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 "단정적 묘사 불편"…"창작물로 봐야" 반응도SNS서도 역사·허구 경계 논쟁…언론 역할 호평도정치권·기념단체 상영 중단 요구…제작진 "왜곡 목적 아냐"
  • ▲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29일 영화 '암살자(들)' 홍보 포스터가 게시된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관객들이 무인 발권기를 이용하고 있다. ⓒ임찬웅 기자
    ▲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29일 영화 '암살자(들)' 홍보 포스터가 게시된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관객들이 무인 발권기를 이용하고 있다. ⓒ임찬웅 기자
    "진실된 저널리즘 보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소재가 실체 없는 음모론이라는 점이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만난 서울 마포구 거주 30대 A씨는 영화 '암살자(들)'을 관람한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그는 "영화가 기자들이 진실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음모론을 너무 사실인 것처럼 단정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영화관 무인 발권기 옆에는 주연 배우들의 얼굴과 '1974년 8월 15일 영부인 저격 사건'이라는 문구가 담긴 '암살자(들)' 홍보물이 걸려 있었다. 이용객들은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발권기 스크린을 누르거나 상영관 입구 주변을 오갔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다. 영화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현장에서 만난 관객들 사이에서도 비판과 옹호가 엇갈렸다. 실제 사건을 다루면서 특정 배후를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암시한다는 지적이 나온 반면, 영화를 창작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 ▲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관객들이 상영관 입구 인근을 오가고 있다. ⓒ임찬웅 기자
    ▲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관객들이 상영관 입구 인근을 오가고 있다. ⓒ임찬웅 기자
    ◆"음모론을 사실처럼 묘사" … 관람 여부에도 영향

    지난 23일 개봉한 '암살자(들)'은 육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를 좇는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허진호 감독이 연출했으며 유해진은 형사, 박해일은 신문사 사회부장, 이민호는 신입 기자 역을 맡았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암살자(들)'은 추석 연휴인 지난 24~27일 140만7000여명의 관객을 모았다. 개봉 이후 5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으나, 지난 28일에는 6만7000여명이 관람해 6만8000여명을 모은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당시 수사당국은 북한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지령을 받은 문세광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육 여사가 총탄에 맞아 숨졌다고 결론 내렸다. 영화는 총탄의 출처와 사건 배후에 의문을 제기하며 당시 정부기관 등이 사건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다룬다.

    서울 중구에서 일하는 40대 직장인 B씨는 "영화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비교적 최근의 근현대사 사건을 다루면서 배후에 정부기관이 연루됐다는 것을 너무 확정적으로 말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 왜곡 논란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궁금해 영화를 봤다는 서울 마포구 거주 50대 주부 C씨도 "음모론을 너무 단정적으로 사실처럼 말하다 보니 보기에 거북했다"며 "요즘 세대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역사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 이런 부분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논란 때문에 다른 영화를 선택했다는 시민도 있었다. 연인과 영화관을 찾은 서울 관악구 거주 30대 D씨는 "'타짜'와 '암살자(들)' 중 고민하다 '타짜'를 보기로 했다"며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고민했지만 역사 왜곡 논란이 계속되는 것을 보니 흥미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영화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보기도 전에 피곤할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서울 용산구 거주 20대 E씨는 "역사 왜곡 논란은 알고 있지만 재미있게 봤다"며 "영화는 창작물인데 사람들이나 언론에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SNS서도 "사실과 해석 구분해야" … "언론 돌아보게 한다"는 평가도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이용자들이 영화·드라마 등에 별점과 감상평을 남기는 콘텐츠 평가 플랫폼 왓챠피디아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창작의 경계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한 이용자는 "관객 입장에서는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창작자의 해석인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내용은 불확실성을 이야기하는데 태도는 감독이 어떤 확신에 차 있어보인다"는 평가도 있었다.

    반면 영화에 대한 비판이 출연 배우 등에 대한 불매 움직임으로 번지는 데 반발한 이용자는 "생산적인 비판이 없으니 건설적인 담론은 움틀 수조차 없는 현실이 늘 개탄스럽다"고 썼다. 작품의 지향점이 모호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작금에도 언론은 투명한가'라는 질문을 되새기게 한다"는 감상평도 나왔다.

    유튜브에서는 북한 선전 영화와 유사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탈북자 출신 유튜버 한송이씨는 북한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육 여사 피격 사건을 박정희 정권의 자작극으로 묘사했다며 '암살자(들)'이 자신이 북한에서 본 영화와 흡사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한씨는 배우들의 연기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렇게 역사 왜곡을 한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퇴출이 답"이라고 주장했다.
  • ▲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 영화 포스터가 송출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 영화 포스터가 송출되고 있다. ⓒ서성진 기자
    ◆불매 제안·상영 중단 요구 … 제작진 "창작의 산물로 봐달라"

    정치권과 관련 단체의 대응도 이어지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영화 불매 운동을 제안했다. 같은 날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도 역사적 비극을 왜곡했다며 제작사의 공식 사과와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제작진은 같은 날 입장문에서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의 사실을 부정·왜곡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가 아니다"라며 "작품을 창작의 산물로만 바라봐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전날에는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이 감독·작가·제작자 등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가 박 전 대통령을 사건 배후에 있거나 범행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인식하게 한다며 사자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인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지난해 영화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이 국감 참고인으로 출석한 사례를 들며 허 감독 등에 대한 현안질의 또는 국감 출석 필요성을 제기했다.

    재단법인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도 같은 날 제작사와 출연진에 공식 사과와 즉각적인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기념사업회는 수사·재판 기록에 문세광의 범행 과정이 드러나 있다며 "국가적 비극을 흥행과 오락 소재로 삼아 국론 분열을 초래하는 행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영화관에서 만난 A씨는 창작물로 봐달라는 제작진의 해명에 대해 "아직 사건 관계자들이 생존해 있고 비교적 최근의 근현대사를 다루면서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조합해 놓고 단순한 창작물로 봐달라는 것은 무책임한 해명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