 유학중인 장성들과 장교들을 긴급 소환한 조처였다.
”보아라, 아이크! 단독북진 못할 줄 아느냐?“ 행동으로 보인 ‘대미투쟁’ 그것이다.
[공보처7알발표] 정부에서는 현하 긴박한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도미 중에 있는 육군총참모장 백선엽 대장이하 육해공군 수뇌부 전장교의 즉시 소환을 병행하는 동시에 현재 도미 예정중이던 모든 장병에 대하여도 출발 중지를 명하였다. 또한 전국에 준비상경계령을 내렸다고 특별발표를 하였다.
▶‘북진통일 투쟁위원회’ 담화=북진통일 투쟁위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우리의 소망이 아닌 소위 판문점 휴전회담은 지금 어떠한 조건 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에 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한국민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비밀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 이 시각에도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조국의 운명을 결하겠다는 아우성소리가 산천을 뒤흔들고 있으며 삼천만의 가슴속에서는 분노의 핏덩어리가 용솟음치고 있다. 정부는 모름지기 판문점 휴전회담 내용을 남김없이 공개하라. 우리는 또다시 외친다. 최후의 일각까지 통일을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이승만, 미1군단 앞에서 ”단독북진 양해해 달라“ 오열
[제1군단사령부 8일발INS=합동] 이승만 대통령은 8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보낸 서한에 포함된 미국의 양보는 ‘만족할만한 것이 아니다”고 명백히 선언하였다. 즉 이대통령은 8일 INS통신에게만 보낸 단독성명서에서 아이크가 표명한 것들에 가감없는 불만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날 이대통령은 미제1군단의 참전 1000일 기념식에 참석하여 피눈물을 토하였다.
“나는 슬픈 얼굴과 무거운 심정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고 말하였는데 그의 목소리는 울음에 잠겨 거의 들을 수가 없었다. 군단 열병을 마치고 걸어올 때 이대통령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제안을 수락할 것인가 여부를 질문 받았을 때 “나는 아직 결정 않고 있다”고 말하였다.
▶연설요지=“여러나라 군대가 싸우며 피를 같이 흘려온 것은 잊지 못할 감사를 불러옵니다...우리가 이때까지 바라고 온 것은 이와 같이 많은 희생의 결과로 동양 민주주의가 안전하게 될 것을 바랐던 것인데, 지금 와서는 이 모든 희생이 무효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깊이 상심하고 유감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중공군이 계속 우리나라에 있어가지고는 평화나 휴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주장하는 바입니다. 유엔군이 우리나라에 와 처음에 희생당할 때의 가진 목적을 성취하기를 바라왔으나 그렇게 못해서 전쟁을 더 계속치 않는다 할 때에는 그대들이 이 만큼 싸워주어서 생존을 유지한 것만이라도 우리는 감사히 여기며, 그 후에는 우리 끼리 만이라도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계속해 싸워나가겠다는 것이 우리의 결심이니 이것만은 양해애 주기를 바랍니다.” (조선일보, 53. 6.10일자)
◆전국 폭발...민심의 산불...미국 대사관에 몰려가다
2년전 1951년 6월 처음 횃불을 들어 계속해 왔던 휴전반대 시위는 이승만의 ”정부를 따르라“는 비상명령과 함께 ‘포로송환협정 조인”이란 불덩이가 연발하자 전국이 활화산처럼 폭발하고 말았다. 국무총리 서리가 된 변영태는 9일 특별담화를 내고 “전민족이 생사의 벽두에 선 중대위기에 있어 일반국민의 총궐기”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그런 요청은 할 필요도 없었다.
서울, 부산을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에서 “통일 없는 분단 휴전 결사반대”의 부르짖음이 산불처럼 일어나 날마다 전국토를 불태울 기세이다. 서울에선 상가는 모두 철시하고 전차와 버스도 운행중지, 수만명의 시위대는 중앙청, 시청앞, 남대문, 미8군사령부 앞 등에서 인산인해로 행진하며 “중공군 물러가라” “우리 의사 무시하는 회담 즉각 해산” “단독북진 통일 막지마라”
갖가지 플래카드와 구호가 하늘을 뚫을 듯 넘쳐난다.
국회가 “단독북진 통일” ”중공군의 한반도 철퇴“ 결의안을 잇따라 통과시키고 10일엔 임시수도 부산 충무로 광장에서 수만명의 인파가 국민대회를 열고 미국대사관으로 달려갔다.
