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실용주의는 트로이 목마비(非)좌파 중도호소인들의 탄핵 가담그들의 기회주의가 빚어낸 비극
  • ▲ 《민주화 후의 민주주의》가 극좌 민족-민주투사 들의 타락으로 엉망이 됐다. 이후 대한민국 망국사 체제전쟁 교향곡이 시작됐다. 1악장은《광우병》2~3악장은《박근혜 탄핵》《윤석열 탄핵》이었다. 1악장은 웃픈 코메디. 2, 3악장은 음산한 비극. 그렇다면 피날레 4악장은?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처럼 《희망과 환희》가 울려퍼질 수 있을까? ⓒ 삽화 = 챗GPT
    ▲ 《민주화 후의 민주주의》가 극좌 민족-민주투사 들의 타락으로 엉망이 됐다. 이후 대한민국 망국사 체제전쟁 교향곡이 시작됐다. 1악장은《광우병》2~3악장은《박근혜 탄핵》《윤석열 탄핵》이었다. 1악장은 웃픈 코메디. 2, 3악장은 음산한 비극. 그렇다면 피날레 4악장은? 베토벤 교향곡 9번《합창》처럼 《희망과 환희》가 울려퍼질 수 있을까? ⓒ 삽화 = 챗GPT
    3. 대한민국 망국사 / 광우병과 두 차례 탄핵 
     
    1950년의 6.25 남침 전쟁 은 김일성 을 앞세운 국제 공산주의 세력의 정규전 도발 이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한국 운동권의《진지전(陣地戰)》은 그와는 달랐습니다. 
    대한민국이란 둥지를 밖에서 덮치기보다는, 안에서 야금야금 먹어가는 방식 이었습니다. 
     
    그들의 꼼수는 적중했습니다. 
    그들은 갈등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가서 붙었습니다. 
    자신들의 극좌 정체성 을 숨기고 물-불-기름을 들어부어 작은 갈등을 큰 충돌로 키웠습니다. 
    가짜 뉴스, 선동-선전, 공교육 장악. 
    문화예술계-종교계 공작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소위《진보사상》은 일부 세력만의 당파적 문화를 넘어, 지성계 보편의 준거(準據)인 양 행세 했습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당연한 ABC》인 것처럼. 세상은 어느 틈에 그들《신-구 좌파》의 독무대가 됐습니다.  
     
    《신-구 좌파》아닌 자들까지《나도 조금은 진보다》로 처신하는《패션 좌파》도 생겼습니다. 
    이런《그들의 사는 법》이 정계-언론계에 파급했습니다. 
    《기회주의 비(非) 좌파》의 대두 였습니다.  
     
    1987년 민주화~2000년대 한국에는 이래서 
    (A) 운동권 권력 카르텔
    (B) 중도 호소인 증후군
    (C) 전투적 자유 우파의 3개 흐름이 생겼습니다. 
    (A)와 (C)는 원래부터 있던 것입니다. 

    문제는 (B)의 출현이었습니다. 
    이명박 시대 때였습니다.  

     
    ■ 중도실용주의란 트로이의 목마(木馬)
     
    보수 일각에《이념 논쟁이 밥 먹여주느냐?》란 시비가 갑자기 일었습니다. 
    우파적 입장에서 좌파적 독단(獨斷)을 공격한 것이었다면, 그건 반길 만한 일이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비(非) 좌파 안의 자칭《개혁 보수》《중도 보수》란 측이《전투적 보수》를 밀쳐내기 위해 자기들은 《구닥다리 보수》와 다른《혁신 보수》임을 내건 판촉(販促) 광고 였습니다.  
      
    ※ 이념 논쟁을 하지 말자고? 
    ※ 지금 세상에 공산당이 어디 있다고 이념 논쟁이냐고? 
    ※ 소련-동유럽이 망하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 마당에 좌익이 무슨 힘 있다고 이념 논쟁이냐고? 
    ※ 철학이 무슨 소용 있느냐고? 

    이야말로《철학의 빈곤》따위입니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에드먼드 버크, 마이클 오크숏,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로저 스크루턴, 밀튼 프리드먼 같은 쟁쟁한 자유사상가들은 다 뭡니까?  
     
    이렇게 해서 번진 패션이《강남좌파》입니다. 
    《중도실용주의》가 그들의 급조어(急造語)였습니다.  
     
    그들의《중도》란?
    좌-우의 치열한 대치에서 빠지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의《실용》은? 
    종교적 원리주의자가 아닌 다음에는 누구나 다《실용적》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일부는 왜, 무엇 때문에, 무슨 필요에서《중도실용주의》라는 신조어(新造語)를 만들어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극좌 운동권이《당대의 호랑이》임을 알아보고 꼬랑지를 사타구니에 처박은 것 이었습니다. 

