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 왜곡史' 바로잡는 평전 발간 화제이동욱 전 기자의 치열한 진실추적기 담아친일·고문·공안조작 등 기존 의혹 정면 검증'9가지 연구방법론'으로 일그러진 역사 재해석
  • 한 사람의 이름에 붙은 '평가'를 걷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특히 그 인물이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방첩과 숙군(肅軍), 6·25전쟁, 군 내부 권력투쟁과 암살이라는 격동의 한가운데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

    초대 특무부대장 김창룡(1916~1956)을 둘러싼 평가가 지금까지도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다. 한쪽에서는 그를 신생 대한민국의 방첩(防諜) 체계를 구축한 인물로 바라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승만 정권의 정보기관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한다. 여기에 친일 행적, 고문, 공안사건 조작, 권력지향성 등 여러 의혹이 겹치면서 김창룡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한국 현대사의 가장 민감한 논쟁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었다.

    이 논쟁에 다시 메스를 들이댄 책이 나왔다.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가 쓴 '김창룡 평전: 추운 나라로 간 스파이(도서출판 북앤피플 刊)'다. 지난달 30일 출간된 이 책은 772쪽에 걸쳐 김창룡의 생애와 만주·관동군 시절, 해방 이후의 활동, 숙군 과정, 1956년 암살 사건과 그 이후 형성된 역사적 평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이 일반적인 인물 평전과 다른 지점은 '김창룡은 어떤 사람이었는가'라는 질문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는 데 있다. 저자는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김창룡은 어떤 기록과 증언을 통해 만들어졌는가'를 되묻는다.

    ◆ 70년의 시간차를 두고 다시 만난 '김창룡'

    저자가 김창룡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파고든 핵심적인 단서는 2022년 공개·간행된 김창룡의 비망록 '숙명의 하이라루'다.

    저자는 이 원고가 통상적인 의미의 자서전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적인 삶에 대한 기록보다 방첩 전문가로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원고의 성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김창룡의 구술을 받아 적은 원고가 아니라, 김창룡이 직접 작성한 친필 원고일 가능성을 논증했다.

    '김창룡 원고의 진실'이라는 별도 섹션에는 저자가 '숙명의 하이라루'의 공개와 유통 경로, 수기와 일지·회고록·실록의 차이를 낱낱이 분석한 내용이 나온다.

    이러한 접근법은 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특정 기록을 그대로 인용해 결론을 내리는 대신, 기록이 언제 만들어졌고 어떤 형태로 남았으며 후대에 어떻게 해석됐는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이 책 말미에는 '김창룡 왜곡의 봉우리들'이라는 부록이 담겨 있다. 2년제 농잠학교 졸업설, 영흥 가타쿠라 제사공장 취업설, 일본인에게 잘 보여 만주로 진출했다는 주장, 관동군 헌병보조원 경력, 독립군 체포·고문설, 권력지향적 인물론, 파벌 조성론, 공안사건 조작론, 숙군 부작용 책임설, 부정축재설 등이 검증 대상으로 올라 있다.

    ◆ '스파이 잡는 스파이'였나 … 만주에서 시작된 방첩의 흔적

    책 제목에 담긴 '추운 나라'는 김창룡의 만주 시절을 가리킨다.

    저자는 김창룡의 관동군 헌병대 활동을 '방첩'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했다. '최대 규모의 관동헌병대 방첩활동', '관동헌병대의 과학적 방첩 수사', '스파이 잡는 스파이', '첩보헌병 쿠도 유타카의 경우' 등을 항목별로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주장은 기존에 알려진 김창룡의 경력과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 정부의 비밀문서인 '유수명부'를 통해 김창룡이 단순한 말단 헌병 출신이라는 기존 인식과 달리, 북만주 중·소 국경지대에서 '정보 활동'을 수행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또 당시 영흥 지역의 자료를 대조해 기존 전기에서 반복돼 온 '가타쿠라 제사공장 취업설'과 농잠학교 졸업설을 재검토하고, 육사 3기 졸업생 가운데 김창룡의 서열과 관련한 자력표 원본도 추적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가 시도한 것은 김창룡의 경력을 미화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록 사이에서 무엇이 확인되고 무엇이 확인되지 않는지를 다시 가려내는 작업이었다.

    ◆ 숙군과 6·25 … 이 책이 다시 던지는 질문

    김창룡을 둘러싼 평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은 해방 이후 군 내부의 좌익 세력을 대상으로 진행된 '숙군'이다.

    이 책은 김창룡과 이승만의 관계, 당시 군 내부의 좌우 대립, 숙군 과정에서 김창룡이 수행한 역할을 주요하게 다뤘다. 저자가 제시하는 핵심 논지는 숙군을 통해 신생 국군 내부의 방첩 체계가 만들어졌고, 이것이 이후 6·25전쟁에서 군 조직의 붕괴를 막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6·25전쟁 기간 단위 부대급 집단 투항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요한 논거로 제시했다.

