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세 급감의 원인은《철학의 빈곤》그러다보니《요리조리 기회주의》좌-우 양쪽 모두에서《왕따》 당해
  • ▲ 우파언론을 자청했던 재래식 보수매체들은 좌파가 득세하자 재빨리《중도 / 중도보수 / 개혁보수》란《기회주의 깃발》을 들었다. 두차례 우파 대통령의 탄핵에 동조한 게 대표적 사례다. 그 결과는 좌우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이다. ⓒ 삽화 = 챗GPT
    ▲ 우파언론을 자청했던 재래식 보수매체들은 좌파가 득세하자 재빨리《중도 / 중도보수 / 개혁보수》란《기회주의 깃발》을 들었다. 두차례 우파 대통령의 탄핵에 동조한 게 대표적 사례다. 그 결과는 좌우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이다. ⓒ 삽화 = 챗GPT
    4. 기회주의 언론은 영혼 없는 인간 
      
    지난 회까지,
    ① 우리 정치사가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 이행한 과정, 
    ② 민주화가 [자유] 민주주의에서 [군중] 민주주의로 일탈한 사연, 그리고 
    ③ 그 와중에 보수 일각에 웬《중도실용주의》란 것이 일었던 것을 돌아봤습니다.  
     
    그렇다면 좌익이 득세한 시대의 언론계 동향 은 어떠했던가요? 
    노무현 시대에 류근일의 글《전함 12척은 남아 있다》가 큰 반향을 일으켰을 때였습니다(조선일보 2004/11/02). 

    어느 편집국 데스크와 사내에서 우연히 부딪혔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후배들이 그 글에 불만이 많다고.  
     

  • ▲ 2004년 11월 2일자 조선일보 지면. ⓒ 조선일보 DB
    ▲ 2004년 11월 2일자 조선일보 지면. ⓒ 조선일보 DB
    온 자유 우파 독자들이 뜨겁게 호응한 그 글을 못마땅해했다는 그 후배 세대. 
    그들은 당시로 치면 386 전후의 젊은 층이었습니다. 
    《충무공의 아직 남아 있는 전함 12척 같은 전사들은 어디 있는가?》란 절규가, 그들에겐 아마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그들의《젊은 날의 트라우마》가 어땠을지는 짐작할 만합니다. 

    그들의 시대적 환경도 꽤 당혹스러웠습니다. 
    * 국내적으로는 극좌 NL이 천하를 통일 했습니다. 
    *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1989년에 공산권이 왕창 허물어 졌습니다.  
     
    그 세대 일각은 그런 집단 체험을 뒤로 한 채 저 어렵다는《언론 고시(高試)》를 패스해 중앙 일간지 기자로 입신(立身)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엔 사내에서 항의 집회와 농성을 벌이는 등 왕년 스타일로《투쟁》했습니다. 
    그렇던 그들이 얼마 후엔 회사의 주류로 들어앉았습니다. 
    세대교체야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추세입니다.  
     
    다만 그 변동의 결과가 40년 후 오늘에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한번 따져봐야겠습니다. 
    1980년대 민주화 시기 언론계의 주류 교체와 논조 변화는 오늘의 시점에서 어떻게 정산(精算)되고 있는가?  
     
    한 마디로《사세(社勢)의 급감(急減)》그것입니다. 
    올드 미디어 시대가 뉴미디어 시대로 바뀐 탓이 물론 큽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좌경화 시대 언론의《요리조리 기회주의》가 결과적으로는 좌-우 양쪽에서 동시에 왕따당한 이중의 마이너스 효과를 낸 것. 
    이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내가 보기로는. 
     
    아무리 영합해도 좌익은 투항하는 상대방을 절대로 존중해 주지 않습니다. 
    자유-우파는 배신하는 자에게는 당연히 등을 돌립니다. 
    꿩도 먹고 알도 먹고가 아니라, 꿩도 잃고 알도 잃었습니다.  
     
