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 우주로 이동…미·중, 이미 경쟁반도체 다음 전쟁터는 ‘좋은 궤도,주파수’ 선점좋은 궤도·주파수 유한…먼저 차지하는 게 유리전기-물먹는 하마,AI…한국,우주로 탈출이 절실
  • ▲ ⓒ스페이스X가 미국 애리조나에 1000억 달러를 투입해 건설할 예정인 초대형 우주 발사장 조감도.[스페이스X]
    ▲ ⓒ스페이스X가 미국 애리조나에 1000억 달러를 투입해 건설할 예정인 초대형 우주 발사장 조감도.[스페이스X]
    스페이스X가 미국 루이지애나주 남부에 10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35조원을 투자해 초대형 우주 발사장을 건설한다고 지난 8월 말 공개했다. 피칸 아일랜드 일대 약 506㎢에 발사대 10기를 설치해 세계 최대 규모의 우주항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장기적으로 스타십을 하루 30회, 연간 수천 회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왜 이렇게 거대한 발사장이 필요한가. 스타링크 통신위성을 대량으로 쏘아 올리는 게 우선이지만, 그 너머에는 우주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시장이 있다. 지상에 세우던 대형 AI 데이터센터를 지구 궤도 위로 옮기려는 것이다.

    이 구상이 현실화하면 AI 경쟁의 무대는 지상에서 우주로 확대된다. 그런데 이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반도체와 로켓만이 아니다. 데이터센터를 얹어놓을 지구 궤도와 데이터를 주고받을 주파수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지금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스페이스X, 100만 위성까지 상정한 우주 데이터센터
    올해 7월 기준 지구 궤도에서 운용 중인 인공위성은 1만 6000여 기다. 이 가운데 1만 1000여 기가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통신위성이다. 그런데 이 숫자는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스페이스X는 지난 1월 30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최대 위성 100만 기까지 상정한 ‘궤도 데이터센터 시스템(Orbital Data Center System)’의 발사·운용 허가를 신청했다. 태양광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위성끼리 레이저로 연결해 거대한 우주 AI 컴퓨팅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스페이스X만 뛰어든 것이 아니다. 구글은 지구 관측 위성기업 플래닛(Planet)과 ‘프로젝트 선캐처(Project Suncatcher)’를 추진하고 있다. 구글의 AI 전용 반도체 TPU를 탑재한 위성들을 지구 저궤도에 띄워 하나의 컴퓨팅 클러스터처럼 운용하는 개념이다. 81개 위성을 약 1㎞ 규모의 클러스터로 묶는 방안도 연구 중이다. 2027년 초 시험위성 2기를 발사해 편대비행과 광통신, 방사선 내성 등을 실증할 예정이다.

    미국 스타트업 스타클라우드는 한 발 더 나갔다. 지난해 11월 약 60㎏의 스타클라우드-1 위성에 엔비디아 H100 GPU를 탑재해 발사하고 우주에서 실제 AI 연산을 실증했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움직인다. 지난해 5월 ‘삼체 컴퓨팅 별자리(Three-Body Computing Constellation)’의 첫 위성 12기를 창정 2D 로켓으로 발사했다. 위성 1기에는 80억 개 매개변수의 AI 모델이 탑재됐고, 위성들은 레이저 통신으로 연결된다. 중국은 이를 대규모 우주 컴퓨팅 네트워크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유럽과 일본도 우주 데이터 처리와 통신 인프라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 역시 우주항공청의 관련 연구와 국내 위성통신 사업자들의 국제 주파수 확보 움직임을 통해 경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 ⓒ우주 데이터센터의 모양과 구조. 여러 개의 컴퓨터가 연결된 구조에 태양광 패널이 보인다.[김승조 교수 제공]
    ▲ ⓒ우주 데이터센터의 모양과 구조. 여러 개의 컴퓨터가 연결된 구조에 태양광 패널이 보인다.[김승조 교수 제공]
    ◆AI가 전기와 물을 먹어치운다
    세계가 데이터센터를 우주로 보내려는 가장 큰 이유는 AI가 엄청난 양의 전력과 물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2024년 약 415TWh(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약 945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2035년에는 기준 시나리오에서 약 1200TWh에 이르고, AI가 예상보다 빠르게 확대되면 1700TWh를 넘어설 수도 있다.

