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승만의 외교독립론과 건국 전략
  • ▲ 오영택 통일한국네트워크 대표. ⓒ뉴데일리
    ▲ 오영택 통일한국네트워크 대표. ⓒ뉴데일리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언어는 사태의 본질을 규정하고 역사를 인식하는 틀로 작용한다. 잘못 명명된 언어는 실재를 왜곡하고, 왜곡된 언어는 역사적 시야를 축소시킨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그 왜곡의 중심에 자리한 단어가 바로 1946년 6월 3일의 '정읍발언'이다. 오랫동안 이 사건은 '정읍발언 = 단독정부 획책 = 분단의 원흉'이라는 악의적 프레임 속에 갇혀 있었다. 이승만이 개인의 권력욕 때문에 민족의 영구 분단을 초래했다는 주술은, '발언'이라는 가볍고 즉흥적인 뉘앙스의 어휘를 통해 굳어졌다.

    우남을 사랑하는 언론인 저자 인보길 님의 『이승만 독트린』은 바로 이 언어적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한 역작이다. 저자는 격하된 개념인 '정읍발언' 대신 '정읍선언', 더 나아가 '이승만 독트린'으로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후대에 올바른 역사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용어의 정명(正名)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지만, 그동안 역사학계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미국의 대외 정책 기조를 바꾼 '먼로 독트린'이나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한 '트루먼 독트린'처럼, 정읍선언은 세계사적 의미에서 결코 이에 뒤지지 않는다. 냉전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공산화를 막고,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의 토대를 놓은 위대한 국가생존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을 향한 비판의 상당수는 당시의 독립운동을 정서적 도덕주의나 낭만적 민족주의의 시각으로만 재단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러나 해방 이전의 독립운동은 철저히 냉혹한 국제정치적 규범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부 세력은 무장투쟁만이 절대적인 길이라며 이승만의 외교독립론을 비난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을 들여다보면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었다. 미국은 1818년 통과된 '중립법(Neutrality Act of 1818)'을 통해 자국 영토 내에서 평화 관계에 있는 국가를 상대로 군사를 모으거나 훈련하고, 무기를 활용하는 일체의 행위를 연방법 위반으로 엄단했다.

    태평양전쟁 발발 이전까지 미국과 일본은 합법적인 국교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미국 땅에서 한인들이 독자적인 무장투쟁을 꾀하거나 미국 정부가 이를 돕는 것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었다. 모병이 법적으로 가능했던 제3국들에서도 자국의 안보적 이해득실에 따라 조선인을 이용하거나 통제했을 뿐, 조금의 지원조차도 기대할 수 없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이승만의 외교독립 노선은 이러한 현실적 조건들을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였다. 연합국을 설득해 일제의 패망을 견인하고 국제사회의 정식 승인을 얻어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판단은, 당시의 국제질서와 각국의 이해관계, 그리고 우리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가장 지혜로운 방책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정읍선언이 분단을 낳았다는 주장 역시 명백한 역사적 왜곡이다. 38선은 본래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해 설정된 한시적 군사분계선에 지나지 않았다. 군사분계선 자체가 영구 분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의 사례에서도 증명된다. 군사분계선을 철의 장벽으로 변질시킨 주체는 스탈린과 소련군정이었다. 소련은 1945년 8월 진주 직후 38선을 즉각 봉쇄한 바 있다.

    결정적으로, 정읍선언이 나오기 넉 달 전인 1946년 2월, 이미 평양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사실상의 단독정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되어 있었다. 이들은 토지개혁과 산업 국유화를 단행하고 독자적인 행정망과 군대를 조직하며 국가 형태를 갖추었다. 돌아오지 못할  공산 단독정부의 강을 건넌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두고도 이승만에게 분단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당시 남한을 통치하던 미군정은 순진한 오판에 빠져 있었다. 동유럽이 좌우합작을 거쳐 차례로 공산화되는 과정을 목격했으면서도, 남한 내 확고한 반공 세력을 배제한 채 좌우합작 정부를 꾸려 소련과 타협하려 했다. 미군정은 오히려 강경한 반공·반탁 노선을 걷던 이승만을 정계에서 배제하려 들기까지 했다.

    만약 이승만이 개인의 권력욕에 눈이 멀었거나 미국에 굴종하는 인물이었다면, 점령군인 미군정의 뜻에 순응하며 안락한 타협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은 미군정의 거센 압박과 냉대를 무릅쓰고 정면으로 대립했다. 공산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있던 그에게 미군정의 미온적 노선은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의 덫에 빠뜨리는 위험천만한 길로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정읍선언의 본질은 영구 분단의 수용이 아니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북한이 이미 공산화된 현실 속에서, 남한만이라도 과도정부를 세워 체제를 정비하고, 유엔과 국제사회의 연대를 통해 38선 이북의 소련군을 철퇴시키자는 '자주적 통일 전략'이었다.

    『이승만 독트린』은 왜곡된 언어에 갇혀 있던 역사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시도다. 감상적인 관점을 걷어내고 당대의 현실과 국제정치의 냉엄한 질서 속에서 건국사를 다시 직시하게 만드는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위기 앞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철학과 선택 위에 세워졌는지를 명징하게 일깨워주는 필독서다.

    칠흑 같은 거짓의 장막을 걷어내고 역사의 진실을 길어 올려 주신 인보길 회장님의 혜안과 노고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선배 세대가 피땀으로 지켜낸 '건국의 정신'을 온전한 모습으로 후대에 계승하기 위해, 이제 우리 2030세대들이 역사의 최전선에서 당당하게 싸워나가야 한다. 이 시대의 모든 청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 ▲ 인보길 뉴데일리미디어그룹 회장이 펴낸 '이승만 독트린 - 정읍선언 대한민국의 위대한 시작'. ⓒ기파랑
    ▲ 인보길 뉴데일리미디어그룹 회장이 펴낸 '이승만 독트린 - 정읍선언 대한민국의 위대한 시작'. ⓒ기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