▶이승만, ”시위는 민족자결권...언행에 신중, 외국 친구 잃지 말라“
미국과 정면대결을 선언, 국민총동원령을 내린 노대통령 이승만은 그 분주한 와중에도 대미관계 관리에 노파심을 발휘한다. \\민의 탈선은 물론, 공산당의 암약을 막아야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국가에는 가장 큰 위기를 당해서 민심이 전국적으로 소동되고 있는 이때, 혹 불량분자들이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탈선적 망언망동이 있을까 염려, 유엔군이나 외국인에 대해서 조금도 불온한 관념을 보이는 것이 없이 우리는 민족자결주의에 정당한 도리로 우리의 고유 권리를 세계에 표시해서 우방과 적국에 알게 하자는 것이니,...누구를 시비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우리 살길을 찾자는 것을 호소, 우방에 불평을 표시하는 것은 난동적 미개 행동이니 친구들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덜레스, 이승만의 공식방미 초청...이승만 ”못간다“ 거부
워싱턴은 초조하다. 예상 밖의 집요한 이승만의 휴전반대와 단독북진 태세에 국무장관 덜레스는 이승만 대통령의 방미를 초청한다. 아이크가 제시한 휴전후 지원사항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이승만은 그러나 ”바빠서 떠날 수 없다“고 거절한다. 대신 덜레스 장관의 방한을 제시하였다. 덜레스는 이승만이 미국제안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만날 수는 없으므로, 극동담당차관보 로버스튼을 대신 보내겠다고 했다. 이승만은 수락한다.
이런 결론이 난 것은 6월16일, 그 이틀후 경천동지할 대사건이 터질 줄이야.
바로 반공포로 전격석방! 로버트슨 방한을 허락해놓고 다음 순간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우리는 살고 싶소, 우리 운명은 우리가...“ 대통령의 눈물
세계를 경악시킨 반공포로 석방은 이승만이 아이크의 협박친서를 본 순간 결단한 것이다.
그동안 이승만과 협상 아닌 협상을 거듭해왔던 클라크는 ‘탄약고로 타들어가는 불붙은 도화선’처럼 어떤 휴전도 파탄 내겠다고 벼르는 이승만이 “지혜가 깊고 예지력이 탁월한 국가원수로 존경심이 절로 울어 난다”고 뒷날 회고록에 썼지만, 이 날도 예상대로 흥분에 떠는 노대통령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피며 새로운 ‘양보’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리의 (휴전)최종안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미친 감정적 영향은 너무나 컸다. 나는 그가 그처럼 난처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의자에 똑바로 앉아 청년시절 감옥에서 고문 받아 화상을 입은 손가락들을 후후 불며 비벼대고 있었고 얼굴 근육은 가끔씩 경련을 일으키곤 했다. 그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약을 애써 눌러 참는 모습이었다. 브릭스 대사와 내가 번갈아 휴전 동의와 원조계획과 약속을 설명하는 도중에 그는 갑자기 말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클라크 회고록 [다뉴브에서 얄루까지]에서)
”나는 대단히 실망했소. 당신네 미국 정부는 자주 태도를 바꾸고 있소. 당신네들은 한국 정부의 견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단 말이오” 이승만 대통령은 중공군의 즉각 철수를 촉구하면서 “당신들의 위협은 우리에게 효과가 없소. 우리는 살고 싶소. 우리는 생존하고 싶은 거란 말이요. 우리는 우리 운명을 우리가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것이오. 미안하지만 이러한 사정아래에서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협조를 약속할 수 없소...” 부들부들 떨며 뜨거운 울분을 토해냈다. 변 장관은 만약 포로를 강제송환 한다면 반공포로의 많은 수가 자살을 택할 것이라고 또렷한 옥스퍼드식 영어로 경고하였다.
2시간 넘는 회담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 속담을 인용해가면서 ”인도군 병사는 한 사람도 한국 땅에 발을 들여놓게 하지 않겠다는 뜻을 아이젠하워에게 설명해 달라“고 잘라 말했다. “내 친구 아이크에게 전하시오. 휴전반대는 내가 선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간절한 소원에서 나오는 것이오. 우리 동포 포로들을 남의 나라에 넘기고 국토를 중공에 팔아넘기는 이런 휴전을 수락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잔인한 사형선고문서와 같소. 당신네 대통령에게 말하시오. 우리 국민들은 단독으로 싸우기를 원한다고...”
주름진 노인 얼굴은 절망과 분노에 말을 끝내지 못한 채 젖은 눈이 불을 뿜고 있었다.
