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질병에 맡긴 논밭…"관행 인정해야"농가 절반이 고령층…임차농지 비율 47%지역 농협도 농지 거래·담보가치 하락 우려"현장 의견 듣고 현실에 맞게 법 고쳐야"
  • ▲ 지난 1일 경기 이천시 모가면의 김철묵(66)·진춘옥(65)씨 농가에서 작업자가 상추를 수확하고 있다. ⓒ(경기 이천=임찬웅 기자)
    ▲ 지난 1일 경기 이천시 모가면의 김철묵(66)·진춘옥(65)씨 농가에서 작업자가 상추를 수확하고 있다. ⓒ(경기 이천=임찬웅 기자)
    "일부 투기꾼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죠."

    지난 1일 경기 이천시 모가면에서 상추 등을 재배하는 진춘옥(65)씨는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일부 투기 행위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실제 농사짓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다.

    함께 농사를 짓는 김철묵(66)씨도 "정부 정책에 현장 반영이 전혀 없다"며 목소리를 보탰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의 논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고 밝혔다. 땅 주인이 몸이 아파 직접 경작하기 어려워 대신 농사를 맡았다는 설명이다.

    전날 찾은 두 사람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상추가 줄지어 자라고 있었다. 작업자는 상추 사이로 몸을 숙였고, 옆에 놓인 상자에는 수확한 상추가 담겨 있었다.

    김씨는 "투기꾼을 가려내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농촌에서 서로 땅을 맡기고 경작해온 관행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토지주하고 임대하는 사람들이 서로 계약을 하면 해결된다"라며 "개인 간 임대차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농지 투기를 근절하고 소유·경작·이용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5월 18일부터 농지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1996년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한 농지를 대상으로 조사하며, 행정정보 등을 활용한 기본조사에 이어 지난 8월부터 현장 확인 중심의 심층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 ▲ 지난 1일 경기 이천시의 한 논에 벼가 누렇게 익어 있다. ⓒ(경기 이천=임찬웅 기자)
    ▲ 지난 1일 경기 이천시의 한 논에 벼가 누렇게 익어 있다. ⓒ(경기 이천=임찬웅 기자)
    ◆"농사 줄이고 싶어도 맡길 사람 없어" … 고령화 속 이어온 임대차

    전날 만난 농민들은 고령화로 직접 농사짓기 어려운 사람이 늘어나는 현실부터 살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땅을 가진 사람이 나이가 들거나 몸이 아프면 가족이나 이웃이 대신 경작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이어왔다는 설명이다.

    경기 이천시 대포동에서 25년째 논농사를 짓는 홍성수(77)씨는 약 1만2000평을 경작하고 있다. 그는 "농사를 좀 줄이고 싶고 짓고 싶지 않아도 누가 지을 사람이 없다"며 "모두 연령이 높기 때문에 지금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사람들이 시골에는 태반이다"라고 말했다.

    홍씨는 "농촌에서는 가족이나 이웃끼리 농사를 맡기는 일이 흔한데, 이를 일일이 정해진 절차에 맞춰야 한다면 농민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형제 것을 그냥 지어주고 싶어도 못 짓는다"며 "개인 간에 합의해 농사짓는 관행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농가의 고령화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가 인구 중 65세 이상 비중은 2020년 42.3%에서 지난해 51.3%로 9.0%포인트 높아졌다. 같은 기간 농가 경영주의 평균 연령은 66.1세에서 67.7세로 상승했다.

    농가의 가구 규모도 작아지고 있다. 지난해 1인 농가 비중은 27.1%로 2020년 20.0%보다 7.1%포인트 높아졌고, 2인 농가는 54.0%를 차지했다. 농가당 평균 가구원 수는 2005년 2.7명에서 지난해 2.0명으로 줄었다.

    이천시 모가면에서 40마지기(약 8000평)가 조금 넘는 논에 벼농사를 짓는 김복수(64)씨도 "다른 사람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농민들의 사정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지 소유자에게 처분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해당 땅을 경작하던 농민도 농사지을 곳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김씨는 "시골 사람들이 얼마나, 얼마큼 활용할 수 있나 그 방안이 중요한 것"이라며 "농지를 누가 소유했는지와 함께 실제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지임대차 시장 분석과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농지임대차조사 기준 전체 농지 150만5000㏊ 중 임차농지는 70만7000㏊로 47%를 차지했다. 농지 면적의 절반 가까이가 다른 사람에게 빌려 경작하는 땅인 셈이다. 여기에는 법적으로 허용되는 임대차도 포함된다.

