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 대신 비밀통로 선호비밀의 문 통행비 팔고 사고혁신의 경제 좀먹는 좀비 창궐
  • ▲ 음습한 지하경제의 좀비가 법무장관이 되겠다고 한다. 국회의원 전에 판사였던 사람의 법 의식이 이런 수준이니, 그 앞에서 재판받았던 사람들이 재판의 공정성에 수긍할까? ⓒ 삽화 = 챗GPT
    ▲ 음습한 지하경제의 좀비가 법무장관이 되겠다고 한다. 국회의원 전에 판사였던 사람의 법 의식이 이런 수준이니, 그 앞에서 재판받았던 사람들이 재판의 공정성에 수긍할까? ⓒ 삽화 = 챗GPT
    ■ 시인 김지하의《지하》

    한국엔 유난히 지하가 많다. 
    지하철, 지하도, 지하상가 등. 

    시인 김지하의 본명은 김영일이었다. 
    1963년 어느 날 낮술을 마시고 종로를 걷는데 길가 입간판마다《지하》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다방도 지하, 이발소도 지하, 미용실도 지하였다. 

    그는 순간 "옳다, 저것이 내 필명이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김영일은 김지하가 됐다. 

     
    ■ 문제는《지하경제》

    60여 년이 흘렀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하는 지하철도 지하도도 지하상가도 아니다. 
    《지하경제》다. 

    경제학엔《지하경제(underground economy)》라는 연구 분야가 있다. 
    세금을 피해 숨어드는 현금거래에서 신고되지 않은 소득과 불법거래까지, 공식경제 바깥에서 움직이는 또 하나의 경제 를 말한다. 

    후진국으로 갈수록 그 규모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프리드리히 슈나이더(Friedrich Schneider)가 그 규모를 추정했다.
    평균적으로 GDP 대비, OECD 국가가 약 12%, 체제전환국이 약 23%, 개발도상국이 약 39%라고 한다. 

    특히 조세와 정부규제가 지하경제의 주요 원인이고, 부패가 지하경제를 확대한다 고 분석했다.  

     
    ■ 번성하는《지하 네트워크》

    최근 한국에서 제기되는《독약 》로비 의혹은 한국의 지하경제를 생각해보게 한다.

    정상적인 시장경제에서 기업은 경쟁을 전제로 투자하고 연구한다. 
    신약 승인을 위해선 연구개발을 하고 임상시험을 거쳐 규제기관의 심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정상적인 신약 개발엔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다. 
    FDA 자료에 따르면, 신약 하나를 연구·시험해 일반 대중에게 승인하기까지 약 8.5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비용은 어떨까? 
    Joseph DiMasi, Henry Grabowski, Ronald Hansen의 2016년 논문(Journal of Health Economics)에 따르면, 승인된 신약 하나당 직접 R&D 지출이 약 13.95억 달러, 실패한 후보물질과 자본비용까지 고려하면 약 25.58억 달러라고 추정된다. 
    환율 1,340원을 잡으면, 각각 1조9천억 원, 3조4천억 원에 달하는 액수다.  
     
    그런데 브로커와 정치적 인맥을 통하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규제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처럼 기업과 브로커, 정치권, 규제기관을 연결하는《지하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것이다.  

     
    ■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의 통찰

    여기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Gary Becker)의 통찰이 중요해진다. 
    베커는 1968년《범죄와 처벌 : 경제학적 접근》에서 범죄행위 조차도 경제적 동기를 따를 수 있음을 설명했다. 

    간단하다. 
    불법행위를 통해 얻는 기대편익이 적발확률과 처벌 크기를 감안한 기대비용보다 크다면 경제주체에게 범죄의 유인이 생길 수 있다 는 것이다. 

    이를 부패와 로비의 세계에 적용해 보자.  
     
    한국의 경우,《지하 네트워크》가 적발확률을 낮추고 처벌마저 가볍게 할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녹취록》은 이를 강하게 시사한다. 

    잠재적 범죄자는 베커의 방식데로 연구개발의 기대수익률과 로비의 기대수익률 중 어느 쪽이 높은지 계산해볼 것이다. 
    바로 여기서 부패가 경제 전체를 좀먹기 시작한다. 

    기업가가 좋은 기술보다 좋은 브로커를 찾게 되고, 연구자의 능력보다 정치권에 접근할 수 있는 인맥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돈은 연구실에서 비공식 네트워크로 이동한다. 
    인맥이 돈맥이 되고, 혁신투자가 지대추구로 대체되는 것이다. 
     
    최근 제기되는 이른바《독약로비》의혹은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선정적인 등장인물 자체에만 시선을 빼앗겨서도 안 된다. 
    개별 의혹의 진위는 철저한 수사와 검증으로 가려야 할 것이다.  

     
    ■ 접근권 사고파는 좀비의 세계

    더 중요한 건 대한민국의《지하경제》와《지하 네트워크》에 대한 경각심이다. 

    《동방예의지국》 한국은 역설적이게도《음주가무》의 나라다. 
    지하경제가 창궐하기 좋은 환경일 수밖에 없다. 

    지하철은 사람을 실어 나르고, 지하상가는 물건을 거래한다. 
    권력의 지하경제는 뭘 사고팔까? 

    《접근권(access)》을 사고판다. 
    누구와 만나 흥청망청 술을 마시며, 누구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지하철은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지만, 권력의 지하경제 는 지상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베커의 경제학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지하거래의 기대수익을 낮추고 적발확률과 처벌의 기대비용을 높이면 된다. 
    즉, 불법 로비의 수익률보다 연구개발의 수익률이 높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부패는 경제의 좀비다. 
    생산하지 않으면서 생산자의 피를 빨고, 혁신하지 않으면서 혁신의 과실을 가로챈다. 
    더 무서운 건 정상인도 좀비에 물리면 좀비가 된다는 사실이다. 

    부패는 결국 혁신의 터전과 유인체계를 망가트려 버린다. 
    경제가 망하는 건 대개 자원부족 때문이 아니라 신뢰부족 때문이다. 
    신약 로비 의혹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