이날 회담의 뒷이야기를 취재한 AFP통신은 워싱턴 당국이 상당히 당황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회담 분위기는 험악하였으며 이승만 대통령은 두 미국인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대화 내내 자기 권총을 만지고 있었다」고 전한 이 통신은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이대통령은 먼저 한미상호방위협정이 조인되지 않고 휴전협정이 체결된다면 한국군은 단독으로 계속해서 싸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는데, 미국의 교섭자들은 이에 대한 확약을 줄 수가 없었다고 한다」고 썼다. 동시에 “국가운명을 강대국에 맡길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 약소국 대통령의 남다른 강고함에는 “단1인치의 양보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는 관측통의 말도 인용 보도하였다.
◆이승만, 원용덕에 “可 晩” 친필 작전명령서
클라크와 브릭스 대사가 진땀을 빼다가 돌아간 그날 오후, 이승만은 원용덕(元容德, 1908~1968)) 헌병 총사령관을 경무대로 불렀다. 바로 작년 직선제개헌(부산정치파동)때 부산-영남지역 계엄사령관으로 임명, 결정적 역할을 맡겼던 심복중의 심복이다. 평소 원용덕의 무인다운 애국심을 신뢰한 이승만은 올해3월 그를 중장으로 진급시켜서 당시 육군편제를 넘어서는 헌병총사령부를 만들어 총책을 삼았다. 건국 후부터 여-순 반란을 거치며 ’숙군‘(肅軍)을 완수한 김창룡(金昌龍)과 함께 두 사람은 반공국가 대한민국을 지키는 이승만의 양팔이다.
원용덕이 경무대에 들어서자 이승만은 비서들을 물리치고 다가앉으라 손짓한다.
“이봐, 원 장군. 미국 사람들이 우리 애국청년들을 죽음의 땅으로 보내려하니 큰일이야. 나로서는 한명도 북으로 보낼 수 없네. 그러니 원 장군, 반공포로들을 석방했으면 하는데 그 방안을 마련해서 보고해 주시오. 오늘 밤중이라도 괜찮아, 서두르시오”
’올것이 왔구나‘ 직감한 원용덕은 ”네 각하!“ 두말없이 힘차게 대답하였다.
왜냐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1951년부터 해마다 포로수용소를 시찰한 뒤에 ”반공포로들은 빨리 풀어줘야 되겠어“ 여러 번 말하는 것을 들었던 터였고, 그때부터 원용덕도 제네바협정등을 조사해 ’포로 상식‘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1949년 세계2차대전 종료후 체결된 제네바협정 제118호는 ’전쟁포로는 적대행위가 종결되는 즉시 본국으로 송환되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소련등 공산국들이 포로들을 강제수용소에 억류하여 노예처럼 혹사했던 만행을 봉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원용덕은 갈등한다. 상부조직 뿐 병력이 없는 헌병총사령부가 유엔군이 관리하는 포로들을 석방시켜야하는 것, 병력동원 지휘권도 유엔군에게 있고 육해공군 소속 헌병대도 유엔군 산하에 있으니 맨손이나 마찬가지이다.
신당동 집에 돌아온 원용덕은 포로석방 비밀명령이 곧 우방 미군과 싸워 애국청년들을 구출하는 구국명령임을 새삼 명심하며 숙연한 감개에 젖었다. 나도 원했던 일, 내가 해내고야 말리라! ([비화-임시수도1000일] 부산일보사, 1984)
혼자서 ‘석방작전’ 윤곽을 다듬은 원용덕은 진헌식(陳憲植) 내무장관부터 찾아갔다. 전작권에 묶여있는 국군 대신 행정력과 경찰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일, 탈출한 포로들이 갈아입을 옷과 숙식문제, 미군과의 문제발생 처리 등을 협의하고 경무대로 달려갔다. 예상보다 빨리 나타난 원용덕을 이승만이 반겼다.
“각하, 작전계획을 세웠습니다만 수용소들을 접수하려면 헌병들이 필요한데 제겐 지휘권이 없지 않습니까?”
“알고 있네.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나?”
“저에게 육해공군소속 헌병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내려주십시오. 꼭 성공시키겠습니다.”
원용덕은 미리 작성한 계획서를 꺼냈다.
‘오늘부로 모든 헌병은 원용덕 헌병총사령관의 지휘 하에 들어감을 명령함’이란 문안을 읽어주면서 ‘대통령 이승만’ 서명 자리를 손으로 짚었다.
“여기에 결재를 해주시면 이것을 가지고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다.”
이승만은 주저 없이 문안에 ‘晩’이란 사인을 해주더니 새 종이를 꺼내 붓글씨를 썼다.