    그들의《중도실용주의》는 두 개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 기성 우파를 향한 메시지 : 

    《너희는 케케묵은 늙은 극우다. 
    너희들의 낡은 이념은 사라져 줘. 
    우리에게 범우파 주도권을 넘겨줘.》
     
    * 좌파를 향한 메시지 : 

    《우리는 우파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중도다. 
    극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우리를 적으로 보지 말고 봐달라. 
    나도 왕년엔 학생운동 하지 않았나?》

     
  • ▲ 2008년 광우병 광란은《광우뻥》으로 끝났다.《뇌 송송 구멍 탁》은 어디로 갔는가? 수입 소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고 한 연예인. 그는  그 이후 햄버거엔 과연 손도 안댔을까? ⓒ 뉴시스
    ▲ 2008년 광우병 광란은《광우뻥》으로 끝났다.《뇌 송송 구멍 탁》은 어디로 갔는가? 수입 소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고 한 연예인. 그는 그 이후 햄버거엔 과연 손도 안댔을까? ⓒ 뉴시스
    ■ 광우병 소동, 체제 전쟁의 제1악장
     
    그러나 좌익은 이명박 정권의 투항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죽이려고 들었습니다. 
    《광우병 소동》이었습니다. 
     
    소 한 마리가 비실비실하다가 퍽하고 쓰러지는 장면이 방영됐습니다. 
    전 인류가 먹는 쇠고기인데, 그걸 먹으면 저렇게 죽는다? 

    대중이 미친 듯 흥분했습니다. 
    광우병, 광우병, 하고 석 달 열흘을 광란한 끝에 어떻게 됐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두 손 번쩍 들었습니다. 
    아침이슬 이 됐습니다. 


  • ▲ 이제 한국에서 촛불은 더 이상 항의, 추모, 기원 등의 의미가 아니다. 난동, 광란, 선전-선동, 홍위병, 중우의 상징일 뿐이다. 박근혜(오른쪽)-윤석열 탄핵을 부르짖는 균중들이 촛불을 들고 도심을 가득 메우고 있다. ⓒ 정상윤 기자
    ▲ 이제 한국에서 촛불은 더 이상 항의, 추모, 기원 등의 의미가 아니다. 난동, 광란, 선전-선동, 홍위병, 중우의 상징일 뿐이다. 박근혜(오른쪽)-윤석열 탄핵을 부르짖는 균중들이 촛불을 들고 도심을 가득 메우고 있다. ⓒ 정상윤 기자
    ■ 두 차례 탄핵, 체제 전쟁의 제2-제3악장
     
    그 후에도 한국 비(非) 좌파 가운데 일부 정파와 언론 은 《중도, 중간》어쩌고 떠들며 계속 좌클릭을 했습니다. 
    이들은《보수 개혁》운운하며 박근혜 탄핵 과 윤석열 탄핵 의 선봉에 섰습니다. 
    두 대통령 탄핵은 이처럼 좌파가 한 짓이기 전에, 저들 비(非) 좌파 안의《중도 호소인》들이 한 짓 이었습니다.  
      
    나는 2025년 전후에 조선일보 사설란 하단 광고면에 1주 1회 뉴데일리 칼럼을 전재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2023년 11월 1일자)에 이렇게 썼습니다.  


  • ▲ 2023년 11월 1일자 조선일보 사설먄 하단 광고란에 실린 류근일 뉴데일리 칼럼. ⓒ 화면 갈무리
    ▲ 2023년 11월 1일자 조선일보 사설먄 하단 광고란에 실린 류근일 뉴데일리 칼럼. ⓒ 화면 갈무리
    탄핵 정변이 또 무르익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왕따시키고 끌어내리려 한다.
    2016~2017년에도《좌익+기회주의자》들이 야합해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좌익이 그러는 것은《당연》하다. 
    그게 그들의《사는 이유》니까.  
     
    그러나 비(非) 좌익 일부는 왜 자꾸 우파 대통령들을 내쫓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자기들 가두리 양식장에 들어가 주질 않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나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그들이 언론의 비판 기능을 넘어 광장의 홍위병과 한통속이 돼 탄핵 정변에 앞장선 것은, 웃겨도 보통 웃긴 짓이 아니었다. 
    《기득권 본령(本領)》이 극좌 문화혁명에 앞장선 꼴이 됐으니.  
     
    자신의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하는 비(非) 좌파라면, 설령 박근혜-이명박-윤석열 등 우파 대통령들이 싫더라도 극좌 혁명 꾼들에겐 이용당하지 말아야 했다. 
    러시아-중국 혁명 때 비(非) 좌파 일부는 이 필요를 깨닫지 못한 채 공산당에 실컷 이용만 당하고 폐기당했다.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그 역사의 교훈에 투철했기에 《남한만이라도》지켜낼 수 있었다. 
    아슬아슬한 것은 오늘의 한국 비(非) 좌파 일부가 이 역사적 교훈을 또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좌익 혁명은 좌익 혼자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비(非) 좌파 일부가 광장에 나가 촛불 머릿수를 보태야만 혁명은 성공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일부 비(非) 좌파 미디어들이 선동에 앞장섰다. 
    많은 비(非) 좌파 시민과 대중이 이 선동에 넘어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중략)
     
    2023년 11월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이 질문에 비(非) 좌파 국민-시민-대중-미디어는 역사 앞에 분명히 고백해야 한다. 