    자기들은 보수의 틀 안에 따로《개혁 보수》라는 분파라도 만들려 했겠지요. 
    《보수》앞에《개혁》이라는 접두사라도 갖다 붙이면, 좌파가 혹시《오, 너희는 조금은 좌클릭했다》며, 기성 보수보다는 한결 예쁘게 봐줄 것 같기에 그랬나?  
     
    보수의 정도(正道)는 무엇이냐를 둘러싼 노선 논쟁은 정계에도 똑같이 있어 왔습니다.  
     
    국민의힘 안팎 한편에는 김무성 유승민 오세훈 이준석 한동훈 권영세 김재섭 김용태 우재준 배현진 박정훈 한지아 김형동 조경태 윤상현 같은 흐름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한편에는 이들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흐름 또한 있습니다. 
    장동혁 김민수 이진숙 김태규 김민전 박대출 조배숙 강선영 조광한 신동욱 김장겸 박충건 박민영 주현철 같은 흐름. 
     
    이런 정황을 돌아보며 내가 떠올리고 싶은 말은 성경의 한 구절입니다. 
    야당이 야성(野性)을 잃고, 언론이 요리 갔, 조리 갔다 하면, 소금이 짠맛을 잃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① 재래식 언론 은《존중받는 언론》으로서 실패했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올곧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② 그들은 언론《장사》로서도 실패했습니다.  
    ③ 연명(延命)의《기술》로서도 실패했습니다. 
    ④ 좌익은 그들을 여전히 적으로 칩니다.  
    ⑤ 자유 우파는 그들을 더는 우군으로 치지 않습니다.  
     
    ⑥ 부수(部數)와 수익에서 그들은 꽝 했습니다.  
    ⑦ 신용등급도 뚝 떨어졌습니다.  
    ⑧ 광고도 확 줄었습니다.  
    ⑨ 빚에 몰려 사옥(社屋)도 팔아치웠습니다.  
     
    ⑩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서도 자기들이 뭐 뉴욕 타임스, CNN 같은 진보적 매체? 
    진보라는 것이 아무나 어느 날 갑자기《나도 밤 나무》하면 그렇게 쉽게 되는 겁니까? 
    된다고요? 
    죽을 고비 몇 번 넘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요? 
     
    ⑪ 자기들로서는 그렇게 민첩하게 좌고우면(左顧右眄)했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할지 모릅니다. 
    나르시시즘 입니다.  

     
    ■ 시대의 본질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철학의 빈곤》
     
    이런 착시(錯視)로 인해 지난 수년 동안 한국 재래식 매체들은《한 번의 광우병》소동과《두 번의 탄핵》정변을, 여-야 정쟁의 틀에서만 봅니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한반도 전체를 무대로 한《좌파 + 중간파》의《대한민국 허물기》였다는 틀에서, 나는 그것을 바라봅니다. 
     
    대규모 군중 봉기를 이끈 지도부는 물론 좌익 운동권이었습니다. 
    그러나 겉에 드러나 보인 것은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고 선동한 촛불 연예인들, 그 앞에서 도취하고 흥분한 군중 이었습니다.  
     
    군중 가운데는 중고등학생들, 아주머니, 아저씨들, 유모차 부대, 젊은 부부들과 어린 자녀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군중을 다 좌익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좌익이 아닌데도 우~하고 쏟아져나와 열불을 내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좌익 아닌 계열들까지 모두가 다 좌익의 시나리오대로 혁명화되는 것.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때 꼭 그랬습니다. 
    대한민국 체제도 그로 인해 강도(强度) 10의 지진으로 와장창 깨졌습니다.  
     
    강남좌파 정치꾼들 - 기회주의 언론들 - 국민이란 이름의 군중 - 지식인이란 이름의《패션 진보》는, 지금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를 절대로 자성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두세 사람의 잘못한 대통령들이 밀려난 것일 뿐, 대한민국《체제》가 흔들린 건 아니라고 우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체제의 지탱력이 확 빠져버린 기진맥진 상황 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유권자의 책임》도 큽니다. 
    남 탓 아닙니다. 
    남 탓만 할 바에야 왜 민주화했습니까? 
    민주화 시대엔 뽑히는 자들뿐 아니라, 뽑는 자들의 책임도 물어야 합니다. 