    문제는 발전소만 더 짓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AI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막대한 전력을 공급하려면 발전설비뿐 아니라 송전망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전력망에 연결되기까지 10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냉각도 문제다. 수만~수십만 개의 AI 반도체가 동시에 작동하면 엄청난 열이 발생한다. 이를 식히기 위해 추가 전력과 대량의 냉각수가 필요하다.

    결국 AI 데이터센터는 반도체보다 전기·송전망·냉각수가 먼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래서 나온 발상이 ‘우주로의 탈출’이다.

    AI 반도체를 위성에 실어 우주에서 직접 연산한다. 우주에는 지상처럼 넓은 부지를 확보하거나 송전탑을 세울 필요가 없다. 냉각수를 공급하기 위한 대규모 수자원 인프라도 필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대기와 기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태양광을 장시간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이 우주 데이터센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우주 데이터센터가 특히 절실한 국가 가운데 하나가 한국이다.
    국토가 좁고 수도권에 산업과 인구가 집중돼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처럼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산업도 밀집해 있다. 여기에 AI 데이터센터까지 급증하면 전력망과 용수 부담은 더 커진다.

    2024년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국에서 접수된 데이터센터 1차 전력기술 검토 신청은 736건이었다. 이 가운데 수도권이 522건으로 71%를 차지했고, 신청 전력만 약 3만3592MW에 달했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전력망 부족으로 실제 전력 공급 단계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극히 제한적이다. 522건의 1차 검토 신청 가운데 최종 공급 단계까지 진행된 사례는 10건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냉각용수 문제도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국내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면서 필요한 냉각용수 역시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일부 지역에서는 앞으로 계획된 데이터센터 수요를 현재의 용수 공급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미국처럼 광활한 땅을 찾아 데이터센터를 끝없이 옮겨 지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당장 지상의 데이터센터를 우주로 옮길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기술과 경제성 모두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AI 연산의 일부를 우주로 이전하는 기술은 한국이 반드시 준비해야 할 분야다.

    ◆우주 데이터센터는 ‘날아다니는 컴퓨터 공장’
    우주 데이터센터의 원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첫째는 컴퓨터다. AI 반도체와 서버를 위성에 탑재한다. 구글은 AI 전용 반도체인 TPU를 우주에서 운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고, 스타클라우드는 엔비디아 H100을 실제 궤도에 올렸다. 특히 지구 관측 위성이 수집한 방대한 원시 데이터를 우주에서 바로 분석한 뒤 필요한 결과만 지상으로 보내는 ‘에지 컴퓨팅’도 가능하다.

    둘째는 전력이다. AI 컴퓨팅 위성은 기존 통신위성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그만큼 거대한 태양전지판이 필요하다.

    셋째는 통신이다. 수십·수백·수천 기의 컴퓨팅 위성을 레이저 광통신으로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처럼 작동시켜야 한다.

    넷째는 냉각이다. 우주에선 냉각수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냉각이 쉽다는 뜻은 아니다. 우주는 춥지만 컴퓨터를 식히기는 쉽지 않다. 우주의 배경온도는 약 2.7K(영하 272도)로 극저온이지만 진공에는 공기가 없어 지상처럼 팬을 돌리거나 공기를 순환시켜 열을 제거할 수 없다. 결국 컴퓨터에서 발생한 열을 방열판을 통해 복사 방식으로 우주에 방출해야 한다. 대규모 우주 데이터센터에서 방열판의 크기와 질량이 중요한 이유다.

    마지막은 방사선이다. 우주의 고에너지 입자는 첨단 반도체에 오류를 일으키거나 손상시킬 수 있다. 따라서 방사선 내성 반도체와 차폐기술도 필요하다.

    ◆경제성을 좌우할 전력·열·통신·발사비
    우주 데이터센터의 경제성을 좌우할 핵심은 전력과 열, 통신, 그리고 발사비다.
    저궤도 위성이 지구를 돌면서 지구 그림자에 들어가면 태양광 발전이 끊긴다. 서버를 계속 가동하려면 배터리가 필요하지만 배터리가 늘어날수록 위성은 무거워진다.

