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지뢰 도발 사태, 열흘째 이어지는 李의 침묵북한 매설 지뢰에 발목 잘렸는데 "불의의 사고"21사단 위협에도 눈치만 보는 서글픈 국군의날한국인 건드리면 패가망신 보여줘야 한다더니李대통령은 왜 북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가
  • ▲ 제78주년 국군의날인 1일 계룡대 활주로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국군 장병들이 태극기와 각 군 군기를 들고 기념식에 참여하고 있다. ⓒ이길표 기자
    ▲ 제78주년 국군의날인 1일 계룡대 활주로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국군 장병들이 태극기와 각 군 군기를 들고 기념식에 참여하고 있다. ⓒ이길표 기자
    76년 전 오늘, 1950년 10월 1일. 국군 제3사단 23연대는 강원도 양양 일대에서 38선을 넘어 북진(北進)의 첫발을 내디뎠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났던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끝에, 마침내 휴전선 너머로 반격의 깃발을 들어 올린 역사적 순간이었다. 정부는 1956년 국군의날을 제정하면서 바로 이 날을 기념일로 정했다. 그렇기에 국군의날은 단순히 군의 노고를 치하하는 기념일이 아니라, 어떤 위협 앞에서도 나라를 지켜내겠다는 국가의 의지를 안팎에 천명하는 날이다. 그런데 올해 국군의날 대통령 기념사는 암울하기만 하다. 불과 열흘 전 우리 군인의 발목을 앗아간 북한에 대한 비판은 단 한마디도 담기지 않았다. 남북 간 긴장 완화와 대화 복원이라는 식상해진 문법의 되풀이였다. 정전협정을 짓밟은 당사자가 사과는커녕 우리를 조롱하고 있는데도, 국군통수권자가 꺼내 든 것은 또다시 유화(宥和)의 메시지였다. 국민과 장병들이 기념사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심리학의 오래된 실험 하나가 떠오른다. 196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피할 수 없는 전기 충격에 반복해서 노출된 개들이, 낮은 칸막이 하나만 넘으면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자로 옮겨진 뒤에도 탈출을 시도하지 않은 채 바닥에 웅크려 고통을 견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처음에는 몸부림치며 저항하지만, 그 저항이 거듭 무위로 돌아가는 경험이 쌓이면 나중에는 벗어날 힘이 있어도 체념하고 주저앉는다는 것이다. 셀리그먼은 이를 학습된 무기력(無氣力)이라 불렀다. 무기력은 능력의 결여가 아니라 반복된 좌절이 빚어낸 인식의 감옥이라는 것이 이 실험이 남긴 교훈이다. 세계 유수의 군사력을 갖춘 나라의 대통령이 북한 앞에서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감옥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기어갈 테니 대대장을 모셔라." 지난달 21일 경기 파주시 남측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 지뢰 두 발이 잇달아 폭발한 직후, 발꿈치에 중상을 입은 한 부사관이 자신을 부축하던 병사들에게 남긴 말이다. 당시 육군 25사단 직할 수색대대장이 이끄는 장병 18명은 DMZ 안에서 수색로를 개척하고 있었다. 군사분계선(MDL)에 지나치게 근접했다고 판단해 철수를 준비하던 순간, 공병 요원이 내디딘 왼발 아래에서 1차 폭발이 일어났다. 쓰러진 부하들을 본 대대장은 "괜찮아?"라고 외치며 곧장 병사들을 향해 내달렸고, 화구(火口)에 쓰러진 부상자를 끌어내던 그때 두 번째 지뢰가 터졌다. 왼쪽 발목에 치명상을 입은 대대장의 의식은 흐려져 갔다. 잡목이 빽빽하게 우거진 지형, 어디에 또 지뢰가 숨어 있을지 모르는 사지(死地)였다. 아비규환 속에서도 부사관은 전우의 어깨를 사양했다. 성치 않은 몸은 흙바닥을 기어서라도 스스로 옮길 테니, 발목이 절단된 지휘관부터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이 보디캠 영상을 지켜본 국방위원들은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이토록 처절한 참상을 빚어낸 원흉(元兇)은 다름 아닌 북한군이다.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넘어와 지뢰를 매설한 정전협정(停戰協定) 위반이자, 대한민국 영토에 대한 명백한 무력 도발이다. 물증이 명백하지만 북한은 단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는다. 김여정은 30일 담화에서 우리 군의 발표를 자작극이라며 통째로 부인했다. "총탄 한발이라도 우리 땅에 탄착될 때에는 많은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오히려 겁박하기까지 했다. 
  • ▲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장. ⓒ연합뉴스
    ▲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장. ⓒ연합뉴스
    주목되는 것은 김여정이 지뢰 사고가 발생한 서부전선이 아닌 동부전선의 육군 3군단 예하 21보병사단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며 '전술적 반격수단 증강 조치'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21사단은 양구군 일대 동부전선 최전방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은 이 지역에서 국경선 요새화 작업을 벌이며 군사분계선(MDL) 침범을 반복해 왔다. 8∼9월 두 달 동안 50여차례 MDL을 침범했고, 9월에만 30여차례 월선한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 군은 북한이 MDL을 넘을 경우 교전수칙에 따라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하고 있다. 김여정이 담화에서 21사단을 특정한 배경도 이 같은 상황과 맞닿아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군의 대응으로 북한의 국경선 요새화 작업에 차질이 빚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김여정이 전술적 반격수단으로 21사단과 마주한 북한군 부대에 직사·근거리 화력을 보강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군의날에도 대통령의 입에서는 끝내 경고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불의의 사고'라는 주어 없는 잔향 뿐이었다. 북한이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서도 이 대통령이 직접적인 비판 대신 대화 복원에 무게를 뒀으니 국민들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북측의 노골적인 위협에도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왜 침묵하느냐, 이제라도 굴종의 대북 노선을 폐기하라는 요구가 쏟아지는 이유다. 국민이 듣고 싶었던 것은 긴장 완화라는 공허한 다짐이 아니라, 반드시 도발의 책임을 묻겠다는 통수권자의 서릿발 같은 목소리였다.