    이 대목은 김창룡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핵심적인 역사적 쟁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숙군의 의미와 김창룡의 역할에 대한 해석 역시 저자의 역사적 관점과 논증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창룡은 권력에 충성한 정보기관의 책임자였던 것인가. 아니면 당시 대한민국이 처한 안보 위기 속에서 방첩과 숙군을 자신의 임무로 받아들였던 군인이었는가.

    저자는 어느 한 문장으로 결론을 대신하기보다, 그 답을 찾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한데 모으는 방식을 택했다.

    ◆ 1956년 암살 … 그리고 사후에 만들어진 김창룡

    김창룡의 역사적 이미지가 크게 달라진 계기로 저자가 주목한 사건은 1956년 일어난 '암살'이다.

    김창룡은 그해 출근길에 허태영에 의해 암살됐다. 이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관련자들의 진술과 주장이 등장했고, 그 가운데 암살범 허태영이 옥중에서 작성한 '김창룡 준장 저격사건 동기서'가 후일 김창룡에 대한 세간의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이 문서에 담긴 허태영의 일방 주장이, 이후 김창룡을 둘러싼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되는 단초가 됐다고 봤다. 여기에 4·19 이후 이승만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크게 바뀌는 과정과 맞물리면서 김창룡에 대한 인식 역시 재편됐다는 것이다.

    책은 이 과정을 '암살 당시의 김창룡'과 '후대에 기억된 김창룡' 사이의 간극이라는 관점에서 추적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누가 옳았는지를 먼저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사건이 어떤 기록으로 남았고, 그 기록이 어떤 시대적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면서 하나의 역사적 이미지로 굳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책의 에필로그 제목도 이를 압축한다. 저자는 '허태영의 정치적 병풍 작전과 현대사의 착시'라는 제목 아래, 암살 사건과 이후의 역사적 인식 사이의 관계를 재조명했다.

    ◆ '9가지 연구방법론'으로 기록의 틈을 파고들다

    저자가 이번 평전에서 가장 공을 들였다고 강조하는 부분은 연구 방법론이다.

    김창룡의 생애를 살피기 위해 '9가지 방법론을 총동원했다는 저자는 일본 정부 비밀문서와 국내 자료를 대조하고, 인물의 경력에 관한 기존 기록을 지방사 자료와 비교하는 한편, 군 관련 문서와 자력표 등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방식으로 팩트 체크에 나섰다.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난 저자는 서강대 물리학과에서 공부한 뒤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육군에서 7년간 복무하고 중사로 예편했으며, 이후 '월간조선' 기자로 현장 취재와 사료 추적을 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 전문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현대사 관련 기록을 추적하고 있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수중 현장 취재를 했던 경험도 책의 저자 소개에서 강조된다. 이번에는 물속이 아닌 70년 전 현대사의 기록 속으로 들어가 자료를 건져 올렸다는 설명이다.

    한 인물의 생애를 복원하는 동시에, 그 인물에 관한 역사적 서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하는 데 저자의 남다른 경력이 뒷받침됐음은 물론이다.

    ◆ '악마'와 '영웅' 사이, 독자가 다시 읽어야 할 이름


    김창룡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책을 추천한 손병두 대한민국역사와미래재단 이사장은 김창룡을 기존의 '악마' 이미지에서 인간으로 복원해낸 책이라고 평가했고, 이주영 건국대학교 명예교수는 이승만과 김창룡을 해방 이후 혼란기에 청렴성과 책임감을 보여준 인물로 평가했다. 

    '김창룡 평전: 추운 나라로 간 스파이'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김창룡을 긍정적으로 볼 것이냐, 부정적으로 볼 것이냐에 머물지 않는다.

    핵심은 기록이다.

    한 인물의 행적을 둘러싸고 상반된 증언이 존재한다면 어느 기록이 먼저 만들어졌는지, 원자료는 무엇인지, 후대의 해석이 원자료를 어떻게 바꿨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772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은 바로 그 지난했던 과정을 보여준다. 만주와 관동군, 해방과 건국, 숙군과 6·25전쟁, 방첩과 암살이라는 굵직한 현대사의 장면들을 김창룡이라는 한 인물의 궤적을 따라 다시 연결한다. 책에는 연보와 미주, 참고문헌, 색인도 함께 수록됐다.

    '김창룡 평전: 추운 나라로 간 스파이'는 한 인물의 명예를 되돌리는 책이라는 저자의 문제의식과 함께, 오랫동안 굳어진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재검증해 보자는 취지로 읽힌다.

    김창룡을 '권력의 주구'로 볼 것인지, 대한민국을 지킨 '방첩장교'로 새롭게 평가할 것인지는 결국 책이 제시한 사료와 논증을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렸다.

    분명한 것은 1956년 생을 마친 한 군인을 둘러싼 역사적 논쟁이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로지 팩트 앞에서 피해자를 피해자의 자리에, 가해자를 가해자의 자리에 돌려놓는 것. 그것이 인권의 시작"이라는 저자의 말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

    [사진 제공 = 북앤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