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 2년 만에 공연…오는 18~20일 광진구 나루아트센터'오세훈 서울시장 아내'라는 수식어 넘어 무대 위 독창적 미학 구축
  • ▲ 송현옥 극단 물결 예술감독이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울파트너스하우스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정상윤 기자
    ▲ 송현옥 극단 물결 예술감독이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울파트너스하우스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정상윤 기자
    "모파상 작품 특유의 부인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원작 자체가 짧아 낭독해도 20분이면 끝나는 분량이지만, 그 행간에는 엄청난 상상력이 숨어 있어요. 앙상블이 빚어내는 조형미와 순간순간 잘 짜인 신체 움직임의 미학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른 연극에서는 접하기 힘든 독특하고 인상적인 볼거리를 보여주고 싶어요."

    세상의 변두리에서 낡고 부서진 의자를 어루만지는 투박한 손. 무려 55년이라는 아득한 세월 동안 한 남자만을 바라본 여인의 애달픈 순정이 무대 위에 피어난다. 프랑스 문학의 거장 기 드 모파상(1850~1893)의 단편을 재해석한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이 오는 18~20일 서울 광진구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2년 만에 공연된다.

    30년 넘게 자신만의 무대 언어를 직조해 온 송현옥 연출가(극단 물결 예술감독)는 이 낡은 고전 속에서 인간의 고독과 환상을 가슴 시린 몸의 언어로 빚어냈다. 그는 "영화와 드라마가 일상에 자리 잡은 시대에 연극이 언어에만 의존하는 것은 부족해요. 말이라는 건 지극히 불확실하고 때로는 소통을 가로막기도 하거든요. 말이 시작되기 전 이미 이야기를 품고 있는 배우의 몸과 움직임으로 관객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드라마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연극평론가와 드라마투르기로 출발한 송 연출가는 역설적으로 언어의 한계를 누구보다 체감한 인물이다. 2008년 극단 물결을 창단한 이래 '돈데보이'·'햄릿, 여자의 아들'·'인형의 집'·'밑바닥에서' 등 배우의 몸이 발산하는 직관적 에너지를 무대 중앙에 세우며 한국 연극계에 독창적인 '피지컬 씨어터(Physical Theater)' 미학을 구축해 왔다.
  • ▲ 송현옥 극단 물결 예술감독이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울파트너스하우스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정상윤 기자
    ▲ 송현옥 극단 물결 예술감독이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울파트너스하우스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정상윤 기자
    이러한 배경에는 한국 추상 철조각의 1세대 선구자로 꼽히는 선친, 고(故) 송영수(1930~1970) 조각가의 영향이 자리하고 있다.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아틀리에에서 차갑고 거친 철이 아름다운 추상 조각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성장한 그는 자연스레 직설을 덜어내고 은유를 채우는 심미성을 체득했다.

    송 연출가의 대표작 '의자 고치는 여인'은 신체극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한 남자만을 향해 조건 없는 헌신을 바친 여인의 일생을 고전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풀어낸다. 구구절절한 대사에 의존하기보다, 찰나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뿜어내는 배우들의 군무와 움직임, 음악을 결합한 총체 예술로 완성했다. 

    특히, 텍스트가 닿지 못하는 심연의 슬픔을 무대 위에서 육화해내는 존재가 바로 무용을 전공한 배우이자 그의 큰딸 오주원이다. 송 연출가는 "딸은 저의 페르소나입니다. 이제 제 연극에서 오주원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남다른 신뢰를 드러냈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예술 동행은 2012년 연극 '5분간의 청혼'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안톤 체호프의 '벚꽃 동산'을 재해석한 이 융합극은 격렬한 무용 동작이 1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고난도 작품. 공연을 불과 보름 앞두고 주연 배우가 부상을 당하는 위기 속에서 배우들의 몸 훈련을 돕던 딸이 구원투수를 자처했다.
  • ▲ 송현옥 극단 물결 예술감독이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울파트너스하우스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정상윤 기자
    ▲ 송현옥 극단 물결 예술감독이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울파트너스하우스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정상윤 기자
    송 연출가는 "관객과의 약속이라 공연을 취소할 수도 없고, 마음고생 끝에 위장병까지 걸린 엄마가 안쓰러웠던지 주원이가 나서줬어요. 연기는 기대하지 않을 테니 춤 동작만 맡아달라고 했는데, 놀랍게도 단 보름 만에 대사와 몸짓을 모든 장면에서 완벽하게 소화해내더라고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제 든든한 창작 파트너가 된 두 사람. 이어 "우리나라에는 발성이나 대사 전달이 뛰어난 배우는 많지만, 몸짓과 대사를 동시에 소화하는 배우는 드물어요. 딸이 있었기에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무용극)처럼 연극과 무용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할 수 있었죠"라고 덧붙였다.

