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내내 DMZ 폭발 증거 유실 우려굼뜨는 軍, 11년 전과 너무 다른 늑장 조사골든타임 놓치고 일주일 만에 北 지뢰 지목"북한에 약점 잡힌 것 아니냐" 불신(不信) 자초포로 송환, 국민에게 설명할 기회조차 걷어차이 와중에 평화 타령? 점점 쌓여가는 의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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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과 유엔군사령부가 서부전선에서 발생한 지뢰 추정 폭발 사고 현장조사를 위해 26일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조사 활동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국시대 말, 진나라 재상 여불위가 엮은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종을 훔치려던 한 사내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종이 너무 커 등에 질 수 없자 망치로 깨뜨려 옮기려 했는데, 요란한 소리가 울리자 남이 들을까 두려워 황급히 제 귀부터 틀어 막았다는 내용이다. 훗날 종이 방울로 바뀌면서 굳어진 말이 엄이도령(掩耳盜鈴)이다. 소리는 온 동네에 퍼지는데 정작 귀를 막은 당사자만 그것을 듣지 못한다.숨긴다고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모두가 알고 있는 진리를 외면하는 어리석음을 이만큼 적확하게 꼬집은 우화도 흔치 않다.최근 일주일 남짓 이재명 정부가 보여준 대북(對北) 대응을 지켜보면 이 해묵은 고사가 눈앞에 겹쳐진다. 우리 군인의 발목이 절단된 지뢰 폭발 앞에서는 조사를 미적거렸고, 북한군 포로 송환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사이 정부와 여당은 '평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북한에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구심이 더는 한낱 기우(杞憂)로 치부되지 않는 까닭이다.사건의 발단은 지난 21일이었다. 경기 파주 인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안에서 북한 지뢰로 추정되는 폭발이 일어나 수색로를 개척하던 우리 군인 3명이 피를 흘렸다. 심각한 사안이었지만 현장 조사는 사고 발생한지 한참 뒤인 6일 만에 이뤄졌다. 유엔군사령부가 사고 당일부터 신속한 조사를 제안했는데도 오히려 우리 군(軍)이 안전을 이유로 이를 늦췄다고 한다. 반면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때는 사고 당일 현장에서 파편을 수거했고 이틀 뒤 합동 조사에 착수했다. 11년 전의 기민함과 견주면 이번 대응이 얼마나 굼떴는지 굳이 부연할 필요조차 없다. 현장에 있던 장병들은 폭발 사고 직후부터 "북한군 목함지뢰를 목격했다"는 취지로 진술해왔다.물론 DMZ는 미확인 지뢰가 곳곳에 묻힌 위험지대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신중을 기했다는 설명에도 일리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신중함이 곧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유엔사가 사고 당일 조사를 제안했다는 것은 현장 접근이 불가능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11년 전 비슷한 여건에서 당일 수습이 이뤄졌다는 점까지 떠올리면 군의 해명은 더욱 궁색해진다.게다가 어렵사리 이뤄진 조사에서도 군은 사고 지점조차 명확히 특정하지 못했고, 부상 장병 수까지 축소해 발표하는 등 부실한 브리핑으로 의구심을 되레 키웠다. 추석 연휴 내내 현장 훼손과 증거 유실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야권에선 비판이 쏟아졌다. "우리 군인의 발목이 잘렸는데도 제대로 된 대응은커녕 조사마저 추석 이후로 미루는 것이냐." "북한 김정은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가 늑장 대응을 하고 있다."여론이 들끓자 28일 합동참모본부는 DMZ 지뢰 폭발 사건과 관련해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건 발생 7일 만에 군 당국이 아군 지뢰는 확실히 아니라고 밝힌 것이다. 다음날인 3일차 현장조사에서는 북한의 수지(플라스틱) 반보병지뢰 1발도 발견됐다. 군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있다. 대응이 너무 늦다. 유엔사의 제안대로 진작 사건을 조사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논란이다. 우리 장병이 다친 현장조차 제때 들여다보지 못하는 군에 국민이 어떤 신뢰를 보낼 수 있겠는가. -
- ▲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공개한 북한군 포로 2명의 모습. ⓒ뉴시스·연합뉴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됐던 북한군 포로 2명이 최근 한국으로 송환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사자의 자유의사와 인도주의 원칙에 따른 조치였다면 이는 숨길 일이 아니라 떳떳해야 할 일이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택한 이들을 품는 것은 대한민국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道理)다. 그러나 국민은 이 소식을 정부가 아닌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먼저 접해야 했다. 국정 현안마다 쉴 새 없이 소셜미디어(SNS)에 입장을 올리던 대통령의 계정도 유독 이 사안 앞에서만은 이상하리만치 잠잠했다. 북한이 얽힌 사안에서만 입을 닫는 정부의 태도가, 대한민국 국민보다 김정은 정권의 심기를 먼저 헤아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들였다.뒤이은 대응은 한술 더 떴다. 우크라이나 측이 비공개 합의는 없었다고 부인하자, 청와대는 이례적일 만큼 강경한 반박에 나섰다. 우크라이나가 자국 내 포로 교환 여론을 의식해 먼저 보안 유지를 요청했다면서, 사실상 허위 공보에 가깝다는 취지로 유감 표명까지 요구했다. 청와대는 억울한 측면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외교(外交)의 요체는 시시비비를 가려 체면을 세우는 데 있지 않다. 포로 송환이라는 성과 하나는 챙겼을지언정 국민에게 제때 설명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고, 우방국과의 진실 공방이라는 긁어 부스럼을 남겼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이재명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평화공존 방향을 담은 청사진을 제시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8일 "남북·평화체제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겠다"고 했다.평화(平和)는 누구도 마다할 수 없는 가치다. 그러나 말로만 외친 평화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지 역사는 거듭 증명해 왔다.1938년 9월 뮌헨 회담에서 히틀러에게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내주고 돌아온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우리 시대의 평화를 확보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휩싸였다. 윈스턴 처칠은 뮌헨 협정 직후 하원 연설에서 영국이 전면적이고 완전한 패배를 당했다고 일갈하며 이는 앞으로 치러야 할 대가의 시작이자 쓰디쓴 잔의 첫 모금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냉전 종식의 길을 연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힘에 의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외교·안보의 제1원칙으로 삼은 것도 같은 이치다. 평화는 단호함과 철저한 대비 위에서만 지켜진다는 것이다. 우리 군인이 흘린 피 앞에서 머뭇거리면서 외치는 평화는 굴종(屈從)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공자는 제자 자공이 정치를 묻자 넉넉한 식량, 충분한 군비, 백성의 믿음을 요건으로 꼽았다.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군비를 먼저, 식량을 그다음으로 버리되, 믿음만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했다.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안보 역시 다르지 않다. 아무리 첨단 무기를 갖췄다 한들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면 그 무기는 제 구실을 하기 어렵다. 조사를 미루고, 송환을 숨기고, 그 틈틈이 평화라는 말만 되뇐다고 국민의 불안이 가라앉을 리 없다. 쉬쉬할수록 의구심은 자라고, 의구심이 쌓이면 불신이 된다. 그 불신은 이미 임계점에 다다랐다. 이 모든 불안은 북한이 아니라 정부가 제 손으로 불러들인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제 귀를 막는다고 방울 소리가 멎지는 않는다. 하물며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일은 무엇을 감출지 궁리하는 데서가 아니라 무엇을 떳떳이 밝힐지 고민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도대체 누구의 눈치를 보며, 누구를 위해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면, 방울 소리는 국민의 귀에 날이 갈수록 더 크고 또렷하게 울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