‘대통령이 명령하니 반공 한인 애국청년들을 석방하라. 可 晩’
결재 서명 ‘晩’은 이승만의 ‘만’이다. 포로 석방명령서를 즉석에서 친필로 써준 이승만은 신뢰하는 심복 동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였다.
◀반공포로 대탈출▶
D-Day 6월18일 자정무렵, 전국 20여개 수용소내 반공포로들은 창밖만 뚫어져라 쏘아본다.
초저녁부터 뿌리는 빗발 속에 칠흑 같은 어둠 저편에서 깜빡깜빡깜빡 손전등 신호 세 번!
“나가자” 포로들은 일제히 막사를 뛰쳐나갔다. 철조망은 누군가 벌써 2미터쯤 끊어놓았다.
수천명의 포로들이 밀려나가며 성급한 사람들은 철조망을 맨손으로 기어 넘어간다.
탕 탕 탕...10분쯤 지났을 때 총소리와 함께 미군 경비병들이 나타났다. 검은 그림자들이 미군들을 덮치며 얼굴에 고춧가루를 쳐바르고 무장해제 시켜 무릎 꿇렸다.
“멈추지 마! 30리 뛰어야해!” 탈출한 포로들은 대장이 몰래 나누어준 사복과 며칠분의 비상식량을 움켜쥔 채 뛰고 또 뛴다. 날이 밝기 전에 지정된 장소 “30리 밖까지” 도망쳐야만 한다.
이때 포로복장으로 위장한 특공대원들은 3명이 1개조로 미군 경비병들을 급습 제압했고 동시에 장갑차 헤드라이트를 사격, 장갑차에 뛰어올라 고춧가루 포대를 쏟아넣기도 했다.
방황하던 미군 수용소장들은 뒤늦게 미군병사들에게 “한국군과 싸우지 말라. 이것은 정치적 문제이니 방해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틀 동안 탈출에 성공한 반공포로들은 전국에서 모두 2만 7천여명을 헤아렸다. 이승만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중공 귀환을 거부한 중공군 포로들은 한명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펄펄 뛰는 처칠...아이크 “적보다 무서운 적이다”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서울발 아침 긴급뉴스는 좌우 강대국들을 무차별 강타하였다.
런던 침실서 처칠이 뛰쳐나오고, 도쿄에서 아침 샤워하던 클라크는 면도칼을 떨어트렸다고 한다. 워싱턴 아아젠하워는 즉각 백악관 비상회의를 소집하여 흥분한 얼굴로 분노를 토하였다. “이승만은 우리의 적이다. 전쟁하는 적들보다 더 무서운 적이다.”
공산측과 겨우 타결한 포로송환 협정, 그 최종서명이 오늘 18일로 예정되어있는 판에 이승만이 판을 깨버렸으니 이승만에 대한 비상대책이 더 급하다고 말했다.
“누가 적인지를 재규정하자. 이승만은 적보다 무서운 적이다.”
“이승만을 더 이상 신뢰하면 안된다. 한국군 지원과 경제원조도 당장 끊어버리자”
백악관이 허둥지둥할 때 대서양 건너 런던의 처칠은 더 펄펄 뛴다. “유엔 권위를 파괴한 중대범죄”라며 “이승만은 세계 평화의 적이다. 배신자 이승만이 존재하는 한 협조 못하겠다. 참전16개국 군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승만의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
백악관 회의는 처칠과 똑 같이 ‘이승만 제거’작전 발동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한다.
휴전을 결사반대하고 단독북진 통일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이승만, 그런 자살행위를 왜 고집하느냐고 말리면 “자살도 우리의 주권이다. 공산지배를 받느니 자살을 택하는 길 밖에 없다고 국민들이 앞장 서 싸운다”는 이승만, 아이크도 덜레스도 그의 ‘협박’이 말로만이 아닐것이라 걱정했는데, 기어이 “보란 듯이” 한다면 하는 이승만의 반격에 경탄할 수 밖에 없다.
★공산측 충격...“이승만은 미국의 꼭두각시가 아니었구나”
반공포로 석방 쇼크는 공산측도 마찬가지였으나 뜻밖에 판문점에선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북경방송이 19일 중국어방송에서 [신화사] 개성특파원 보도를 통해 미국을 물고 늘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무력을 행사하여 포로들을 강제로 수용소에서 탈출시켰다. 미국은 이대통령에게 동 사건의 책임을 전적으로 전가시키고 있으나 사실은 미국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 이 사건이야말로 휴전협상에 있어서 미국 측의 성의를 시험할 수 있는 기회로 될 것이다.”