    모르고 뽑았다고? 
    비싼 등록금 내고 그럼, 학교는 왜 다니고 공부는 왜 했나?  
     
    나는 2025년 6월 3일을 계기로 언론을 비롯한 모든 공생활에서 은퇴했습니다. 
    은퇴의 변(辯)으로 이런 칼럼을 내보냈습니다(뉴데일리 2025/06/04). 


  • ▲ 2025년 6월 10일자 조선일보. 6월 4일 뉴데일리에 기고한 류근일 칼럼이 조선일보 사설면 하단 광고란에 게재됐다. 언론인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마지막 글이다. ⓒ 조선일보 DB
    ▲ 2025년 6월 10일자 조선일보. 6월 4일 뉴데일리에 기고한 류근일 칼럼이 조선일보 사설면 하단 광고란에 게재됐다. 언론인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마지막 글이다. ⓒ 조선일보 DB
    《차베스-마두로 망령 출몰》
     
    2000년도 첫 4반세기가 지나고 있다. 
    이를 고비로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닥칠 것이다.  
      
    *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뗀 민주주의로    
     
    자유민주주의를 대치해《'자유'를 뗀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가 출현할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 참여 확대, 민중 주권을 빙자한 일극 체제가 폭주할 것이다. 권력 분산을 대체해 권력 집중의 시대가 엄습할 것이다. 
      
    * 자유 시장경제에서 국가 통제 경제로  
     
    다수 국민은 당장엔 퍼주기 선심 정책에 현혹될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기업이 선도하는 자유시장 경제가 위축되고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의 확대가 점증할 것이다. 
    체제 변혁에 방해가 되는 중산층을 허무는 하향 평준화가 닥칠 것이다.  
     
    * 한-미-일 협력, 지속 가능할 것인가?  
     
    북한은 핵 능력을 더 강화할 것이다. 
    대남 공작도 더 치열해질 것이다. 
    중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더 심화할 것이다. 
    한-일 협력이 쇠퇴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유권자의 51%가 한-미-일 협력에 부정적인 세력을 지지했다. 
    어쩌자는 것인가?  
     
    * 계층적, 이념적 갈등이 증폭할 것이다.  
     
    중앙정치, 지방정치, 민간 부문에서《뒤집기》가 격렬하게 일어날 것이다. 
    일부가 외쳐온《사회 대개혁=체제 변혁》폭풍이 거세게 불어닥칠 것이다. 
    각계각층에서 쫓아내기 제거의 쓰나미가 일어날 것이다.  
      
    * 공안 통치, 공포정치가 노골화할 것이다.  
     
    일원화된《공안》이 견제받지 않는 탄압의 도구로 칼춤을 출 것이다. 
    군중의《팬덤 정치》는 갈수록 더 흉포화할 것이다. 
    고학력자가 많다는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이, 본격적인 홍위병 시대가 판칠 것이다.  
      
    * 그렇다면?  
     
    2025년대 한국의 중추적 세대인 4050 등은 중고교, 대학 시절에 극렬 좌파의 세뇌, 선전, 선동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이들이 오늘의 민중민주주의 풍조를 지탱한다.  
     
    그들은 이제부터 자기들 선택의 대가(代價)를 톡톡히 치러야만 한다. 
    그리고 뼈저리게 터득해야 한다. 
    자신들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를. 
    그것을 알 만할 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 터이지만.  
     
    차베스-마두로 세태가 덮친 데는 비(非) 좌파 내부의 기회주의 족속의 역할도 컸다. 
    그들《쓸모 있는 바보》들은 국민의힘과 언론계에 특히 많다.  
     
    Bye!!

  • ▲ 2025년 6월 4일자 뉴데일리. 이재명 대통령 시대에 벌어질 일에 대해 쓴 글이다. 언론인 류근일의 마지막 칼럼이다.  ⓒ 화면 갈무리
    ▲ 2025년 6월 4일자 뉴데일리. 이재명 대통령 시대에 벌어질 일에 대해 쓴 글이다. 언론인 류근일의 마지막 칼럼이다. ⓒ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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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6/03/20250603001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