    무대는 비루한 현실과 투명한 환상의 시각적 대비로 극적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여인이 맨손으로 수리해 온 폐의자들은 약국이라는 공간 속 영롱하게 빛나는 유리병과 대조된다. "의자는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자, 의자 없는 인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죠. 그렇다면 '의자를 고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대가를 바라지 않는 한 여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오히려 지금의 관객들에게 울림을 전해주죠."

    송 연출가는 "공연이 끝나고 '이 여인의 삶에 공감하는지' 묻기 위해 카드를 들어보게 했는데, 정작 본인은 그렇게 살지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관객의 70% 이상이 공감했어요.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반대편에 놓인 나무처럼 묵묵히 살아온 이 여인의 삶은 더 깊은 사유를 선사하고 불안과 소외감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 ▲ 송현옥 극단 물결 예술감독이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울파트너스하우스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정상윤 기자
    ▲ 송현옥 극단 물결 예술감독이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울파트너스하우스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정상윤 기자
    부모의 의자 수리 일을 물려받은 11살 소녀는 우연히 약사 아들 슈케를 만난 뒤부터 그를 평생 사랑하게 된다. 여인은 55년간 가난 속에서도 자신을 위해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재산을 모으고 세상을 떠나며 2327프랑과 마차, 말, 개를 슈케에게 유산으로 남긴다. 이미 가정을 꾸린 슈케는 "그 거지 같은 여자가 감히 날 사랑했다고요?"라며 불쾌해하면서도 돈과 마차는 받아 챙기고 생명인 말과 개는 차갑게 외면한다.

    이번 공연의 관전 포인트는 결말부의 변화다. 원작과 달리, 송 연출가는 슈케를 무대 전면에 세운다. "남자가 화자인 의사에게 '당신이 본 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며 무대가 전환돼요. 벽체가 돌아가 유리창이 드러나면 창밖에는 눈을 맞고 있는 17세 소녀(할머니)의 모습이 서 있죠. 지금까지 속물로 보이던 슈케에게도 마음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여인의 삶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는 관객이 저마다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에 다르게 다가갈 것입니다."

    오랜 시간 따라붙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아내'라는 정치적 수식어를 작품성으로 넘어서며, 지난 2월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그의 시선은 끊임없이 다음 무대를 향한다. 내년 3월을 목표로 유엔(UN) 인권기구 활동가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창작극 '소수 의견'(가제)을 준비 중이다. "역사라는 것도 결국 누군가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이고, 정치나 삶 역시 기억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만들어가느냐의 싸움이죠. 같은 사건이라도 입장과 시선에 따라 기억은 다르게 조각돼요. 기억의 가변성을 파고들어 무엇이 정의이고 역사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영문학자, 연극평론가, 드라마투르그, 대학교수 등 이름 뒤에 붙는 많은 직업을 뒤로 하고 다시 태어나면 배우가 되고 싶다는 송현옥 연출가. 마지막으로 "미디어 속 가상의 인물에 쉽게 빠져드 시대일수록 연극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를 지녀야 해요. '무대 위에서 저 배우가 나를 위해 땀 흘리고 애쓰고 있구나' 지금 이 순간 나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는 '현존'과 '공존'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고 감동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연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