공산측 선전꾼들은 “미국은 꼭두각시 한명도 통제하지 못하나? 이승만이 휴전협정을 지킬 것이라고 무엇으로 보증하나? 이승만을 끌어와 협정에 서명을 시켜라”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어렵사리 타결된 포로송환협정문도 책상서랍에 다시 넣어둔 채 양측은 이제 상대방이 아니라 “이승만과 협상해야 하는 제2의 협상 국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 되었다. 인도를 비롯한 스웨덴과 스위스 등 중립국들도 “우리 3개국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준수 보장을 하지 않는다면 휴전 및 포로감시위원단에 참가할 수 없을 것”이라 했다.
이제 와서야 세계는 이승만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결코 미국의 ‘괴뢰’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올리버 [아승만의 대미투쟁]에서)
◆이승만 “내 책임 하에 석방”...한국군 통수권 과시
이승만 대통령은 18일 상오 11시 포로석방에 관한 담화를 발표하였다.
“제네바 협정과 인권정신에 의하여 반공한인포로는 벌써 다 석방되었어야 할 터인데 국제상 관련으로 해서 불공평하게도 이 애국청년들을 너무 오래 구속해 왔던 것이다. 지금 와서는 유엔이 공산측과 협의한 조건이 국제적 관련을 더욱 복잡하게 해서 필경은 우리 원수에게 만족을 주고 우리 민족에게 오해를 주는 흠상을 일으킬 염려가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 내가 책임을 지고 반공한인포로를 오늘 6월18일로 석방하라고 명령하였다. 유엔사령관이나 관계당국들과 충분한 협의가 없이 이렇게 행한 이유는 설명치 않아도 다 알 것이다. 각도지사와 경찰에게 지시해서 이 석방된 포로들을 아무쪼록 잘 지도 보호할 것이니 그 직책을 잘 행할 것을 믿는 바이다.”([조선일보] 1953.6.20. 호외 재록)
◆“유엔군이 북진 안하면 한국군 철수”...전작권 회수 경고
반공포로 석방에 놀라 항의전문을 보낸 클라크가 22일 도쿄에서 날아왔다.
“지난번 약속을 어기고 본관 휘하의 국군을 빼내서 포로 석방을 하다니요?” 짐짓 포커페이스(poker-face)로 꾸민 이승만은 딴청 부리듯 사무적으로 응수한다.
“내가 왜 당신에게 미리 통보를 안했는지 자명하지 않소.”(It must be obvious why I could not notify you in advance). 알려주면 사령관으로서 사전 예방조치를 해야 할 테니 당신을 괴롭히지 않으려고 그랬다는 말이다. 동지끼리만 통하는 대화였다.
이승만은 다시 한번 기탄없이 속내를 털어놓는 친서를 클라크에게 보낸다.
“....포로문제는 전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이오. 현재 조건대로 휴전이 조인된다면 우리들의 우호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것인 즉, 유감스럽게도 한국군이 귀하의 통수 하에 있게 되리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한국군을 유엔군 산하로부터 철수하기로 결정할 때에는 귀하에게 친구로서 알려주기로 했던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친구와 친구의 전쟁, 말 없는 클라크는 승리없는 정전에 대해 이승만과 동감이다.
그동안 ‘전작권(Wartime Operational Control: OPCON; 전시작전통제권)’이란 단어를 한번도 입 밖에 낸 적 없는 대통령 이승만이었다. 이번에도 ‘전작권’ 단어대신 “한국군을 유엔군으로부터 철수”한다는 간접표현을 쓰고 있다. “전작권 회수” 등 시비는 연합군에선 상상도 안되는 상식이하의 웃음꺼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막다른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로버트슨, 이승만 제거 반대...“우리가 침략자와 다를 게 뭐냐?”
미국은 테일러 미8군사령관이 업데이트 해놓은 ‘에버레디작전(Operation Ever-ready)’을 들먹이다가 결국 다시 주저앉는다. 이번엔 로버트슨 차관보가 ‘이승만 제거’를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가 무슨 권한으로 외국 원수를 체포하며 한국정부를 강제 인수하느냐? 침략자와 싸우는 우리가 정말 우리 자신마저 침략자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냐?"
이렇게 이승만은 부산정치파동시 추방위기에 이어 두 번째로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며칠 뒤 로버트슨은 미대통령의 특사가 되어 서울로 향하였다. 이승만이 전세계를 향하여 벌이는 ‘한미전쟁’은 이제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