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제청 승인-반려》규정 없다제청은 이미 끝나고 국회 동의만 남아대통령의 부작위로 국회 권한 사라지지 않아
  • ▲ 이재명 대통령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손봉기 후보 제청을 반려한 것은 위헌이란 해석이 나왔다. 국민대 법대 이호선 교수의 판단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고심이 클 것이다. 미래를 위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요구, 이 문제를 확실하게 해놓는 것이 필요하다. ⓒ 삽화 = 챗GPT
    ▲ 이재명 대통령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손봉기 후보 제청을 반려한 것은 위헌이란 해석이 나왔다. 국민대 법대 이호선 교수의 판단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고심이 클 것이다. 미래를 위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요구, 이 문제를 확실하게 해놓는 것이 필요하다. ⓒ 삽화 = 챗GPT
    [편집자 주]  
    이재명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을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조만간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예상되는 선택의 가짓수는 여럿이다.

    ① 대통령이 원하는 김민기 부장판사를 재제청
    ② 대통령이 원한 김민기, 본인이 택한 손봉기 부장판사, 두사람 모두 제외하고 추천위 후보 4인 가운데 남은 2인 중 한 명을 재제청
    ③ 대법관 후보 추천위를 재구성해서 다시 제청
    ④ 헌법원칙 확립을 위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제기 등등.

    여러 방안에 대해 법조계 안팍에선 왈가왈부가 한창이다.

    그러나, 국민대 법대 이호선 교수의 판단은 전혀 다르다.
    ① 대통령의 반려와 재제청 요구는 국회의 동의권을 침해했다,
    ② 대통령이 국회에 송부하지 않은 부작위로 인해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사라지지 않는다,
    ③ 송부 여부와 상관 없이 국회는 심의를 개시해야 한다,
    ④ 다수당이 동의 않더라도 소수당인 국힘은 심의 개시를 주장해야 한다 등등.

    다음은 이와 같은 주장을 담은 이호선 교수의 페북 게시글 전문이다.
    메인 제목 등과 페북 글 내 하이라이팅은 뉴데일리의 편집이다.


  • ▲ 이호선 교수의 페북 게시글. ⓒ 화면 갈무리
    ▲ 이호선 교수의 페북 게시글. ⓒ 화면 갈무리
    《조희대 대법원장의 재제청이 오히려 위헌이다》
          - 제청은 끝났고, 국회의 동의 여부만 남았다 

    ● 국회는 누가 열어 주지 않아도 열린다

    헌법 제47조 제1항은 국회의 정기회를 매년 한 차례 집회하도록 하고, 국회법 제4조는 아예 "정기회는 매년 9월 1일에 집회한다"고 날짜까지 못 박아 놓았다. 
    소집권자가 없다. 
    그냥 자동으로 모이게 해 놓았다.

    왜 이렇게 해 두었을까. 
    여기에는 역사가 가르쳐 준 교훈이 있다.

    프랑스의 삼부회는 1614년 이후 175년 동안 소집되지 않았다. 
    재정과 조세의 위기가 왕권만으로 해결될 수 없게 되자 루이 16세는 1789년에야 삼부회를 소집했고, 그 삼부회는 곧 국민의회로 바뀌어 프랑스혁명의 문을 열었다. 
    혁명의 원인은 여럿이지만, 175년간 대표기관이 멈춰 있는 동안 쌓인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러시아도 다르지 않다. 
    1905년 혁명 뒤 두마가 만들어졌으나, 황제가 거듭 해산하고 그 권한을 제약했다. 
    정치적 갈등을 의회 안에서 풀 통로가 자리 잡지 못했고, 그것이 소비에트 혁명으로 넘어가는 단초가 되었다.

    그래서 근대 입헌주의는 의회의 집회와 작동을 다른 권력자의 선의에 맡기지 않는다. 
    대표기관에 권한을 주어 놓고도 다른 권력이 그 기관을 작동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그 권한은 종이 위의 권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문을 열어 주어야 비로소 움직이는 국회에서는 국회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

    법률 제정에도 같은 장치가 있다.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이의가 있으면,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기간 안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으로 국회의 의결을 무력화할 수는 없다. 
    헌법 제53조 제5항은 대통령이 법률안을 이송받은 뒤 15일 이내에 공포도 재의요구도 하지 않으면, 그 법률안이 법률로서 확정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렇게 확정된 법률을 대통령이 다시 5일 이내에 공포하지 않으면, 제6항에 따라 국회의장이 공포한다. 
    대통령이 두 번《배 째라》로 나와도 헌법절차는 멈추지 않는다.

