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제한 핵사용·핵강압 대비美, '중간 핵옵션' 확대 검토전략핵·재래식 대응 사이 공백저위력·전구급 핵전력으로 보완SLCM-N 해상 전개·연성 재배치로생존성·지속 대응력 결합해야
  • ▲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0월 29일 경주에서 열린 만찬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사진을 찍는 모습. ⓒAP/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0월 29일 경주에서 열린 만찬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사진을 찍는 모습. ⓒAP/뉴시스
    미국이 중국·러시아라는 두 핵 강국과의 제한적 지역분쟁에 대비해 전략핵과 재래식 전력 사이에서 전술핵을 중심으로 '제한적 핵옵션'을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에 의존하는 기존 확장억제가 최근 이란 전쟁을 계기로 신뢰를 잃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을 미국에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전술핵의 해상 전개와 지상 기반 운용을 함께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재 미국은 파멸적 확전을 부를 수 있어 실제 사용을 결심하기 어려운 고위력 전략핵의 딜레마를 해소해야 하는 전략환경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새 전략환경은 냉전기 소련이 확실한 제2격 능력을 확보하면서 미국이 '대량보복'(massive retaliation) 전략만으로는 억제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때와 유사하다. 당시 미국은 소련의 제한적 도발이나 재래식 침공에 맞서 대규모 핵보복을 단행할 경우 전면적 핵전쟁과 상호파괴로 번질 수 있다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결국 존 F. 케네디 행정부는 위기의 강도와 전쟁 양상에 따라 재래식 전력부터 전술핵, 전략핵까지 단계적으로 대응하는 '유연반응'(flexible response) 전략으로 전환했다.

    고위력 전략핵무기를 중심으로 억제력을 유지해 온 미국으로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저위력 전술핵을 동원해 제한적 공격이나 핵위협에 나설 경우 재래식 대응과 전략핵 보복이라는 극단적 옵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 파괴력이 지나치게 큰 전략핵은 실제로 사용을 결정하기 어려운 만큼 중국과 러시아는 이러한 미국의 전략핵 보복 위협을 '엄포'로 해석하고 비전략핵을 동원한 제한적 핵 사용이나 핵강압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 차관의 문제의식이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콜비 차관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 전략사령부 심포지엄에서 "상식적인 미국 대통령이 실제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 법한 신뢰성 있고 합리적인 핵 옵션을 확보"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당시 그는 소형 전술핵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는 추세를 언급하며 지역에서 벌어지는 재래식 전쟁이 핵무기가 제한적으로 동원되면서 확전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정부에서 초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명예교수는 15일 한미우호협회(회장 이용준 전 세종연구소 이사장)가 개최한 광화문열린포럼에서 "콜비의 문제의식을 실제 군사전략으로 구현하려면 미국 대통령에게 '재래식 대응보다는 강하면서 대규모 전략핵 공격보다는 약한 대응 수단'이 필요하다"며 "기존 미국 핵전력만으로 핵 사다리의 중간 단계를 채울 수 없다면 결국 저위력 핵무기나 전구급 핵전력의 종류, 수량, 배치방식까지 검토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콜비는 특정 무기의 증강이나 배치를 주장하지 않았지만, 그의 전략적 논리를 실제 전력으로 구현하려면 대통령에게 '사용가능한 중간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핵전력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전술핵 또는 비전략 핵무기의 수량, 종류, 배치방식이 달라질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제한적이고 신뢰할 만한 핵 옵션으로는 단기적으로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탑재하는 저위력 핵탄두, 중장기적으로는 핵무장 해상발사 순항미사일(SLCM-N)이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18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제한적 핵 사용을 하거나 위협하면 미국이 전면 핵전쟁으로 확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단계적인 핵 대응 옵션을 이같이 제시한 바 있다. 이후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NPR에서 저위력 SLBM 핵탄두인 W76-2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SLCM-N을 개발하는 것은 군사적 효용성이 낮다고 보고 SLCM-N 개발 취소를 제안했지만, 미 의회는 사업을 유지했고 2032년 9월까지 SLCM-N을 확보해 제한된 작전 배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한국으로서는 미국이 새 핵전략과 전구급 핵태세를 확정하고 난 뒤에야 한반도 적용을 요구하기보다는 전략 설계 단계부터 한국의 안보 수요와 한반도 유사시 운용개념을 반영하도록 한미 협의에 나서는 편이 실효적이다. 