    돌이켜 보면 북한을 향한 대통령의 침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고 발생 8일 만에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꺼낸 말은 북한을 향한 규탄이 아니라, 근거 없는 음모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당부였다. 화살이 겨눠야 할 과녁은 휴전선 너머에 있는데, 대통령의 시선은 엉뚱하게도 국내를 향했다. 본말전도(本末顚倒)라는 말이 이보다 들어맞는 경우를 찾기도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이 왜 이렇게 북한 앞에서 작아지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배경은 대북송금 의혹이 드리운 그림자다. 물론 이 대통령 측은 해당 의혹과의 관련성을 일관되게 부인해 왔고, 사법적 판단 역시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북한 앞에서 유독 유구무언(有口無言)인 대통령의 모습은 그 해명을 스스로 무색하게 만든다. 국군통수권자라면 안보 문제만큼은 한 점 의심도 사지 않도록 엄정한 태도를 보여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침묵과 모호함으로 일관하니, 판단의 기준이 국민의 안위가 아니라 북한 정권의 심기에 맞춰져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꼬리를 문다.

    대화·평화에 대한 집착도 짚어볼 만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가장 확실한 안보는 평화를 만드는 것이라며 "남과 북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이기는 길을 찾아내고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과도한 긴장이나 확전을 경계하는 고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도발에 눈감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 굴종(屈從)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평화는 상대의 선의에 기대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의 균형이 빚어낸 억지력(抑止力) 위에서만 지켜진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명저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 이렇게 기록했다. "강자(强者)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약자(弱者)는 그들이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The strong do what they can and the weak suffer what they must.)" 냉엄한 현실이다. 스스로 약자를 자처하는 지도자에게 적국이 예우를 베풀 리 만무하다.
  • ▲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제78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제78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수권자가 북한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우리 군은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국군의날을 앞두고 군 사기가 역대 최악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내란 재판의 여파로 간부 50여명이 징계를 받았다.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폐합을 두고는 정치보복성 조치라는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수색대대장의 발목 절단, 군 수뇌부의 늑장 대응, 책임 회피 논란까지 겹쳤다. 군을 예우의 대상이 아니라 청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 아래, 장병들의 자부심이 온전할 리 없다. 적에게는 관대하고 우리 군에는 엄혹한 비대칭이야말로, 이 정권의 안보관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를 보여준다.

    헌법 제66조 2항은 대통령에게 국가의 독립과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우고 있다. 제74조는 그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국군통수권을 부여하고 있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우리 땅에 지뢰를 묻고 장병의 발목을 앗아간 것은, 대통령이 지켜야 할 영토와 국민을 정면으로 짓밟은 행위다. 이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일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통수권자에게 주어진 헌법적 의무다. 북한이 선을 넘어도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한다면, 현장의 군인들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그 망설임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안보 구멍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망우보뢰(亡牛補牢)의 우를 범한 뒤에는 이미 늦다.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동물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겪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셀리그먼의 실험이 남긴 이 처방은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우리 장병의 발목을 앗아간 상대에게는 분명한 책임을 묻고, 뻔뻔한 억지에는 단호히 맞서는 경험이 한 번, 두 번 쌓일 때 비로소 굴종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 고식지계(姑息之計)로 당장의 소란을 덮는 데 급급해서는 결코 그 고리를 끊을 수 없다. 76년 전 오늘 38선을 넘던 국군의 기개(氣槪)가 무엇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지, 다시 새겨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제까지 북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모습으로 머물 것인지, 언제까지 침묵으로 일관할 것인지, 국민과 장병들은 오늘 이 순간에도 엄중히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