    ◆농지은행 통한 임대에 의문 … "당사자끼리 계약하면 되는데"

    농민들은 오랫동안 당사자끼리 합의해 농사를 지어온 만큼 개인 간 임대차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만난 김철묵씨는 "왜 농지은행에서 관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토지 소유자와 경작자가 직접 계약하면 될 일이라고" 했다. 홍씨 역시 "가족끼리 농사를 맡기는 경우까지 기관을 찾아가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정부가 관행적 임대차 위반의 정상화 방안으로 제시한 것은 농지은행 위탁이다. 농지은행은 한국농어촌공사가 농지의 매입과 임대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임대 위탁은 소유자가 소유권을 유지한 채 농지은행에 임대를 맡기는 방식이다.

    농지법은 임대차를 원칙적으로 제한하면서도 질병 등 불가피한 사유나 상속 농지 등 법에서 정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한다. 농지은행을 통하지 않은 임대차도 요건에 따라 허용되며, 개별 계약의 적법성은 취득 경위와 소유자의 사정 등에 따라 달라진다.

    현장에서는 농지 매수자를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복수씨는 농민들 역시 땅을 살 자금이 넉넉하지 않다며 농지 처분을 유도하더라도 거래가 쉽게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돈이 많아서 땅을 사느냐. 그것도 아니다"라며 "농지은행의 매입 여력과 농민들의 자금 사정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씨도 "시골 사람들이 자기 땅을 사서 농사지을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외지인이 소유한 농지를 빌려 경작하는 현실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 ▲ 지인구 대월농협 조합장이 지난 1일 경기 이천시에 위치한 대월농협 사무실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경기 이천=임찬웅 기자)
    ▲ 지인구 대월농협 조합장이 지난 1일 경기 이천시에 위치한 대월농협 사무실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경기 이천=임찬웅 기자)
    ◆지역 농협도 거래·담보가치 우려 … "이용자 중심으로 바꿔야"

    지역 농협 관계자들은 임대차를 허용하는 요건과 관련 절차가 농촌의 다양한 사정을 담아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주열 대월농협 본부장은 조합원 1556명 가운데 65세 이상이 약 60~70%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책은 필요한데 방향성이 잘못됐다"며 "현실에 맞게 법을 고쳐서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인구 대월농협 조합장은 질병 등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때 농사를 맡길 수 있도록 한 요건에 대해 "아주 엄격하게 해놨다"고 밝혔다. 고령농이 힘에 부쳐 잠시 농사를 쉬고 이웃에게 맡기는 사정까지 제도가 폭넓게 수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 조합장은 "경작하는 종중 땅의 임대차 관련 절차를 알아보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토지가 세 사람의 공유지분으로 돼 있는데 명의자들이 부산과 제주 등 다른 지역에 있어 서류와 동의를 갖추는 일이 간단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농지 거래가 위축되면 농사를 그만두려는 고령농의 자산 처분이 어려워지고, 농지를 담보로 대출하는 농협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경매에서도 매수자를 찾기 어려워지면 대출금 회수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투기 목적의 농지 보유와 농촌의 관행적 임대차를 구분해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농지가격 상승을 기다리며 방치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투기를 단속하려는 것"이라며 "나이 들어 농사가 힘들어서 옆사람에 맡겨 놓는 것을 단속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21일 당정협의회를 통해 "일반적·관행적 위반에는 자진 정비 기회를 주고, 정비가 어려운 경우 농지은행 위탁 등을 통한 정상화 경로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임대차 특별 정비기간은 오는 11월 15일까지 연장하고, 처분 유예 등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특별조치법 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지 조합장은 "정책을 할 때는 농민들 의견도 물어보고 공청회도 하고, 무슨 문제가 없을까 신중하게 했어야 한다"며 "누구든지 자유롭게 농사지을 수 있게 이용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