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부터 시작된 李 운동권 네트워크 집중 해부용혜인 청문회 계기로 다시 떠오른 낯익은 이름들NL 경기동부연합에서 PD 계열 제헌의회파(CA)까지李 대통령 왼쪽은 한 번도 비어 있었던 적이 없다
  • ▲ 2015년 2월 4일 청소업체 특혜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고소인 겸 피고소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15년 2월 4일 청소업체 특혜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고소인 겸 피고소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잊혀지고 있던 이름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NL(주체사상파), PD(민중민주파), CA(제헌의회파), 경기동부연합, 언더조직까지. 한때는 익숙했으나 이제는 흐릿해진 단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소환된다. 한 사람의 과거 이력을 둘러싼 논란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실 인사에서, 여당의 공천에서, 정부의 정책 언어에서 운동권의 그림자는 현 정권 곳곳에 걸쳐 있다. 특정 사건 하나가 아니라 하나의 패턴이라는 뜻이다. 그 시원(始原)은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부터 그 인맥의 전모(全貌)를 하나씩 펼쳐본다.

    ■ 용성총련으로 시작된 경기동부연합과의 인연

    이재명 대통령의 운동권 인연은 성남 한복판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1989년 이 대통령은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인근 공단 노동자 상담과 시국 사건에 연루된 용성총련의 법률 구제가 주된 업무였다. 용성총련은 '용인성남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줄임말이다. 이석기로 대표되는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계열이 주도했다. 신갈 경희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기 의장을 맡았다. 용성총련은 1993년 한총련 출범과 함께 경기동부총련으로 이름을 바꿨다. 소속 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정식 직업을 갖지 않은 채 우유·신문배달과 막노동으로 번 돈을 조직에 헌납하며 공동체 학습생활을 이어가는, 독특하고도 폐쇄적인 문화를 갖고 있었다. 신출내기 변호사는 이러한 관계를 발판 삼아 정치를 도모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인연은 20년 넘게 이어져 2010년 지방선거에서 마침내 정치적 함수관계로 고착됐다.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노동당 김미희 후보와 단일화하며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청구서는 곧바로 날아들었다. 단일화의 대가로 채워진 인수위원회 명단은 놀라울 만큼 촘촘했다. 김미희 후보는 인수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간사(幹事)에는 김미희 후보의 남편이자 훗날 통진당 사무부총장을 맡은 백승우, 지금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으로 만사현통이라고 불리는 김현지, 대장동 재판정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끌어안았던 정진상, 세 명이 이름을 올렸다. 대변인은 윤원석이 맡았다. 이석기가 이사로 있던 매체 '민중의 소리' 대표로 알려진 인물이다. 인수위원 한용진·이용대, 자문위원 박주현도 경기동부연합으로 분류된다. 뜨거운 논란의 인사들이 15년 전 인수위 명단에 나란히 모여 있었다. 우연(偶然)이라 부르기엔 너무 정연하다.

    인수위 인맥은 곧바로 성남시 일감으로 전환됐다. 2011년 성남시는 신생 청소용역업체 '나눔환경'을 청소대행업체로 선정했다. 이 회사의 경영진은 경기동부연합 출신이었다. 대표이사는 인수위원을 맡았던 한용진이다. 경기동부연합 공동의장 출신으로 민혁당 사건 연루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전 대표이사 김영욱은 이석기의 보좌관을 지냈다. 본부장 송호수는 이석기가 세운 정치컨설팅업체 'CNP전략그룹' 이사를 겸했다. 사내이사 박주현은 인수위 자문위원과 겹치고, 또 다른 사내이사 윤용배 역시 경기동부연합 공동의장 출신이다. 등기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만 정형주 전 민노당 경기도당 위원장이 숨은 실세로 거론됐다. 나눔환경은 2011년 성남시 청소용역 분야 공모에서 유일하게 신규 선정된 민간위탁업체였다. 인맥이 자리를 만들고, 자리가 다시 일감을 만드는 구조는 이렇게 완성됐다.

