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3년2개월 만에 인상, 한은도 두 달 연속 긴축가계빚 2019조·빚투 32조 … 고금리 충격 본격화재정은 풀고 대출은 조이고, 엇갈린 정책의 청구서대책은 바꿔도 원리금은 그대로 … 영끌족의 각자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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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끌'은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이다. 월급과 예금에 부모 돈, 은행 빚까지 보태 집을 산 2030의 현실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끌은 탐욕의 다른 이름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집값이 떨어지면 무리하게 산 사람 탓이고 금리가 오르면 빚을 많이 낸 사람이 감당할 몫이라는 시선도 따라붙었다.

    빚은 빌린 사람이 갚는 게 맞다. 하지만 이들이 어쩌다 영혼까지 끌어모으게 됐는지는 다른 문제다. 집값이 뛰자 금융당국은 대출을 조였고 규제가 예고될 때마다 은행 창구에는 막차 수요가 몰렸다. 증시가 달아오르면서 신용대출을 투자금으로 쓰는 '빚투'도 불어났다. 금융권에서 익숙해진 '대출 오픈런'이라는 말은 '지금 아니면 못 빌린다'는 불안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정부 정책은 그 사이 엇박자를 냈다. 경기와 민생을 이유로 재정을 확대하면서 금융권에는 가계대출 총량을 죄라고 주문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7월 미래대응기금을 두고 "아주 의미 있는 규모의 돈이 모일 것"이라며 적극적인 재정 역할을 강조했다. AI 전환 과정에서도 생계비 지원 등 재정지출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정부가 재정의 역할을 넓히는 사이 가계에는 빚을 줄이라는 신호가 동시에 전달된 셈이다.

    대출 정책은 몇 달 사이 방향을 다시 틀었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를 잡겠다며 올해 증가율 목표를 1.5%로 묶었다가 지난달 3.0%로 두 배 높였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총량 목표 조정을 두고 "실수요를 위한 것"이라며 투기를 자극하는 신호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불과 7월에도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6조 2000억원 늘어 과거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대출은 조여야 하지만 필요한 사람에게는 더 내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당국이 그 미세한 경계를 관리하겠다고 하지만 은행 창구에서 실수요와 투기를 완벽하게 가르는 일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증시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났다. 지난 5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하루 수익률을 두 배로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ETN이 등장했다. 금융당국은 고위험 상품임을 경고했지만 거래가 과열된 뒤 기본예탁금을 높이고 모의거래를 의무화하는 안전장치를 추가했다. 상품을 열어준 지 불과 몇 달 만에 규제 수위를 다시 높인 것이다. 위험은 사전에 알려졌지만 브레이크는 투자자가 몰린 뒤 강해졌다.

    그 사이 금융시장의 방향은 뒤집혔다. 한국은행은 7월과 8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올려 연 3.00%까지 높였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도 16일 3년 2개월 만에 정책금리를 3.75~4.00%로 인상했다. 한은에 따르면 2분기 말 가계신용은 2019조 8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넘어섰고 주택담보대출만 1190조 8000억원에 달한다. 증시 신용거래융자도 7월 말 28조 9349억원에서 9월 중순 32조 8319억원으로 불었다. 집과 증시에 레버리지가 쌓인 상태에서 값싼 돈의 시대가 끝난 것이다.

    빚이 많이 쌓인 경제일수록 금리 상승의 충격은 더 깊게 파고든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가계부채가 많은 경제에서는 금리 인상이 소비를 위축시키는 충격이 같은 폭의 금리 인하가 소비를 늘리는 효과보다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을수록 작은 금리 변화도 가계의 원리금 부담을 크게 움직인다. 한국은 7월 신규 주담대 가운데 변동금리 비중이 68%대로 올라왔다. 금리 0.25%포인트가 단순히 숫자 0.25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채권시장은 이미 기준금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고정·혼합형 주담대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 금리는 15일 4.655%까지 올라 2년 10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5대 은행의 고정형 주담대 금리 상단도 최근 7%대로 올라섰다. 2021년 전후 저금리기에 5년 고정형 주담대를 받은 차주들이 올해부터 금리 재산정 시점을 맞게 됐다. 당시 3% 안팎이던 대출이 이제 6% 안팎에서 다시 가격표를 달기 시작했다.

    충격은 가계의 상환 부담과 연체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연 3%대 초반에 3억원을 빌린 차주가 현재 수준으로 대출을 갱신하면 월 원리금이 수십만원 늘어난다. 금융감독원 집계를 보면 은행권의 1개월 이상 주담대 연체채권도 2022년 말 1조원에서 올해 6월 말 2조 2000억원으로 두 배 넘게 불었다. 저금리기에 빚을 끌어쓴 가계에는 집값의 향방 못지않게 매달 빠져나가는 원리금이 당장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금감원이 연준의 금리 인상 직후 취약차주 점검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신현송 한은 총재의 진단이다. 그는 지난 6월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는 가격 조정기에 개인의 손익뿐 아니라 시장 변동성까지 증폭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금리 인상으로 가계와 기업의 원리금 부담이 커질 수 있지만 어려움을 겪는 계층에 대한 지원은 재정정책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고 정부는 금리 인상의 충격을 필요한 곳에 선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실에서는 이 역할 분담이 깔끔하지 않았다. 재정은 경기와 민생을 떠받치기 위해 확대되고, 금융당국은 가계빚을 줄이겠다며 대출을 조였다가 실수요자 부담이 커지자 다시 총량 한도를 넓혔다. 한은은 물가와 금융불균형을 이유로 금리를 올렸다. 각각의 정책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세 정책의 결과는 결국 한 사람의 통장에서 만난다. 새로 빌리기는 어려워졌고 이미 빌린 돈의 가격은 높아졌다.

    영끌족에게도 책임은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빚으로 집과 주식을 산 선택까지 정부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영끌을 개인의 탐욕만으로 돌리는 것도 온전한 설명은 아니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자산가격 급등, 반복된 대출 규제와 레버리지 투자 열풍이 맞물렸던 시장 환경도 함께 봐야 한다.

    영혼까지 끌어모았다는 말에는 이미 답이 들어 있다. 더 끌어올 것이 없다는 뜻이다. 금리 3% 시대가 두려운 것은 숫자 3 때문이 아니다. 값싼 돈의 시대에 미래 소득까지 당겨 쓴 사람들에게 이제 그 미래가 한꺼번에 청구되고 있다는 데 있다.

    재정은 풀고 대출은 조이고 과열된 투자는 뒤늦게 막았다. 정부는 방향을 바꿀 때마다 새 대책을 내놓을 수 있지만 영끌족의 빚에는 그런 버튼이 없다. 대책은 갈아 끼울 수 있어도 원리금은 갈아 끼울 수 없다. 그 차이의 비용을 지금 영끌족이 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