    원리는 간단하다. 
    한 헌법기관의 부작위 때문에 이미 적법하게 이루어진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행사가 없었던 일이 되고, 그다음 헌법절차까지 마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관 제청 문제도 이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 제청은 이미 끝났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순서는 명확하다. 
    대법원장의 제청, 국회의 동의, 대통령의 임명이다.

    대법원장의 제청 → 국회의 동의 → 대통령의 임명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이를 승인한 뒤 국회에 보내도록 되어 있지 않다. 
    헌법에는 대통령의《제청 승인》도《제청 반려》도 없다.

    앞선 글에서 지적했듯이, 제청과 국회의 동의 사이에서 대통령이 하는《송부》는 별도의 헌법적 심사단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손봉기 후보자를 적법하게 제청한 순간, 대법원장의 헌법상 행위는 완결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대통령이 이를《반려》했다고 해서 이미 이루어진 제청이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 
    반려할 권한이 없다면, 반려에 소멸의 효력을 인정할 근거도 없다.

    지금은 새로운 제청을 기다리는 단계가 아니다. 
    제청은 이미 끝났다. 
    헌법상 남아 있는 것은 국회의 동의 여부에 관한 판단뿐이다.

    ● 《반려》라는 말로 헌법을 바꿀 수는 없다

    이번 사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있는《반려》또는 《거부》라는 말부터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반려》에는 되돌려 보낼 권한이 있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 
    그 말을 받아들이는 순간 헌법이 정한 절차가 달라진다.

    대법원장의 제청 → 대통령의 승인 또는 반려 → 국회의 동의 → 대통령의 임명

    헌법에 없는 단계 하나가 중간에 끼어든다. 
    여기에 반려의 효력까지 인정하여 대법원장이 다른 사람을 다시 제청해야 한다고 하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대통령에게 이미 이루어진 대법원장의 제청을 소멸시키는 권한까지 생긴다. 
    그런 권한 역시 헌법 어디에도 없다.

    용어는 그저 용어가 아니다. 
    헌법에 없는 권한은 대개 헌법에 없는 말을 통해 들어온다.

    ● 재제청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재제청하는 것이 문제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왜 다시 제청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이미 유효한 제청이 있는데 무엇을 근거로 다시 제청할 수 있느냐가 물어야 할 질문이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의《반려》를 받아들여 다른 후보자를 제청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인사절차의 재개가 아니다. 
    대법원장 스스로 헌법에 없는 대통령의 반려권을 인정하고, 그 반려에 기존 제청을 소멸시키는 효력까지 부여하는 것이 된다.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독립적으로 부여한 제청권을 대통령의 승인 아래 놓는 결과이기도 하다. 
    한 번 그렇게 하면 선례가 된다. 
    다음 대법원장은 제청 전에 대통령의 뜻을 먼저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재제청하지 않는 것이 위헌》인지를 물을 일이 아니다. 
    이미 완결된 제청을 대통령의 요구 때문에 없었던 것으로 만들고 다시 제청하는 행위에 위헌 문제가 생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할 일은 이미 했다. 
    제청은 끝났다. 
    거기에 무엇을 더한다면 그것이 위헌이다.

    ● 이제 남은 것은 국회의 동의 여부다

    대법원장의 제청이 적법하게 이루어졌고 그것이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다면, 헌법상 절차는 이미 국회가 동의 여부를 판단해야 할 단계에 들어가 있다.

    물론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보내지 않으면, 국회는 후보자를 검증할 수도,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다. 
    현실적으로 동의절차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통령의《부작위》때문에 국회의 헌법상 동의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장의 임명제청은 대통령이 이송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와대 서랍에 갇혀 있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보내지 않기로 한 이상, 그 제청은 국회에 도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소집권자의 침묵에도 정기국회가 열리고 대통령의 침묵에도 법률안이 법률로 확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헌법기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원리가 그렇다.

    ● 야당이라도 "이제 국회의 차례"라고 선언해야 한다

    여당이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로 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다면 야당이라도 나서야 한다. 
    대통령의 행태를 비판하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대법원장의 제청은 이미 유효하게 이루어졌다. 
    헌법상 제청단계는 끝났다. 
    이제 국회가 동의 여부를 판단할 차례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선언해야 한다.