    경기동부연합은 NL 계열 중에서도 가장 친북(親北) 성향이 강한 조직이다. 이석기의 지하조직 민혁당 출신이 핵심을 이룬다. 2001년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에서 이들은 3년 안에 진보정당의 당권을 장악하고 10년 안에 대권 세력으로 성장하겠다는 노골적인 로드맵을 세웠다. 실제로 이들은 3년 만에 민주노동당을 접수해 통진당 창당을 주도했다. 2014년 헌법재판소는 결국 정당의 해산을 명했다. 지하혁명조직(RO)이 국가 기간시설 타격을 모의했다는 사실이 준 충격은 작지 않았다.

    정당은 해산됐지만 사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간판을 바꿔 진보당으로 바꿔달더니 2023년 전주을 재보궐선거에서 이석기의 대학 후배인 진보당 강성희 후보가 민주당의 무공천 지원 속에 당선됐다. 이후 2024년 총선과 의원직 승계를 거쳐 원내 의석을 4석으로 늘렸다. 다만 올해 6·3지방선거에서는 진보당 후보 다수가 낙선했고, 김재연 전 대표조차 평택을 재선거에서 3%대 득표에 그쳤다. 조직의 위세(威勢)는 사그라들었지만 이재명이라는 통로를 통해 제도권에 발을 걸쳐 온 궤적(軌跡) 자체는 지워지지 않는다.
  • ▲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목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2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목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2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PD 계열 제헌의회파와 언더조직, 그리고 용혜인

    비슷한 시기, 또 다른 운동권 계파가 조용히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에는 NL과 쌍벽을 이루던 또 하나의 큰 줄기 PD(민중민주파) 계열이 있었다. 이들은 반미·분단보다 노동과 계급 문제를 한국 사회의 핵심 모순으로 봤다는 점에서 주사파와 결을 달리했다. PD 안에서도 갈래는 여럿이었다. 그 중 가장 급진적이었던 곳이 제헌의회파, 흔히 CA로 불리는 노선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정통으로 표방한 이들은 민족 문제보다 계급 모순을 앞세웠다. 기존 국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제헌의회를 소집해 체제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강령(綱領)이었다. 이 계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는 이가 코리아보드게임즈 대표 김길오다. 서울대 철학과 재학 시절 제헌의회그룹에서 활동한 이후 학생연대, 청년진보당, 사회당으로 이어지는 조직을 막후(幕後)에서 조종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노동당 내부 폭로로 김길오가 비공개 언더조직의 수장(首長)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노동당 자체 진상조사위원회조차 이 조직의 존재를 인정했다. 알바노조 핵심 인사들의 생활비를 대며 조직을 운영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김길오의 비서였다는 서상영은 같은 해 노동당 당원게시판 공개서신에서, 이 조직이 조선공산당의 후계자를 자처했다고 밝혔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겨눈 지하조직의 자기고백(自己告白)이다. 

    이 언더조직 안에서 성장했다고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용혜인 후보자다. 알바연대와 노동당을 거쳐 청년좌파 대표를 지낸 용 후보자는 2019년 노동당을 탈당해 기본소득당을 창당했다. 2020년과 2024년 두 차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냈다. 노동당과 알바노조에서 함께 활동했다는 한 인사는 실명을 걸고, 용혜인을 비롯한 기본소득당 핵심이 해당 비선조직 소속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계보는 정치권뿐 아니라 정책의 영역까지 뻗어 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기본소득 이론을 발전시켜 온 안효상·금민은 현재 기본소득당 상임고문과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다. 김길오도 이 단체 이사로 참여했다. 명예이사장은 한신대 명예교수 강남훈이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기본소득 공약을 이론적으로 설계한 인물로 꼽힌다. 1980년대 지하혁명조직의 사상이 옷만 갈아입은 채, 오늘날 집권 세력의 정책 언어로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 ▲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뉴시스
    ▲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뉴시스
    ■ 경기동부연합·제헌의회파 깃발이 겹치는 자리 