    어느 편에 설 건가? 
    자유냐, 전체주의냐? 
    자유대한민국이냐,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이냐?  (중략)
     

  • ▲ 2022년 11월 3일 뉴데일리에 기고한 류근일 칼럼. ⓒ 화면 갈무리
    ▲ 2022년 11월 3일 뉴데일리에 기고한 류근일 칼럼. ⓒ 화면 갈무리
    이게 체제 전쟁인 줄을 모르면, 자유대한민국은 이걸로 끝이다.

    다음은 2022년 11월 3일 뉴데일리에 기고한 칼럼《"11월5일의 촛불, 저들의 네번째 봉기인가?"》의 일부다.

    (중략) 지금 정계에선 이태원 사태의 책임소재를 두고 누구 탓, 누구 탓, 하는 공방이 세게 일고 있다. 
    사고의 책임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돌리려는 운동권의 작위적인 꼼수 탓이다.  
     
    그러나 책임 논쟁이야 여하튼, 이 싸움은 역사적으로는 자유 진영이 전체주의 일당 독재 세력과 벌리는 절체절명의 체제 전쟁이다.   
    자유 진영은 광우병·촛불에 이은 이번 싸움에서 기필코 이겨야 한다. 
    지면 영영 끝이다. 
    어떻게 이길 것인가?  
     
    이 싸움은 단순한 여-야 정쟁이 아니라 타협할 수 없는 내전이라는 것, 자유 체제냐 전체주의 체제냐의 근본적인 철학의 대결이라는 것, 이 기본부터 투철하게 인식하고 임해야 한다.  
     
    자유 대한민국 진영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10위권의 빛나는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그런데도 걸핏하면 극좌 운동 꾼에게 휘둘리고 당하곤 한다. 
    왜? 
    자유 진영은 철학적 인식이 약하기 때문이다.  (중략)
     
    이태원 싸움을 앞둔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 수호 세력은, 두 번 다신 정신적 척추를 빼버린 파충류처럼 되어선 안 된다.  
    자유 진영의 정신적 척추는 당연히 정통 자유 사상(esprit fort), 자유 정신(free sprit), 철학적 자유주의(philosophical liberalism)여야 한다. 
     
    일부 국민의 힘 정치인들과 비(非) 좌파 언론은, 전체주의 운동권에 강하게 저항하는 것을 불문곡직《극우》로 몰아친다. 
    자기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싸울 능력도 없고 용의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극좌에 주눅이 들어있다. 
    그들에게 반대하기가 겁나고, 운동 꾼의 혁혁한(?) 운동 경력에 열등감을 느낀다.  (중략)
     
    이들《어중간》들이 오늘의 각계각층 화이트칼라 중진들이다. 
    이들의 생각은 극좌까진 아니고 못되지만, 곧 죽어도 보수·우파로 불리긴 원치 않는다. 
    이들은 강성 보수·우파는 더더군다나 싫다. 
    그런 우파를《극우》《틀딱》《꼰대》로 몰아치고, 자신들은 그 어떤 종류인가의《진보적 취향》임을 과시한다.  (중략)
     
    그들은 촛불 정변 때도 탄핵에 앞장섰었다. 
    비(非) 좌파라면서도 극좌의 집권을 도운 셈이다. 
    전투적 자유 레지스탕스 노선이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중략)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 진영에 요구되는 자유 정신은  2차대전 기간 유럽의 반(反)나치 레지스탕스 같은 스펙트럼을 의미했으면 한다.  
    그 자유 정신으로 국민의 힘 다수와 비(非) 좌파 언론의 기회주의 노선을 압도적인 이론 투쟁으로 누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저들 극좌 전체주의 일당 독재 세력은, 11월 5일 다시 촛불을 든다.
    《추모제》라 한다. 
    자유인들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향불을 피우자. 
    그러나《추모》를 빙자한 불순한 전복(顚覆) 음모엔 단호히 반대한다.  
     
    자유인들은 일어나자, 나가자, 싸우자. 
    강력한 레지스탕스 대열을 편성해 제2의 촛불을 분쇄하자. 
    너와 나의 손에 남은 마지막 따듯한 땀방울이 식을 때까지.  
     
    한번 지는 싸움은 마지막 지는 싸움, 대한민국이냐 죽음이냐! 
    우리 승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