    국회 차원의 결의안 추진이든, 의사절차상의 문제 제기든, 권한쟁의심판이든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대법원장이 적법하게 제청했는데 대통령이 서류를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국회의 동의권까지 행사할 수 없는 것이, 과연 헌법이 예정한 결과인가.

    의회의 역사가 남긴 원리이자 우리 헌법의 바탕에 깔린 원리는 분명하다. 
    앞 단계의 헌법기관이 자신의 책무를 마쳤는데 다른 권력이 중간에 끼어들어 다음 단계의 작동을 마비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장은 제청했다. 
    그 제청은 대통령의 반려로 소멸하지 않았다. 
    제청은 끝났고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다수 여당이 국회의 권한을 스스로 포기했더라도 야당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 
    의석은 적어도 입과 법리는 살아 있지 않은가.

  • ▲ 서강대 임지봉 교수의 해석에 대한 국민대 이호선 교수의 반론은 아주 매섭다. ⓒ 삽화 = 화면 갈무리
    ▲ 서강대 임지봉 교수의 해석에 대한 국민대 이호선 교수의 반론은 아주 매섭다. ⓒ 삽화 = 화면 갈무리
    [편집자 주]
    서강대 임지봉 교수가 MBC 의《시선집중》에 출연,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하위 개념이라고 했다.
    이게 사실일까?

    국민대 이호선 교수가 임지봉 교수의 이런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는 글을 페북에 올렸다.

    다음은 이와 같은 주장을 담은 이호선 교수의 페북 게시글 전문이다.
    메인 제목 등과 페북 글 내 하이라이팅은 뉴데일리의 편집이다.
  • ▲ 임지봉 교수의 주장을 정리한 MBC 《시선집중》보도. ⓒ 화면 갈무리
    ▲ 임지봉 교수의 주장을 정리한 MBC 《시선집중》보도. ⓒ 화면 갈무리
    《시야의 문제? 양심의 문제? 임지봉 교수의 인터뷰에 대한 반론》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하여 최근 대법관 임명제청 반려 문제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임 교수의 설명은 대통령의 대법관《임명권》을 강조한다. 
    대법원장의《제청권》은 대통령의《임명권》보다 하위의 권한이며, 대통령의《임명권》행사를 보좌하는 권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를 임명하기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임명을 거부하고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다 고 한다.

    대통령에게 최종적인 임명 거부권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쟁할 수 있다. 
    나 역시 대통령의 임명권을 단순한 형식적·의례적 권한이라고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군주국에서 국왕이 의회의 결정에 따라 형식적으로 임명장을 수여하는 것과 달리,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직접 부여받은 헌법기관이다.

    따라서 국회의 동의를 받은 후보자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에게 최종적인 임명 여부에 관한 일정한 재량이 인정될 수 있다는 해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논쟁은 헌법이 정한 절차의 마지막 단계에서 비로소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문장의 구조도, 헌법기관 사이의 권한 배분도 명확하다.

    대법원장의 제청 → 국회의 동의 → 대통령의 임명이다.

    그런데 임 교수의 설명에서는 이 세 단계 가운데 가운데 하나가 사실상 사라져 있다.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이를 받아 임명할 것인지 판단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려하여 다시 제청하도록 할 수 있다는 구조다.

    실제 인터뷰에서도《제청권》을《임명권》의 하위 권한이라고 규정한 뒤 대통령이 임명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헌법에는 대통령과 대법원장 사이에만 존재하는 이러한 쌍방향적 임명절차가 없다.

    대법원장 제청 → 대통령 송부 → 국회 동의 의결 → 대통령 임명

    더구나《국회의 동의》는 대통령의 임명권에 부수되는 자문절차도 아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마찬가지로 헌법이 국회에 직접 부여한 독립된 권한이다.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를 국회에 보내지 않으면 국회는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검증할 수도 없다.

    대통령의 부작위 하나로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행사가 시작조차 되지 못한다. 
    이는 내가 앞선 글에서 지적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임 교수 자신도 인터뷰 후반에서는 대통령이 “국회 동의요청서를 보내고 나서 국회의 동의를 얻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고 설명한다.