    두 운동권 세력은 서로 다른 뿌리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권을 놓고 보면 일련의 흐름이 한 사람을 관통하는 모양새다. 그 주인공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이다. 이 대통령과 김 실장의 인연은 성남시장 시절보다 12년 앞선 시점에 이미 시작됐다. 1998년 김현지 실장은 시민단체 성남시민모임에 사무국장으로 합류하며 시민운동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이 대통령은 이 단체의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단체가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김현지 실장은 사무국 간사와 사무국장으로 실무를 도맡았다. 2001년에는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을 상대로 판공비 비공개처분 취소청구소송을 이끌어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고, 2006년에는 서울공항 비행안전구역 도로 개설과 관련한 예산 낭비 주민소송을 이끌어 대한민국 주민소송제의 초기 대표 사례로 학술·정책 보고서에 반복 인용되는 족적을 남겼다. 이후 2010년 성남시 인수위 간사, 2011~2017년 성남의제21실천협의회 사무국장까지. 김현지 실장은 지난 27년 내내 이 대통령의 공적 여정을 그림자처럼 동행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자 김현지 실장을 둘러싼 의혹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2025년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2010년 김미희 전 성남시장 후보의 선거법 위반 판결문을 근거로 경기동부연합과 김현지 실장 사이의 연결고리를 주장했다. 판결문에는 김미희 후보가 김현지 실장 연락을 받아 문제의 모임에 참석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미희 전 후보의 남편이 경기동부연합 핵심 세력으로 지목되면서 파장은 더 커졌다. 

    그러자 김현지 실장을 이 대통령에게 소개했다는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나섰다. 김 실장이 운동권 출신은 맞지만, 활동한 조직은 1990년대 중반 결성된 '21세기 연합'이라는 설명이다. NL 비주사파와 PD 계열 일부가 만든 학생운동 조직으로 경기동부연합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김 실장 스스로 입을 다문 탓에 정확히 어느 계보 출신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 실장이 운동권 출신이라는 사실 자체는 명확해졌다. 

    최근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용혜인 후보자 논란과 관련, 이재명 정부가 성남·경기라인 언더조직으로 인사(人事)를 굴리고 있다며 논란을 키웠다. 국정감사 불출석, 김남국 인사 청탁 문자, JTBC 유튜브 방송 발언을 조목조목 열거한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기본소득당에만 언더조직이 있는 게 아니라는 정 원내대표의 일갈은 용혜인 후보자를 둘러싼 이념 논란과 정부의 인사 문제를 하나의 문장 안에 정확히 겹쳐 놓았다. 민주당은 색깔론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색깔론이라는 말로 덮기엔, 쌓인 사실이 너무 많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맥은 단순히 몇 사람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남시장 시절부터 지금까지 곁을 지킨 성남·경기라인 정진상, 김용, 김남준, 김현지 네 사람이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대장동 사건에 연루돼 정치 활동에 제약이 걸려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도 이 둘을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 꼽는다. 김현지는 제1부속실장으로, 김남준은 계양을 보궐선거 당선으로 여전히 여권 한복판에 있다. 여기에 경기동부연합의 이석기·김미희·백승우·윤원석·한용진·윤용배·정형주, 진보당의 김재연·강성희, 그리고 언더조직의 김길오·서상영·용혜인·안효상·금민·강남훈까지 더하면, 14년에 걸쳐 정확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운동권 인맥의 지도가 그려진다. 

    2010년 인수위 간사에 오른 세 사람의 이름, 이후 경기동부연합 인맥이 시정(市政) 예산으로 되돌아온 정황, 현재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용혜인 후보자 배후 논란, 패턴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構造)다. 15년 전 한 장의 인수위 명단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2026년 9월 현재도 대한민국 국정의 한복판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깃발은 바람이 아니라 손이 흔드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왼편에서 오래도록 나부껴 온 이 깃발들의 색이 무엇인지는, 이미 헌법재판소의 결정문 한 장으로 답이 나와 있다. 문제는 깃발의 색이 아니라, 그 깃발이 국정 인사와 정책의 핵심부까지 침투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통진당은 해산됐지만, 그 자리를 채웠던 사람들은 이름을 바꾸고 정당을 갈아 탔을 뿐 단 한 번도 권력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 헌법재판소가 정당 해산이라는 극약처방(劇藥處方)까지 마련해 둔 것은, 이런 세력이 제도 안으로 되돌아오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국정감사와 인사청문회 증인석에 이 이름들을 세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