전술핵 지상 재배치를 회의적으로 보는 안보 전문가들은 지상 전술핵 시설이 선제타격 유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전장이 좁고 주요 시설이 밀집한 한반도에서 고정식 핵무기 저장시설은 북한의 탄도·순항미사일은 물론 특수전 전력, 무인기, 사이버 공격의 우선 표적이 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에 SLCM-N은 지상 재배치가 부를 표적화와 정치·사회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SLCM-N을 공격잠수함(SSN)과 같은 해상 플랫폼에 탑재해 운용하면 북한이나 중국이 전력의 정확한 위치를 특정해 선제적으로 무력화하기 쉽지 않으며 한국 내 특정 지역을 핵무기 저장기지로 만들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SLCM-N도 그 자체보다 미국의 재래식 전력, 전략핵, 동맹국의 재래식 전략과 결합해 하나의 확전 사다리를 구성할 때 전략적 의미가 배가된다"며 "한미 양국 정상이 '미국이 서태평양에 배치하는 전구급 핵전력 가운데 일부가 한반도 유사시 사용될 수 있도록 사전에 기획돼 있고, 그 운용 개념과 역할을 한미가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협의한다'고 선언하면 해상 배치가 갖는 높은 생존성과 지상 배치가 갖는 동맹 결속 효과를 결합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잠수함에 탑재할 수 있는 핵전력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고, 일단 전개·사용한 뒤에는 정비와 재보급 없이는 즉각적인 추가 대응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전술핵 재배치 논의가 저장시설의 생존성, 분산·기동 배치 가능성, 지휘통제 체계, 방공·미사일방어, 유사시 재보급과 회수 절차까지 함께 검토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한국은 해상 배치를 통한 기동성과 생존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지상에서는 유사시 미국의 핵전력을 신속하게 반입·전개할 수 있는 기반과 절차를 마련하고 한미 간 전시 핵전력의 전개 및 운용 절차를 사전에 협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권태오 전 한미연합사령부 부참모장(예비역 육군 중장)은 뉴데일리에 "잠수함 기반 핵전력은 평시 억제 신호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실제 핵전쟁 상황에서 지속적인 대응 능력까지 보장하는 수단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잠수함은 탑재 가능한 미사일과 발사관 수가 제한돼 있으며, 보유 탄약을 소진한 뒤에는 재보급 없이는 추가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속 가능한 억제력을 갖추려면 지상에 핵탄두와 미사일을 안전하게 보관할 시설, 이를 운용할 이동식 발사대, 재보급과 정비를 뒷받침할 사전 준비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전술핵 유연 재배치'(연성 재배치)도 검토할 만한 옵션이다. 과거 주한미군의 전술핵이 배치됐던 오산, 군산 공군기지 내 핵무기 저장시설을 현대화하는 방식은 실제 핵무기의 상시 배치 없이도 유사시 신속한 전개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전국 수십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주한미군기지에 핵무기 저장시설을 신축한 뒤, 인도태평양 지역에 기배치된 미국의 핵무기를 한반도 유사시 재배치한다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한미 양국의 부담도 완화하고 전략적 유연성과 확장억제도 강화할 수 있다. 물론 저장시설만으로 즉각적인 핵보복 능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미국의 정치적 결단과 전개 계획, 지휘통제·수송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확장억제 전문가인 조비연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2022년 '나토 핵 공유 체제의 대안 모색' 보고서에서 "미국은 전술핵폭탄을 고정 배치하지 않더라도 과거 저장시설의 현대화를 통해 동맹의 결속력, 확장 억제의 확고한 의지를 발신하며 유사시에는 한시적으로 핵무기를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미사일 사일로를 전역에 건설해 실제 핵무기 위치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적국의 손익계산을 어렵게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반도나 괌에 대한 미국의 전술핵 배치가 어렵다면 이러한 사례를 접목해 한국도 과거 미군의 핵무기 저장시설을 신설·현대화하거나 괌에 저장시설을 구축하는 등의 단계적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괌에서 한미가 모의 핵탄두를 장착하고 투하하는 훈련도 단계적 접근 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나아가 한국이 세계적 기업들의 대규모 제조·연구개발 거점이 되도록 경제·대외정책을 설계하는 일도 국가 억제력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미국·유럽 등 주요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에 핵심 생산시설과 공급망을 구축할수록 한반도에 대한 대규모 공격은 한국만의 피해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공격국은 동맹국 및 국제사회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동시에 훼손하는 대가를 계산해야 하고, 이는 핵사용의 정치·외교적 비용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권 전 부참모장은 "군수산업을 포함해 세계적 기업들이 한국에 대규모 투자와 생산 거점을 구축하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유사시 한국의 피해가 동맹국과 주요국의 직접적 손실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군사적 대응 능력과 산업·경제적 상호의존성을 함께 강화할 때, 핵억제는 보다 입체적인 국가전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중대한 변곡점에 접어들었지만, 이재명 정부는 대북 유화 기조 속에 미북 대화 재개를 뒷받침한다는 '피스메이커론'에 천착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북 대화 재개 의지를 의식해 한미 연합훈련을 선제적으로 축소하는 등 대북 핵억제 조치에 소극적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만 상대하려는 북한의 '통미봉남' 기조를 극복하고 한국이 비핵화 협상의 실질적 당사자로 참여하려면 군사적 억제태세부터 확고히 수립해 둬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은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동결 또는 폐기를 협상 카드로 내세우며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과 단거리 핵타격 능력은 보존하려 함으로써 한미동맹 '디커플링'을 본격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

    한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전술핵은 남긴 채 미국만 안심시키는 최악의 안보 거래를 막으려면 한미는 확장억제의 운용과 핵대응 태세를 공동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김 교수는 "북한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해주며 비위를 맞추는 자세로 응하면 협상은 가능할지 몰라도 진정한 협상의 결과를 도출하기는 어렵다"며 "북한의 핵위협을 무력화할 실질적 억제 태세를 갖춘 뒤에야 비핵화 협상도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