    실제 절차에 국회의 동의라는 별개의 단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당연히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정작 대통령의《반려권》의 헌법적 근거를 설명하는 핵심 대목에서는 이 단계가 논증에서 빠져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구별해야 할 것이《권한과 책무》이다.

    헌법기관에는《권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헌법이 하나의 절차를 여러 기관에 나누어 맡겼다면 각 기관에는 자신의《권한》을 행사할 자유뿐 아니라 다음 기관이 헌법상《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절차를 진행시켜야 할《책무》도 발생한다.

    대법원장이 적법하게 제청했다면, 대통령이 그 제청에 동의하는가와 별개로 이를 국회에《송부》하는 것은 이러한 절차적《책무》의 문제다. 
    헌법은 이 단계에서 대통령에게 후보자를 다시 심사하여 국회로 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별도의《제청 승인권》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내가 기존 글에서 이를《송부》라는 "사실행위"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대통령에게 최종적인《임명 재량》이 있는가라는 문제와 대통령에게《국회의 동의절차 자체를 열지 않을 재량》이 있는가라는 문제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대법관 임명 과정에서 두 번 등장하는 대통령의 역할과 지위를 혼동한 때문이다. 
    다시 보자

    대법원장 제청 → 대통령(A)송부 → 국회 동의 → 대통령(B) 임명

    대통령A와 대통령B는 같지 않다. 
    A는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대통령이고, 
    B는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를 갖는 대통령이다.

    B의 지위에서 임명을 거부할 수는 있다(이 점에서 임교수와 견해가 같다).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은 후보자를 최종적으로 임명하지 않을 수 있는지는 대통령의 임명권의 범위에 관한 헌법해석의 문제다.

    반면 A는 전달자의 역할일 뿐이다.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를 국회에 송부하지 않는 것은 대통령이 자신의 최종 임명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자신의 임명단계를 이유로 앞 단계에 있는 국회의 동의권 행사를 차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직권남용이고, 탄핵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임명권이 있으므로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자의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다” 는 설명만으로는 현재의 문제에 답할 수 없다.

    임 교수는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 봤어야 했다.

    대통령에게 국회의 헌법상 동의권을 행사할 기회 자체를 열어 주지 않을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

    임 교수의 설명에서 빠진 것은 바로 이 질문이다.

    권한의 크기를 비교하면서 제청권을 임명권의《하위 권한》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헌법 제104조 제2항이 설계한 절차 전체가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권한관계로 축소되었다.

    그 결과 그 사이에 존재하는 국회의 독립된 동의권이 논증에서 사라졌고, 대통령에게 부여된《권한》뿐 아니라 그 절차를 다음 헌법기관으로 넘겨야 할《책무》역시 보이지 않게 되었다.

    헌법상 국가기관의 관계는 어느 권한이 더 크고 작은지를 따지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누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못지않게, 그 권한들이 어떤 순서로 행사되도록 헌법이 설계했는가가 중요하다.

    이번 문제에서《대통령의 임명권》을 논하려면, 먼저《국회의 동의권》이 행사되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최종적인 임명 재량이 있다고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그 재량은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 앞에 임명 여부에 관한 최종 판단이 도달했을 때 행사할 권한이지, 그 권한을 미리 끌어와 국회의 동의절차를 생략할 권한은 아니다.

    그 점에서 이번 인터뷰의 문제는 대통령의 임명권을 과도하게 해석했다는 데 있다기 보다는 헌법이 규정한 세 기관의 절차를 두 기관의 권한관계로 단순화했고,《권한》을 설명하면서 그에 대응하는 절차적《책무》를 누락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라고 하는 지위의《이중적 성격》, 즉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지위와 국가 원수로서의 지위를 간과한 데 있다.

    그런데 이것은 절차의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이고, 본질이다. 
    헌법의 작동 순서와 원리를 몰랐어도 문제이고, 의도적으로 축소했으면 더 문제이다. 
    결국 절반의 구조를 평면적으로만 보고 결론을 내린 셈이다.

    학문적 시야의 문제에 그친다면 이해되지만, 학문적 양심의 문제라면 용납될 수 없는 곡학아세이다.

  • ▲ 임지봉 교수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이호선 교수의 페북 게시글. ⓒ 화면 갈무리
    ▲ 임지봉 교수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이호선 교수의 페북 게시글. ⓒ 화면 갈무리