    AI 반도체가 소비하는 전력이 커질수록 폐열을 처리할 방열판도 커져야 한다. 우주에서 계산한 데이터를 지상으로 빠르게 전달할 초고속 통신망도 필수다. 무엇보다 수백㎏에서 수t에 이르는 컴퓨팅 위성을 수백·수천 기 올리는 발사비를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

    스페이스X가 스타십의 완전 재사용을 추진하고 루이지애나에 초대형 발사장을 건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주 데이터센터 시대가 열리려면 우선 우주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가격부터 크게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 ⓒ우주 데이터센터를 배치하기에 좋은 조건인 여명-황혼 태양동기궤도와 특징.[김승조 교수 제공]
    ▲ ⓒ우주 데이터센터를 배치하기에 좋은 조건인 여명-황혼 태양동기궤도와 특징.[김승조 교수 제공]
    ◆밤과 낮의 경계선을 따라 도는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를 줄이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여명-황혼 태양동기궤도(DDSSO·Dawn-Dusk Sun-Synchronous Orbit)다. 쉽게 말해 위성이 지구의 밤과 낮의 경계선을 따라 도는 궤도다. 이 궤도를 잘 설계하면 거의 계속 햇빛을 받을 수 있는 태양전지판과 최소의 배터리로 데이터센터를 중단없이 가동할 수 있다.

    서울대 명예교수인 김승조 우주데이터센터연구회장은 우주 데이터센터의 후보 궤도로 약 1200~1500㎞ 고도의 DDSSO를 주목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태양광이 없어지는 일식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반대로 방사선 환경은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데이터센터 위성들이 최적 궤도에 몰리면 가능한 주파수 경쟁이 치열해진다.

    결국 태양광 확보와 방사선 위험 사이에서 최적의 궤도를 찾아야 한다. 여기서 우주 데이터센터 경쟁의 또 다른 본질이 드러난다. 좋은 궤도는 무한하지 않다. 주파수도 무한하지 않다.

    ◆AI 시대의 새로운 영토, 궤도와 주파수
    위성을 아무 곳에나 띄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주파수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없다.
    각국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위성망의 궤도와 주파수 사용 계획을 등록하고 다른 위성망과의 간섭을 조정해야 한다. 먼저 국제등록 절차에 들어가 실제 운용에 성공한 시스템은 후발 시스템보다 유리할 수 있다. 후발주자는 기존 시스템에 유해한 간섭을 일으키지 않도록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록만 해놓고 위성을 쏘지 않는 이른바 ‘페이퍼 위성’을 막기 위한 규정도 있다. 일정 기간 안에 실제 위성을 발사해 운용해야 하고, 대규모 비정지궤도 위성군은 단계별 배치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결국 우주 데이터센터 경쟁은 누가 더 좋은 AI 반도체를 만드느냐의 경쟁인 동시에, 누가 먼저 좋은 궤도와 주파수를 확보하느냐의 경쟁이다. 중국이 대규모 위성군 계획을 잇달아 국제사회에 등록하고, 미국 기업들이 거대한 위성망을 준비하는 것을 단순한 위성 숫자 경쟁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우주에서도 좋은 자리는 먼저 차지하는 쪽이 유리하다.

    ◆기술 경쟁보다 먼저 시작된 ‘우주의 땅따먹기’
    미국과 중국은 이미 궤도 위의 컴퓨팅 패권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1950~60년대 미국과 소련이 로켓과 달을 놓고 체제 경쟁을 벌였다면, AI 시대의 우주경쟁에는 새로운 전략자산이 등장했다. 컴퓨팅 능력, 우주 전력, 궤도, 주파수다.

    대한민국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가 있다. 배터리가 있고 통신기술이 있다. 발사체와 위성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 기술을 펼칠 우주의 자리는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당장 수백 기의 데이터센터 위성을 쏘아 올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우주항공청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산업·외교·통상 역량을 묶어 우주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궤도와 주파수 확보 전략부터 국가 차원에서 세워야 한다. 미국·일본·유럽 등 우주 선진국과 공동 위성망 및 주파수 협력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열강은 영토와 항구를 차지했고, 20세기 강국은 석유와 해상로를 장악했다. AI 시대에는 반도체와 전력뿐 아니라 데이터가 오갈 궤도와 주파수가 전략자산이 된다. 궤도와 주파수는 기술이 완성된 뒤 찾아가도 남아 있는 빈 땅이 아니다. 우주 데이터센터를 당장 지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10년 뒤 필요할 궤도와 주파수를 지금 확보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우주에 깃발을 꽂아야 할 때는 데이터센터가 완성되는 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